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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y 07. 2024

자기소개를 한 날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며

글쓰기 모임 첫날, 오늘의 글감은 '자기소개'였다. 

솔직히 나에게는 '자기소개'라는 단어가 간지럽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랫동안 자기소개가 필요 없는 삶을 살았다. 극내향형 인간인 나는 새로운 만남을 구태여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스스로 새로운 만남을 찾아 나섰다. 마음은 글 쓰는 삶을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은 쓰지 못하고 있는 나. 함께 글 쓸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등 옛 지혜에 기대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두 개의 글쓰기 모임에 발을 담그게 되었고, 시작일도 5월 6일로 같았다. 한 모임에서는 아침마다 글감을 제공해 주었고, 다른 한 모임에서는 오늘 저녁 줌 OT가 있었다. 아침에 글감을 받고 하루종일 '자기소개'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나. 딸이랑 스타벅스에 앉아 일일 카공족이 되었는데, 내일 수행평가가 있는 딸내미보다 내가 더 심각했다. 결국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저녁이 되었고 또 다른 글쓰기 모임의 OT가 시작되었다. 



모임이 시작되자마자 '자기소개'의 시간이 펼쳐졌다. 생각만으로 하는 자기소개가 아닌 실전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두근두근 가슴은 뛰었고, '지금이라도 나갈까'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마이크가 넘어온 시간. 나는 하얘지는 머릿속을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저는 워킹맘이고, 수학강사입니다." 

이렇게 튀어나온 나의 첫 멘트는 내일 아침 이불킥감이 될 것이 뻔했다.

'맙소사... 여기서 네 직업을 왜 얘기하니. 글쓰기모임이잖아. 글쓰기에 대한 네 생각과 계획을 말해야지.' 


나는 왜 워킹맘이라는 나의 입장과 수학강사라는 나의 직업을 먼저 말했을까. 아마 그것이 현재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그랬을 것이다. 불확실한 것, 변할 수 있는 것은 입 밖으로도 꺼내려하지 않는 내 성향. 그래서 나는 내 감정에, 내 소망에 스스로 OX를 매겼다. 마치 수학문제 채점하듯이.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내 감정에도 '40년 넘게 일기도 쓰지 않던 네가 어떻게?'라며 가차 없이 X를 날린 것이다. 그러니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어떤 책을 읽고 (아마 심리에 관한 책이었던 것 같다) 일기장에 끄적였던 내용이 생각난다. 

'내 마음에 정답은 없다. 마음은 판단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거기 있는 존재다.'

이제 거기에 이 말도 보태야겠다.

'마음은 너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니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고, 끝없이 믿어주자.'


껍데기가 아닌 진짜 나를 알고 싶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매일 글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게 자기소개를 해야겠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혹여 길을 잃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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