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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요곰 Nov 10. 2021

실전 영어, 단어만 알아도 된다

영어 천릿길도 걸음마부터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우디아바리아 오지의 건설현장.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환경보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영어로만 모든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나와 함께 파견되었던 사원들은 그래도 나름 높은 공인 영어점수를 가지고 있었고, 몇몇은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영어'는 모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비즈니스 영어책을 보기도 하고 회화학원에 등록한 친구들도 있었지요.


사막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 관리자는 고작 몇 사람뿐이었고, 사우디, 인도, 필리핀,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조건 영어로만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다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갔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영어는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Hello, Nice to meet you. My name is Gom.


이 한 마디가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유창하게 말했던 유일한 문장입니다. 그 뒤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높은 토익 점수, 해외대 졸업장이 전부 쓸모없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우물쭈물 서 있으니 현지 관리자가 먼저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Hello, sir. Me, Mungcal, administration team. Nice to meet you.


간결하고 깔끔한 자기소개였습니다.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공사 현장이다 보니 일하는 직원들의 학력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정규 교육에서 영어를 배울 기회도 적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문법을 떠올리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상황에 맞는 정확한 단어들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각 팀마다 해외 건설현장을 오랜 시간 돌면서 근무해 오신 수석님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사용하는 영어 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과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언어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수석님이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이리 와서 이 자료를 검토하고, 취합해서 정해진 날까지 자료를 완성시켜 두어라.'였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말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시의 저에게 이 내용을 영어로 전달하라고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있었을 것입니다. 수석님은 내공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어요. 


You, come. Look this. Make. all together. This day, finish.


그러자 지시를 들은 네팔 직원은 ‘This day. Too short. Need more time. maybe, more people. (이 날짜는 너무 촉박해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아니면 인력이 더 필요해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냈습니다. 한참 동안 대화를 주고받다가 그 직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단어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매우 빠르고, 정직하고, 명료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새내기 파견 관리자들은 이 영어를 현장 영어라고 부르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잡담부터 서류 작업, 업무 공유 및 작업 지시까지 모든 소통이 현장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해외에서 살다 오거나 영어를 아주 잘해서 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말이 너무 복잡하거나 막힐 때면 단어로 소통하는 현장 영어를 쓰곤 했습니다. 복잡한 문법을 다 떼어버리자 단어만 남았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찾아보면 그만이었고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만 명 넘게 모인 거대 프로젝트에서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시험용 영어와 다르게 조금 틀려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문법을 하나도 모르더라도, 단어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지요. 물론 이것은 비즈니스 영어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비즈니스 영어는 단순히 내용 전달을 넘어 매너와 격식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사용해서 달리고 점프도 하려면 문법이 언젠가는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음부터 뛸 수는 없습니다. 걸음마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하지요. 걷는 것이 익숙해지면 조금 빨리 걸어보고, 서서히 속력을 올려 뛰어도 보세요. 단어로 소통하는 것은 걸음마와 같습니다. 문법은 그다음이에요. 그리고 단어만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더라도 상당히 복잡한 업무지시나 대화가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려는 욕심을 버리세요. 영어의 장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지 않습니다. 영어 울렁증이나 공포 때문에 대화가 어렵다면, 우선 가장 쉬운 단어를 말하는 것부터 시도해보세요. 이렇게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영어가 별것 아니라고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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