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즈 고행이다
우리 부부의 여행은 결혼 전, 홍콩에서 시작되었다.
“결혼 전에 꼭 둘이서만. 멀리. 여행 다녀와.”
선배 부부들의 조언을 따라 떠난 2박 3일을 4박 5일처럼 즐기고 돌아온 우리.
그때 이미 정해졌던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되리라는 것을.
제주에서 나고 자란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혜택은 자연이었고, 가장 큰 결핍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마음이 급해진다.
혹시 다시 못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왔을 때 다 보고, 다 먹고, 다 느끼고 가야 할 것 같으니까.
나는 평소엔 꽤 즉흥적인 사람이다.
계획이 틀어져도 “뭐 어때” 하고 다시 짜면 되고, 예상치 못한 일상 속에서 얻는 기쁨을 즐기는 편이니까.
그런데 여행만 가면 달라진다.
동선 계산, 이동 시간 체크, 변수 대비 플랜 B, C, D까지.
여행에 한해서만 나는 완벽한 ‘대문자 J’가 된다.
하지만 그 계획은 단순히 많이 보기 위한 욕심이 아니다.
가장 즐겁고 따뜻한 가족의 시간 속에, 아이들의 배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한 여행이랄까.
이번 여행에서도 아이들 컨디션을 고려해 경주에서는 렌트카를 빌렸다.
추운 날씨에 체력을 불필요하게 소모하지 않도록 이동 동선을 조정했고, 일정 사이사이에 카페와 실내 공간을 배치했다.
저녁이면 영양제를 챙기고, 따뜻한 물에 발을 씻긴 뒤 엄마표 발마사지를 한다.
힘들어질 타이밍에는 달콤한 간식을 슬쩍 내밀고, 유적지마다 작은 미션과 보상을 걸어 아이들의 참여를 끌어올린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여행 한정 J맘.
강약중강약중강 약약.
보고, 먹고, 배우고, 생각하고,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첫날 우리는 이만 보를 걸었다.
아이들은 춥다, 배고프다, 숙소 가고 싶다 — 로 시작해 질문이 쏟아졌다.
“저건 뭐야?”
“우리 지금 몇 보야?”
“엄마, 신라는 왜 무덤이 이렇게 많아? 경주는 도시 전체가 공동묘지 같아.”
“십원빵은 언제 먹어?”
징징거림과 호기심이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공유하는 당일 일정 브리핑,
유적지 미션을 통한 연결,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나누는 대화.
그 모든 과정이 나의 만족도를 높였다.
아, 오늘도 우리가 제대로 걸었구나 싶은 마음.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해?”
“좀 쉬러 가면 안 돼?”
맞다. 우리는 조금 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휴식은 여행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집에 두고 가는 것이라는 걸.
밖에서는 치열하게 경험하고,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여행이 고행인 만큼,
우리 집은 반드시 안정과 쉼의 공간이어야 한다.
코로나를 지나며 미니멀과는 조금 멀어졌지만,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우리 집을 기대해 본다.
이번 여행이 아이에게 무엇으로 남을지는 모른다.
추위일 수도 있고, 통증일 수도 있고, 엄마의 빼곡한 일정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우리 그때 진짜 춥고 힘들었지.
그래도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 말 끝에 웃음이 붙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신 오지 않을 오늘.
다시 겪지 못할 오늘.
그래서 우리는,
조금 힘들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궁금하다.
다음 여행에서는, 또 어떤 강약중강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