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여자의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

by 차안빈

여자는 자신의 상상이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는 과거의 상상에 허점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다. 허점들이 얼마나 많으냐하면 헤진 어망같다. 얼기설기 짜여져 있는 부분은 어쩌면 남들이 쓰다버린 쓰레기 따위를 소중하게 잡아내는 데에만 유용할 뿐. 그때의 내가 뭘 더 상상할 수 있었겠어,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업을 쫓는 삶이 뭔지는 모르겠네,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신입을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며 여자의 새 둥지를 위해 어디선가에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물어오는 선배들이 생각난다. 회사의 아주 작은 그들은 사랑하게 됐으니 애사심이 조금 생겼나. 애사심으로 가득찬 선배들은 업을 뭘로 삼아야 할지 알려줄까싶어 여자는 속없는 척 수다를 시작한다.


온 세계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들의 온 경험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 내 손을 타고 나간 온 것들이 진짜가 되어 온 일상이 되는 것. 또 없는 멋진 업이다. 선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업은 대단해보인다. 어쩌면 선배들의 연차가 되면 그렇게 업을 논하며 열변을 토할 수 있을까, 내심 설레는 여자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이 회사라는 집합의 아주 작은 원소로서의 업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함이 깃든다.


꼭 현재가 과거가 된 듯하다. 현재의 상상이 미래의 현실이 될까 설레면서 불안하다. 과거의 여자는 실수로 헤진 어망을 상상했으나, 현재의 그녀는 그 때보다는 촘촘한 상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미 여자의 현재는 과거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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