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쓰투 더마더 자기주도 이유식 키트
그동안 출벼, 임벼 시리즈는 모두 시계열적인 순서에 맞춰 작성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우리 딸랑구가 스스로 밥을 떠먹는 기염을 토하는 덕분에 너무 놀라워서 이 사례 만큼은 실시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육벼 시리즈 갑분시작.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을 조금 더 다듬어서 올릴 건데 그 날의 그 감격이 사그라들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육벼는 아무래도 이렇게 과거와 현재, 혹은 과거의 과거를 왔다갔다 거리며 쓰게 될 것 같다. 그 날 그 날 삘 받는 대로 쓰다보면 어느샌가 한 시리즈가 완성 돼 있지 않을까.. 라고 또 자신을 속이는 36년 경력의 긍정회로 :)
우리 하후둥이들의 자기주도 이유식은 2022년 10월 14일 시작 예정이었다. 아가들이 10개월에 진입하는 달이었다. 원래는 8개월 때부터 시작해볼까 했지만, 이유식 진행 상황을 보니... 응. 어설프게 받아먹는 먹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는 일찍은 어려울 것 같아서 10개월에 진입하면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었던 터이다.
10월 14일이 되었다. 횟집 비닐도 사놓고, 턱받이도 재정비하였다. 그런데 뭔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아가들에게 이대로 숟가락을 쥐어준다고 상상하니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주, 또 한 주가 지나 11월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자기주도 이유식을 하는 아가들의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영상 속에 있는 #더마더 자기주도 이유식 키트를 발견한 것이다! 오! 이것이라면 도전해 볼 만 하겠어! 분홍색 하나, 민트색 하나를 주문해 놓고는... 과연 자기주도 키트가 도착한다고 내가 이유식을 시작할까..... 한 번 더 의심하였다.
택배는 기어이 오고야 말았고(정말 받기 싫었던 택배 중 하나), 손 빠르고 발 빠른 남편은 이미 포장을 다 뜯어서 세척까지 마쳐놓았다. 방석이 다 깔렸으니 이제 앉아야되는데 내 마음은 왜 그렇지를 못할까. 돌봄선생님이 계실 때 시작하면 좀 민폐가 아닐까? 라고 남편을 설득하여 기어이 그 주 주말로 또 일정을 미루었다. (벼락치기의 근본적 원인은 미루기라는 사실)
11월 5일부터 시작된 자기주도 이유식은 11월 30일, 엄마의 뉴런 대폭발을 불러일으켰다.
하가 점심 이유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숟가락을 쥐고 스스로 먹은 것이다.
29일, 회사에서 일정을 마치고 시간 맞춰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가 오늘 밥을 지가 스스로 숟가락으로 떠먹었어."
남편이 하도 담담히 전해주기에 '그랬나보다' 했다. 그 다음 날, 그러니까 30일 아침에은 남편이 출근하는 날이었는데 남편이 출근하기 전 아이들의 아침 이유식을 남편과 함께 먹였다. 남편이 하를, 내가 후를 담당했다. 이 날 아침은 남편이 또 한 번 "우와, 또 자기가 스스로 떠먹었어!"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조금 더 화색이 도는 듯한 기운이었다. 그런데 나는 후 밥을 먹이는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또 '그런가보다' 했다.
남편이 출근했고 나는 재택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돌봄샘이 11시 30분 경 출근하셨고, 나는 11시 50분 경부터 점심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려놓은 큐브를 이유식 일지에 맞춰 한 큐브 한 큐브 골라내어 전자렌지에 돌리고, 냄비에 부르르르 익힌 후 다시 식혀서 아이들 식판에 담아냈다. 본격 점심 이유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돌봄샘이 후를, 내가 하를 먹이게 되었다.
원래는 어른이 숟가락에 밥을 좀 떠서 아가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면 아가가 입에 넣는 정도의 자기주도 이유식을 하고 있었다. 이 마저도 조절을 하느라고 심혈을 기울이는 아가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입을 으아아아아- 벌린 후 나무늘보처럼 숟가락을 쥔 손을 입에 천천히 넣는 정도였다. 가끔 입 옆을 치기도 했고, 숟가락 위에 얹어진 밥을 다 입에 머금지 못해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 날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숟가락에 밥을 얹어 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나 이 날은 뭐가 달라도 다를 요량이었는지, 하가 앙! 하고 한 입을 먹은 후 바로 숟가락으로 밥을 툭툭툭 치는 듯하더니 이내 숟가락으로 밥을 푹, 떠서는 입에 합! 하고 넣는 것이다. 종국에는 하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물론 맨 마지막에는 내가 싹싹 긁어서 숟가락을 쥐어줬지만), 하나도 남김 없이, 숟가락질을 하면서 밥을 냠냠 먹는 것을 내 두 눈으로 처음 보고야 말았다. 심지어 이 전 날까지만 해도 숟가락을 입에 넣은 후에 숟가락에 밥이 없으면 나에게 '내 숟가락이 비었으니 밥을 숟가락에 떠서 내 손에 쥐어주세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한 입 먹고 숟가락 엄마한테 내팽겨치기>의 반복으로 양하를 엄하게 혼냈었단 말이다.
