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디프는 왜 투자를 받지 않을까?
융투자 없이 스타트업 하기
엘디프는 왜 투자를 받지 않을까?
투자는 시중 금리보다 더 낮은 이율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시 지분을 나눠주면서 일부 경영과정에서 결재를 받아야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어. 흔히들 투자는 투자자가 리스크를 지는 것이고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투자자들은 엑시트 하는 기업에서 투자금과 이윤을 회수하기 때문인 것 같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융자보다는 상환 의무가 덜하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다고 봐야겠지. 엘디프는 투자에 대한 의향이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속해 있는 씬이 가진 특성 때문에 나름 여러 VC들과 투자에 관한 논의를 할 기회를 가졌어. 어떤 VC랑 대화를 하면서 놀란 건 어떤 VC는 투자를 진행했더라도 스타트업이 엑시트 하기 전까지는 투자금을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기도 하더라고. "왜 투자 안 받으세요? 그냥 1억 투자 받으시고 마음대로 쓰세요. 우리는 어떻게 쓰시는지는 전혀 상관 안해요!"라는 말까지 들어봤다니까.
그런데 나는 좀 겁이 많은 소시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고 믿거든. 투자금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ence Shares), 전환사채(CB, Convertible Bond), 신주인수권부사채(BW, Bond with Warrant) 등으로 성격을 달리하는데, 아무리 봐도 단어 많은 단어들이 '나는 사채다!' 하고 외치고 있지? 실제로 이자율이 낮을 뿐 이자가 있긴 있더라구. 사채라는 말이 없는 상환전환우선주도 '상환'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압박감이 있어. 실제로 계약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만기와 이자 조건이 붙는 것은 동일해. 우리 엘디프 멤버들은 '돈' 자체에 진짜 진지한 사람들이라서 '남의 돈'을 빌리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 어렵더라구.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엘디프가 투자를 안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 투입이 적어도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 같아. 인건비는 고정비용이면서도 유동비용이고 다른 비용들에 비해 덩치감이 크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쭉 존재하는 상품과는 다르게 인력은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웃풋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자원이기도 해. 물론 엘디프도 사람이 직접 개입해야 사업이 돌아가는 것은 맞지만 판매와 생산을 운영하는 절차들이 상당히 간소화 되어있어. 온라인 위주의 판매와 홍보를 하기 때문에 판매/홍보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협력 기업들과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오면서 소량 제작이라도 엘디프만의 패키지를 적용해서 제작/배송/AS 하고 있어서 제작 관련 인건비도 아웃소싱하고 있거든. 사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공연/행사를 하는 회사들, 개발자를 대량 채용해서 온라인 서비스 자체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회사들은 제품/서비스 자체를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초기 비용은 물론 유지 비용이 높게 들어갈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 자본을 가져와야 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겠지. 아, 엘디프도 소속 작가님들, 즉 사람이 콘텐츠를 제작하기 때문에 제품/서비스를 사람이 만들기도 하지만,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께서 기존에 창작해 놓으신 작품의 저작권을 이용하는 계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웃풋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큰 이유가 되겠다.
그런데 우리랑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예술 기업들도 대출이 없으면 투자를, 투자가 없으면 대출을, 아니면 둘 다를 끼고 있는 데가 많더라고.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빠른 시간에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은 기업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 사업을 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천천히 성장해서는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있어서 일거야. 실제로 투자를 받아서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멋진 구석이 있더라구. 뭔가 더 포부 있고 스케일 있어보이는 느낌 알지? 근데 나는 영향력은 갖고 싶은 욕심쟁이면서도,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은 돈 앞에서 간이 콩알 만한 소시민이라서 그런 담대한 결정은 아직 내지리 못하였어. 히히.
융투자 없는 스타트업=자영업?
자영업이라는 말에는 되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 자영업은 그냥 내가 피고용인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영업을 하면 자영업이 되는 것이라서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를 분류해서 개인사업자를 자영업자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겠다. 그런데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영세한 소규모 사업체 중에 개인사업자가 많아서 그런건지 그냥 소기업을 자영업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항간에 이런 말들을 하지, "내 돈으로 사업하면 자영업, 남의 돈으로 사업하면 스타트업." 개인/법인이라는 분류에 상관 없이 자금 조달을 하는 사업체는 자영업이 아니고 스타트업이라고 격상하는 느낌이 좀 있지? 실제로도 융투를 받은 경험이 있는 회사를 더 좋게 평가해주는 창업 씬의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뭐 그래, 일단 이해하기 좋게 "내 돈으로 하면 자영업, 남의 돈으로 하면 스타트업"이라는 시쳇말을 가져와서 말해보자. 앞서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고성장,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특성을 가진 신생기업이고 자본력이 딸리기 때문에 대부분 융투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정말 융투자 없는, 특히 투자 없는 스타트업은 자영업일까?
엘디프는 대출 없이, 투자 없이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 엑시트 할 수 있을지 말지 고민은 안중에도 없지만, 지분도 100% 우리가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이 커. 엑시트 했을 때 이윤을 다 독식할거야! 라는 꿈 같은 뻘소리를 가끔 하긴 하는데 그건 그냥 일기장에만 적혀야 하는 중2병 같은 거고, 기왕 사업하는 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우리끼리 하고 싶은 대로 재밌게 해보자는 방탕한 생각이 커서 그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풍부하면 풍부한 대로 그 상황에 맞춰서 Breakthrough 하면서 내공 있는 회사, 내공 있는 개인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거지. (...나만 그런거면 미안해, 동료들아ㅋㅋㅋ)
그래서 우리 롤모델은 지분 100프로를 지키면서도 좋은 실적을 내서 엄청난 금액에 인수된 '스타일난다', 마찬가지로 투자 없이도 큰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코니Konny' 같은 회사들이야. 이 회사들이 융자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투자는 안 받은 건 확실하지. 그리고 이런 회사들을 자영업이라고 부르지는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