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판교로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남과 서울의 경계를 막 지나는데 일렬로 선 플라타너스 뒤쪽으로 눈을 끄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어, 저거 모과 같은데. 모과나무가 저기 있었던가?’ 뜻밖의 발견으로 나는 그쪽으로 차를 돌렸다. 인도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나무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은 과연 모과였다. 나무줄기를 매만지고 두드려 보았다. 매끈매끈하고 단단했다. 수피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부분들은 갈록색의 속살이 드러나 있었는데 줄기 전체에 퍼져 얼룩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변화와 통일성 있게 구상한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높이가 7, 8 미터는 되고 가장 두꺼운 둥치의 직경이 50 센티미터가 넘는 모과나무였다. 이만하면 고목(古木)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윗부분이 넓게 퍼져 타원 모양의 수형이었는데 열매들은 주로 높은 가지 끝에 달려 있었다. 짙푸른 하늘을 뒤로하고 가을 햇살을 받아 익어가는 황옥색 모과는 냉큼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다. 오후가 깊어지니 날은 맑아도 바람은 차가워 옷깃을 여며야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니 움츠리지 말라고 저 위 모과들이 정답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모과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모과는 본래 어떤 나무에서 어떤 모습으로 열리는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날 그렇게 가까이 가서 모과나무를 눈여겨 본 것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나의 모과 한 알 때문이었다.
6년 전 아버지는 복부 대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12월로 잡힌 수술을 앞두고 받아야 하는 검사가 여러 가지여서 그 해 가을 서울의 대학병원을 자주 오가야 했다. 아버지가 광역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오면 나도 가서 진료에 동행했다. CT를 찍는 날이었다. 검사를 마친 아버지는 검사 약물 부작용으로 메스꺼움으로 힘들어 했다. 그래서 일단 우리집에 가서 쉬기로 했다. 내 차 옆 자리에 타자마자 아버지는 코트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큼지막한 모과 한 알이었다. 병원 오는 길에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던 아버지는 운전석 옆 바구니 안에 놓여 있는 모과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벌써 햇모과가 나왔냐고 반가워하자 운전기사는 선뜻 하나를 집어 주며 가지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지친 몸도 잊은 듯이 활짝 웃으며 ‘차에 두어라, 모과 향 좋잖냐’ 하고 내게 모과를 건냈다. 연노랗게 익기 시작한 모과였다. 향이 은은한 그 모과는 모난데 하나 없이 잘 생겨서 기품마저 있어 보였다. 몸과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는데 아버지의 깜짝 선물은 우리 부녀에게 잠시 생기를 찾아 주었다.
다음해 1월 중순 아버지는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 어두운 겨울날들을 하루하루 어찌 보냈는지는 기화라도 한 것 마냥 남은 기억이 거의 없다. 다만 가끔 운전할 일이 있을 때 기어박스 아래 놓아 둔 모과가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가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긴 겨울이 지나고 화창한 봄기운이 대기를 가득 채운 어느 날이었다. 수서역 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와 멈춰선 차들을 무심히 응시하던 나는 거리의 모든 것들이 물속처럼 하늘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니 도로 바닥에서 아지랑이가 감돌아 오르고 있었다. 순간 내 눈은 아득해지고 똑바로 앞을 볼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 봄의 햇살 아래서 저마다 저렇게 자기 길을 가고 있는데 세상 어느 구석, 어느 끝을 찾아 가 봐도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슴이 조이는 아픔을 몰고 왔다. 아버지 육신이 소멸해서 원통했다. 영혼으로 살아서 천국에서의 재회를 소망한다지만 그 순간만큼은 견고하던 믿음은 꿈보다도 실체가 없었다. 이면 도로에 차를 세웠다.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나를 놓아버렸다.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와의 이별이 벼락같이 닥쳤을 때 나는 정신을 놓고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황망함 중에도 더 식기 전의 아버지의 살과 뼈의 촉감을 내 몸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 얼굴의 부분들을 정성껏 쓰다듬었다. 굳게 닫힌 차가운 입술에 내 입술을 대고 코에 닿는 냄새를 들이마셨다. 몸과 사지를 주물러 드리고 성기도 어루만졌다. 내 생명이 비롯된 곳이었다. 감사해요 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접촉의 생생한 감각들은 오래 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련히 울고 나니 숨이 골라지고 진정이 되었다. 몸을 세워 바로 앉자 문득 콘솔 박스 안에 넣어 둔 모과 생각이 났다. 모과는 그동안 흑갈색으로 쪼그라져 뭉쳐 놓은 종이처럼 가벼워졌다. 코에 가만히 대 보았다. 남아 있는 향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뭔가가 보였다. 모과 한 알을 들고 있는 손이었다. 엄지손가락 아래쪽 엷은 검버섯과 관절 위에 솟은 몇 가닥의 짧은 털과 중지 손톱 밑에 얼룩 진 누런 니코틴 자국. 아버지의 손이었다. 손 안의 모과는 윤기가 흘러 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 햇살을 받으니 호박 원석처럼 반짝거렸다. 달큰한 모과 향이 코끝을 지나갔다. 그리고 구수한 담배 냄새로 바뀌어 안개처럼 번졌다. 그러자 내 몸 어딘가에 다정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체온이라고 직감했다. 꿈이 아니었다. 환시나 환후였던 걸까? 그건 착각이었다는 말인데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아버지가 준 마지막 선물, 다 말라빠진 모과가 잃은 줄 알았던 그리운 감각의 기억들을 살려낸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차에 타면 종종 모과를 손에 쥐고 가만히 앉아 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새카매진 모과는 5년이 넘게 차 안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른 방향제는 두지 않는다. 미세한 모과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과나무를 뒤로 하고 돌아 서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한 달쯤 후에 와요, 그 때면 다 떨어져” 모과를 주우러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로변에 모과나무가 있네요” 하고 답하니, “내가 여기 길도 없던 때부터 이 동네서 살았는데, 오래된 나무지. 임자 없으니 주워 가져가쇼” 한다. 모과를 주우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년 봄에 모과꽃을 보러 와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