맙소사.
아이들이 이 세상 빛을 본 순간도 나는 그렇게 감동받지는 않았다.
니큐에 있는 아이들을 볼 때도 뭉클하고 슬프다기보단 이쁘다는 생각만 들었고,
처음으로 아이들이 우리집에 온 날도,
처음 옹알이를 한 날도,
후가 처음 뒤집기 한 날도 하가 처음 뒤집기 한 날도,
되집기도,
네발기기도,
잡고일어서기도,
양하가 처음으로 첫걸음마를 했을 때도(후는 아직 걸음마 못함 ㅋ),
그리고 거의 달릴 듯이 우다다다 걷는 지금도,
그 모든 과정들이 신기했고 놀랍고 기뻤지만 감동적이진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인류가 할 수 있던 일이었고, 우리 아이들도 큰 문제가 없는 한 언젠간 다 알아서 해낼 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뭘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과 나는 그저 "난자 하나랑 정자 하나가 만나서 어떻게 이렇게 커지고 이런 행동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엄청난 프로그램이다. 생식세포는 도대체 얼마나 방대한 메모리를 저장하고 있는걸까?"라는 식의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대화만 해왔던 바다.
늘 무덤덤하고 무던했던 육아였지만, 11월 30일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그냥 '인간'임을 뛰어넘어 '호모 사피엔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숟가락을 쥐고, 팔과 손목을 이용하여 밥을 뜨고, 그 숟가락을 입에 넣고를 반복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수학적이고 논리적이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여느 어미와 아비들이 하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순간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뇌의 어느 구석에서부터 뉴런이 활성화되어 흰 듯 푸른 듯한 전기 충격이 온갖 생각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정말. 이건 정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세포들이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에 너무 각성되어서, 나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열리는 듯한 감동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을 #만물의영장 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태껏, 그러니까 지금도, 그 표현이 매우 오만하다고 생각해왔던 터다. 지구라는 터전을 망치고, 다른 종을 궤멸시키고,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살육을 즐기며, 강자가 약자를 찢어발기고, 그 와중에 다른 종들에 비해 머리는 너무 심각하게 좋아서 다른 종을 가두고, 먹고, 강제교배시키고, 지구상의 모든 자원들을 본인들 것이라 생각하며 과소비하는 행태들을 지켜보면 종국에는 "정말 똑똑하다면 과연 이런 멍청한 짓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만큼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로 생각이 조금 기울기 시작해버렸다. 인간이라는 개인 혹은 집단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문제인 것이지 맑은 물에서 갓 탄생한 듯한 푸른빛이 감도는 촉촉하고 영롱한 상태의 인간이라는 생물 그 자체는 어떻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명민하고 특출난 존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단순히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영특함을 방증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모든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력, 통제력, 응용력이 모두 집합을 이루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어느 경지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인간은 이 거대한 지구를 망칠 수도 있고, 다른 종을—혹은 같은 종까지도—괴롭히고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애기 밥먹이다가 별 생각까지 다 하네.)
그러면서 주변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다 존귀하고 유닠한 가치를 가졌다는 세속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일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요리를 하고, 숟가락 젓가락 등으로 밥을 먹고, 대소변을 가리고, 자기 보금자리를 가꾸고, 인간관계를 만들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고———심지어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남들도 다 하는 상투적인 감상에 다이빙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눈 앞에 닥친 일이 잘 되고 잘 되지 못하고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내 요즘 모습도 실제로는 그렇게 마음 졸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그저 내가 인간이고 인간들과 함께 가정을 사회를 문화를 만들고 문화에 맞는 생활 양식을 대대로 전달하는 이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인간양보라 의 활동 그 자체가 너무도 고차원적이고 우주적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유의미한 것이 분명하다는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진짜 생각이 넘치다 못해 여기까지 와버리다니)
내가 이렇게 과하게 감동하게 된 것은 아마도 여태까지 아가들이 보여줘왔던 발달 과정들과 자기주도이유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기는 법을 가르쳐본 적이 없고 잡고 서는 것을 도와주긴 했어도 이렇게 하라고 주도적으로 가르쳐주진 못했다. 걸음마는 더더욱 알려주지 못했다. 어느날 아가가 걸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주도이유식은 정말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공을 들여서, 중간에 그만 둘까 싶다가도 이왕 시작한거 뒤돌아서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를 가르친 가장 처음의 일이었다. 매일 아침 첫수를 먹이며 '분유 먹을 때가 좋은 거였구나' 생각하다가도, 이유식 때가 되면 늘 그랬던 것처럼 밥을 준비하고 아기들에게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아기들이 자기주도를 배우는 것인지 내가 인내심을 배우는 것인지 헷갈릴 때 쯤, 양하가 '이거 보세요!' 라고 말하듯 보여준 그 수학적이고도 논리적인 숟가락질 속에서 나는 인간은 태어나 살 가치가 있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맞을지 모르며, 양보라의 남은 인생에는 희망이 있다. 는 몽실한 솜사탕이 두개골에 가득 차는 걸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아이를 낳으면 살아갈 힘이 샘솟는다고들 하는 거였나.
애 밥 떠먹는 거 보고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는 것 같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