귀찮으면 -ed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제일 처음 마주치게 되는 벽은 바로 불규칙 동사 암기입니다. 3단 변화를 외운다고 고생하셨던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으실 거예요. 저는 이게 너무너무 귀찮아서 어떻게든 피해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가 불규칙 동사들이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영어에는 왜 그렇게 불규칙 동사를 많이 쓸까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가기 전, 불규칙 동사에 대해 잠시 알아보도록 합시다.
시제를 나타내기 위해서 동사의 형태를 바꾸는 일을 ‘동사의 활용’이라고 합니다.
영어에서는 과거나 과거완료를 표현하고 싶을 때 동사원형에 접미사 -ed를 붙입니다.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동사들을 불규칙 동사라고 부릅니다.
* 규칙 동사의 예: talk/talked/talked
* 불규칙 동사의 예: sing/sang/sung, go/went/gone
현대 영어에서 불규칙 동사는 전체 동사의 3%밖에 되지 않는다는 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0개 동사(be, have, do, go, say, can, will, see, take, get)가 전부 불규칙 동사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동사를 쓸 때, 그 단어가 불규칙 동사일 확률은 50%나 됩니다. 즉, 3%의 동사가 영어를 지배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 불규칙 동사가 영어를 지배하고 있을까요?
모든 동사가 규칙 활용을 하면 편할 텐데, 왜 불규칙 동사를 사용할까요?
왜냐하면 불규칙 동사가 먼저 사용되고 있었고 뒤늦게 규칙 동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봅시다.
뒤늦게 나타난 규칙 동사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영어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보다 먼 어떤 시점에 인도유럽조어라는 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인도유럽조어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현대에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언어로 발전했습니다. 이 언어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모음을 바꿔서 동사를 활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유럽조어의 후손이자 현대 영어의 조상인 게르만조어는 이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모음을 변환해서 동사를 활용하는 방식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잘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새로운 동사들이 등장하고, 그중 일부는 예전에 사용하던 규칙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르만조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동사 끝에 -ed를 붙이는 방식을 발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게르만조어 사용자들에게는 -ed 형태의 규칙 동사가 불규칙 변환을 하는 동사였던 것이지요.
-ed 변환(=규칙화)은 놀랍게도 단순하고 기억하기 쉬웠습니다. 사람들은 이 위대한 발명을 널리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죠. (게르만조어 원어민에게도 동사 변형을 전부 외우는 건 괴로운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게르만조어의 후손인 고대 영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동사의 1/3이 규칙화되었습니다. 특히 자주 쓰지 않아서 모음 변환 형태를 기억하기 어려운 동사들이 규칙화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져 나갔습니다.
그 단어의 모음 변환 형태가 뭐였지? 에잇 모르겠다. 그냥 -ed 붙이자!
반대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동사는 상대적으로 모음 변환 형태를 기억하기 쉬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현대 영어의 불규칙 동사들은 규칙화의 칼바람을 피한 생존자들입니다. 동사의 규칙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생기는 동사에는 일반적으로 규칙화를 적용합니다. (예: 구글로 검색하다 google/googled/gooled) '결혼하다'라는 뜻을 가진 wed는 불규칙 동사지만, 과거형으로 wed 대신 wedded가 사용된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have가 haved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규칙화의 속도는 사용 빈도가 낮을수록 빠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알아보았듯, 불규칙 동사는 많이 쓰였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잘 쓰이지 않는 동사는 규칙화되어 버렸지요. 이 말은 '불규칙 동사를 외우지 않으면 영어를 못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불규칙 동사의 변형을 외우는 일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일 처음 5번 정도 외우려고 시도해 보시고, 잘 안 되면 그냥 방치해 두셔도 됩니다. 어차피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라 영어공부를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외워지거든요. 공부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지속가능성이니까요.
추가로 여러분의 공부를 도와드리기 위해 불규칙 동사를 정리하며 첨부파일로 올려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불규칙 동사의 원형과 과거, 과거완료형을 규칙화의 백분율(%)(1)에 맞추어 작성하였습니다. 백분율이 낮은 동사일수록 사용 빈도가 높다(2)는 뜻이므로, 번호 순서대로 외우시는 편이 좋습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규칙화의 백분율: 예를 들어 규칙화가 50%라는 뜻은 사람들이 dig의 과거형을 사용 시 50%는 digged 을 쓰고 나머지 50%는 dug을 쓴다는 뜻
예) 규칙화 0%: have - had - had (그 누구도 haved 를 쓰지 않음) / 규칙화 100% : help - helped - helped (그 누구도 holp 라고 쓰지 않음)
(2) 백분율이 낮은 동사일수록 사용 빈도가 높다: 자주 쓰기 때문에 규칙화가 진행되지 않음
본 글은 2007년 10월 NATURE LETTERS에 게재된 논문 "Quantifying the evolutionary daynamics of language (Erez Lieberman et al.)"과 이 연구가 소개된 책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 (에레즈 에이든 & 장바티스트 미셸 저)"의 2장을 요약, 정리한 자료입니다.
매거진 인마영(인생 마지막 영어 공부)에서는 유눔 곰주부의 영어 극복 에세이를 비롯하여 영어공부법 및 교수법에 대한 자료도 함께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