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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Dec 02. 2021

살림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저녁때가  되었다.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우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양파, 애호박, 두부, 대파, 감자 등. 그리고 다시용 멸치와 다시마, 마자막으로 주인공격인 된장까지 꺼낸다.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으려다 멈칫.


'다시마, 씻어야 하나?'


다시마를 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한 번 씻기로 한다. 수도꼭지를 돌려 흐르는 물에 다시마를 살짝 씻어 냄비에 퐁당. 육수가 우러나오는 동안 야채를 손질한다.  곧 물이 끓어오른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서 숟가락으로 거품을 걷어내며 고민한다.


'얼마나 더 끓어야 맛있는 육수가 될까? 너무 끓으면 물의 양이 줄어드는 거 아닐까? 다 끓으면  멸치랑 다시마는 걷어내야 하나 그냥 그대로 둬야 하나. 왠지 버릴려니 다 아까운데.. 된장을 지금 푸는 게 맞나? 끓기 전에 풀었어야 했나?'


결국 핸드폰을 꺼내 검색창에 입력한다.

[백ㅇㅇ 된장찌개]

검색창 제일 위에 있는 글을 빠르게 클릭해본다.


'아. 쌀 뜰 물을 할 걸 그랬네. 양파를 먼저 넣어 끓인다고? 멸치는 안 건져내도 되는가 보다. 지금 야채를 넣어야겠다. 그리고 된장을 풀면 되겠네. 오호~ 고춧가루도 넣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야채를 냄비에 넣고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를 넣고 마지막에 간을 본다.


'음. 괜찮네.'


그리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가스 불을 끄고 싱크대를 바라본다. 손질하고 남은 야채와 발생한 음식쓰레기들. 된장통과 칼, 도마, 숟가락 등등 싱크대 가득 엉망이다. 엄마가 봤으면 분명 한 마디 하셨을 테다.


'정리를 하면서 하면 요리가 끝나도 싱크대가 깨끗해서 정리할 게 없잖아.'


귓 가에 들리는 말에 엄마의 표정을 상상하며 싱크대를 정리한다.


'한 꺼번에 정리해도 되지 뭐.'


입을 삐죽이며 괜히 혼잣말도 해본다.  



 

백만 스무 가 지나 되는 나의 취미에 포함되지 않는 것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살림이다  


살림은 나의 취미가 아니다. 어렸을 땐 살림이란 것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저절로 잘하게 되는 일종의 성장과정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독립을 하며 또 결혼을 해서 나의 살림을 가지게 되면서 알았다. 살림은 관심이고, 취향이고 그리고 기술이다. 난 관심은 있지만 취향 아니다 보니 좀처럼 기술이 늘지 않는다.


그래서 살림 고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들 정도이다. 그들은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쏟았길래 그렇게까지 살림을 잘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생각은 그걸로 끝. 그렇게까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취향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최소한의 기술은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깨끗이 청소하는 법, 세탁하는 법, 전자제품을 청결히 유지하는 법, 식재료를 보관하는 법, 제철음식 챙기는 법 등 가족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내기 위해 엄마나 살림 고수인 동생에게 물어 정보를 얻기도 하고 도서, 영상, SNS를 주기적으로 검색을 하고 따라 한다. 그렇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따라는 하지만 몸에 익혀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내 기술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해야 할 때는 또다시 검색을 하고 따라 한다.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신의 정보를 공유해주는 살림 고수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는 늘 어른들의 걱정거리가 된다.
예를 들면


'저렇게 살림을 못해서 결혼해서 구박은 받지 않을런지. '

'남편, 애들 밥은 잘 챙겨 먹일 수 있을런지. '

'집을 엉망으로 하고 사는 건 아닐런지'

어릴 때부터 무수히 들어온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걱정을 한 적도 더러 있었다. 정말 이대로 자라 결혼해서 구박을 받지는 않을까. 아이들 밥을 제대로 못 챙겨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깊어지면 괜한 반발심에 '살림 안 하는 일하는 여성이 되면 될 것 아니냐. 살림은 도우미에게 맡기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질 않는 법. 난 가정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하는 여성이 되어도 살림은 해야 한다는 것도 살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여전히 난 살림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괜히 주눅이 든 적도 있었다. 가정주부인데 살림을 못하는 건 업무태만이란 느낌에 스스로 움추러들었다. 괜히 할 일 없이 집만 이리저리 쳐다본 적도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하나 죄책감도 몰려왔다.

그래서  스트레스로 자기 비하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신랑이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지금 충분히 괜찮은데 왜 혼자 스트레스를 받느냐 물어왔다. 그래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 난 누구에게 구박받지도 않고, 신랑 도시락까지 싸서 챙겨줄 만큼 남편과 아이들 밥은 챙겨 먹이고 있고, 우리 집은 엉망이 아니다. 다만 하루 종일 살림에  관심을 쏟않는 것뿐.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면 나의 관심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뿐이다.

하루 1번 집 청소도 하고, 밀리지 않고 세탁도 한다. 부지런히 장을 봐서 끼니를 챙기고, 계절에 맞춰 집안 정돈도 한다. 그런데 괜스레 스스로 살림을 못하는 게 죄인 거 마냥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물론 가끔씩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도 한다.)


엄마 밑에서 살림 손 놓고 지내다  다시 내가 살림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또다시 그런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아이가 둘이 되니 부담감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육아는 아이템빨 살림은 장비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비록 나는 능숙하게 살림살이를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나의 취향에 더 많은 애정을 쏟긴 하지만 살림을 등한시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내용을 검색하고 찾아내는 능력이 있고 내 것엔 애정이 가득이라 함부로 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나의 수준을 잘 알기에 다른 이에게 물어보고 배우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도와줄 장비도 몇 가지 가지고 있으니 이제 더는 나 스스로 살림 못하는 사람이라 부끄러워하지 않을 테다. 실림은 여자라면, 나이가 들었다면, 주부라면 마땅히 잘해야 하는 성장과정이 아니다. 살림은 기술이고 재능이다.

난 그 기술과 재능이 없고, 그래서 내 취향이 아닐 뿐이다. 그래도 내가 내 살림을 애정 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기에...


그래서 먹고 싶은 게 있을 땐 백 선생님과 엄마의 도움을 청소 및 기타 살림엔 살림 고수님들의 도움을 쭉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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