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포레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국, 영, 수가 왜 중요한 과목일까?"
"어려워서요?"
"너희들이 왜 어렵게 느끼는 걸까?"
아이들은 '어려워서 어려운걸 왜 어렵냐고요?'라고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위 중요한 과목이라는 국. 영. 수의 공통점은 '시간이 걸린다'야. 이 과목들은 지식을 쌓기보다는 실력을 쌓는 과목이거든. 그래서 쌤이 항상 '수학은 단기기억으로 버틸 수 없다,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요령이나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는 끝까지 버틸 수 없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자신의 실력을 쌓는 거야."
나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재능은 없었고 좋아하는 마음만 있었다. 처음에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내용도 곱씹을수록 실체가 보이는 느낌이 좋았고,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답은 하나라는 사실이 매력 있었다. 좋아하기 때문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비전공자인 나에게 감히 오를 수 없는 크고 높은 그 무엇이지만, 학창 시절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 수학이라는 과목은 여전히 나에게 사랑스러운 그것이다. 마음도 수학 과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욕심은 내려놓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실력이 쌓인다는 점에서. 그리고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마음, 이해, 사랑. 이것은 나에게는 아직도 크고 높은 개념이다. "나는 공감능력 따위는 타고나지 않았는데 어쩌라고.",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들을 자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말들로 나를 규정지어 스스로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해받으려는 욕심으로만 가득했던 시간들. 모르는 수학문제가 나오면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없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별표를 그려 넣는 아이들의 모습이 곧 나였다.
그런 태도의 학생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배우려는 마음, 적극적인 태도가 있으면 쌤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어. 그런데 방청객처럼 구경만 하면 절대 너의 실력이 되지 않아. 쌤은 조력자일 뿐, 공부의 주인공은 너야."
이 말을 나에게도 해줘야겠다.
"세상에는 사랑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 하지만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네 것으로 만들 수 없어. 내 마음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에 오직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해. "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마음이라는 과목은 평소에 실력을 쌓아야 한다. 단기간에 승부 보려는 욕심은 금물. 노력한 만큼, 정성을 들인 만큼 실력이 된다. 일상은 배운 것을 확인하는 연습문제이고, 시험기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낙제는 없다. 기회는 계속 주어지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경쟁자는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이니까.
마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내게는 어렵기만 하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까 한결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