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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래원 Mar 05. 2024

고독의 능력

이재무의 <<고독의 능력>> 중에서

고독의 능력 


                                                                             

고독을 학습하기 위해 숲에 든다

길의 첫 장을 열어 숨 크게 들이마시고

도열한 잡목들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기며 신의 숨결을 듣는다

내가 사물에 스미어 하나가 될 때

순간을 열어젖힌 하늘의 음성이 

번개처럼 번쩍, 살을  찢고 들어와 박힌다                                                                   


-이재무(1958~)


 이재무 시인의 신작  시집 <<고독의 능력>> (2024)의 표제작이다. 

살다 보면 고독을 맞아들여야 할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이럴 때는 고독을 배워야 한다. 숲길 같은 책장을 열고 공부를 시작한다. 잡목이 도열한 페이지는 숨 크게 들이마시고 한 장, 한 장 밟아가야 하는, 뛰어넘을 수 없는, 그래서도 안 되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굴곡진 세상사. 방향을 모르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심림 중에서 나를 인도해 준 존재를 느끼게 된다. 숲길 책장을 살아오며 그동안 조우했던 만물들과 혼연해지면 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로울 필요가 없는, 꿋꿋한 고독의 능력으로 하늘이 내게 부여한 삶의 의미를 번쩍 깨닫게 된다.    


 이재무 시인은 고독이 두렵지 않다. 고독은 그의 시간을 충만하게 한다. 강화 양지바른 땅에 농막을 마련하여 머물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응시한다. 멀리서는 우주, 가까이는 도랑 옆 무논과 그 건너 앞산으로부터 숱한 존재들이 보내는 빛깔, 소리, 냄새, 질감마저 친애하여 자신의 일부로 체화한다. 고독할 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겸손하고 순하며 평화롭고 자유로운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 


 시집 <<고독의 능력>>에는 이 밖에도 고독의 능력이 낳은 편안하고 따뜻하고 물 흐르듯 읽히는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시인은 세계에 대한 발견과 새로운 인식을 통한 삶과 생의 개진은 언어의 틀을 바꾼다고 했다. 이재무는 그의 이전 모든 시집에서 그랬듯이 이번 신간에서도 변신한 자신을 달라진 언어로 옮기는 실천을 했다.  늙어가면서도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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