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병원 퇴원 수속을 밟으면서 아기의 병원비 영수증이 나왔다. 이름 란에는 '김보라의 아기'라는 호칭이 적혀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채 48시간도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직 무명인 상태였다. 임신 중에 남편과 이런저런 후보들을 많이 올려보았으나 끝내 확정하지 못한 채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이다. 이제 출생신고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그 안에 이름을 지어야 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가 남길 그의 마지막 이름 석 자를 감히 어떻게 지어주어야 할지 부담이 컸다.
나는 내 이름을 아주 좋아한다. 내 또래에는 유독 나와 동명이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이름을 특별하다고 느낀다. 곡선 없이 직선으로만 이루어졌다거나 이름 그 자체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언뜻 한글 이름 같지만 부모님께서 열심히 끼워 맞춘 한자 이름이라는 반전도 하나의 재미있는 포인트다. 끼워 맞춘 한자를 뜯어보면 임금 왕, 조개 패, 장군 부, 실 사까지 있어서 마치 부와 명예와 건강까지 다 잡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쯤 되면 느낌이 오겠지만 나는 성명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가 부모님께 받은 이름을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나의 아기도 그러길 바랐다. 뜻에 집중을 해볼까, 불리는 음절에 집중을 해볼까, 글로벌 시대이니 어디서든 통성명이 용이하도록 이름을 지어볼까. 한글 공부를 시작한 아이처럼 우리는 자음과 모음을 나열해놓고 열심히 한글을 조합해보았다. 밤마다 이런저런 이름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무수히 많은 조합 끝에 두 개의 후보가 결승선에 올랐다. '태윤'과 '시윤'이었다. 나는 조금 중성적인 느낌의 이름을 원했으나, 아무래도 아들인지라 남편과 어른들께서는 '태윤'이라는 발음을 더 선호하셨다. 그렇게 우선 한글은 '태윤'으로 정해졌다.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불려질 이름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결정지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명소를 활용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아이가 가장 오래 사용할 가장 값진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리원과 연계된 무료 작명 상담소에서 아기의 출생 일시를 가지고 이 아이는 사주에 '물'이 부족하여 이름으로 채워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물'을 채운 이름을 짓고 싶다면 연락 달라는 뜻이었다. 오, 이 정도 힌트면 충분했다. 물을 채운다는 것이 그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남편은 열심히 물 수자를 부수로 하는 한자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딴에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 클 태(泰) 자에 예쁠/빛날 윤(贇) 자를 쓰는 '태윤'으로 지었다. 크게 빛나라는 뜻도 좋았고, 사주에 부족하다는 물(水)과 문(文), 무(武)에 조개 패(貝)까지 있는 한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전혀 글로벌하지도 않고, 성명학 적으로 좋은 이름이 맞는 지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아이가 '태윤(泰贇)'으로 불리는 매 순간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는 내 이름에 쓰인 한자 라(羅)를 가리키며 항상 비단 라를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한자의 메인은 그물/벌이다 라는 뜻이었고, 비단이라는 의미는 한 구석에 작게 있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물이 아닌 비단이라는 의미로 내 이름을 새긴다. 요는 행여 우리가 지은 이름에 학문적으로 어떤 잘못된 구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름을 지을 때 부여한 그 뜻과 그 마음을 가지고 부디 우리의 태윤이가 크게 빛나는 아이로 멋지게 자라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참 신비롭게도 단 몇 글자에 한 사람을 고스란히 담는다. 이름을 주고받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고, 그 존재의 가치가 다시 이름 석 자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나와 남편이 지어준 이름으로 우리의 아기 태윤이가 누군가의 꽃이 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겠다.
세상에 없던 한 사람이 우리 부부로 인해 세상으로 나왔고, 그리고 그 일생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이름까지 지었다. 태윤아, 엄마와 아빠가 너에게 주는 가장 처음이자 가장 오래 사용될 선물이 마음에 들길 바랄게.
P.S. 훗날 이름 탓하면서 개명하고 싶은 날이 오면 이 글 한 번 봐주렴. 무궁히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라는 걸 기억해줘!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