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보다 Oct 09. 2024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보려는 마음

수학강사의 깨달음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예전에는 칠판 앞에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말을 듣고 피드백을 하고 질문을 하기 때문에 코칭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설명을 들으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강사의 설명이 그 아이의 눈과 귀와 머리에 걸러서 어떤 내용으로 입력되는지, 말들의 순서를 통해서 이해하고 말하는지 기계적으로 암기했는지, 전 학년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등. 학생이 의도적으로 감춘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추어진 것일 수도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선명하게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내가 찾는 것들은 대개 부정적인 것들이다. 수학은 재미없고,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고, 숙제는 얼른 해치우고 놀고 싶고, 그러다 보니 이해 안 되는 것도 적당히 넘어가고. 아이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의도와 마음들을 나는 수면 위로 띄우기 위해 애쓴다. 감추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추격전. 


매일 숨바꼭질하듯 수업을 하다 보면 지긋지긋한 마음이 든다. 

'나는 너의 적이 아니야. 너의 수학공부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감추면 너희들 손해야. 너의 실력과 성적으로 돌아온다고. 왜 내가 범인 색출하듯 해야 하니.' 

나는 아이들에게 섭섭해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나의 좋은 의도를 몰라주냐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성과 논리의 가면을 쓰고, 규칙과 당위의 옷을 입은 수학쌤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수학공부가 싫은 아이들 입장에서 수업시간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고 팩트체크 당하는 시간일 텐데, 수학쌤의 마음까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어제 수업시간에 학생 A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전 시간에 나는 수행평가 준비를 위해 수학교과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 모두 까먹고 안 가져왔는데, A만 교과서를 가져왔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내 말을 기억해 주다니.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지만 약간은 과장되게 표현했다.

"와... 우리 A밖에 없네. 쌤 말을 기억해 주다니. 너무 감동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게 저예요."

그날 나는 A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5분만 더 남겨도 힘들다며 불만을 표했던 아이가 그날은 어려워하던 시계의 각도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을 거듭하고, 해결이 될 때까지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모습에 나는 감동받았다. 

'이렇게 수도 있구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못마땅한 모습은 잘 보인다. 그에 대한 지적은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입 밖으로 나와버리기 일쑤다. 반면 칭찬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아이들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은 마음을 기울일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내가 먼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낌없이 칭찬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긍정적인 기억은 아이들에게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산하지 말라고, 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