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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Nov 06. 2023

사우나회동

“오늘은 뭐햄시니? 할거 어시면 사우나가게!”(오늘은 일정이 어때? 할거 없으면 사우나 가자”) 엄마가 말했다.

“오늘? 할 건 어신디 사우나는 안가잰!!! 나 새벽에 잠 못 자서 더 자야돼마씸!!!”(오늘? 할 건 없지만, 사우나는 안 갈래!!! 벽에 잠 못 자서 더 자야 해요!)라고 말했지만,

“새벽에 잠을 못 자긴 무사 못 자? 사우나 갔당오면 어떵도 안 헌다. 빨리 챙경 나오라! 지금 집 앞으로 감쪄이!!!”(새벽에 잠을 못 자긴 왜 못 자? 사우나 갔다 오면 괜찮다. 빨리 챙겨서 나와. 지금 집 앞으로 간다!!!)라며 전화를 뚝 끊어버린 엄마.


주말아침이면 자연스럽게 엄마의 사우나회동에 초대된다.

언젠가 엄마는 주말아침마다 딸 둘과 손녀를 데리고 사우나 가는 게 ‘삶의 낙’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때에 따라 회동인원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매월 한번 이상은 꼭 진행되는 우리 집 여자들의 주말루틴.

한동안 코로나를 핑계로 사우나회동이 멈췄었는데, 포스트코로나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어릴 적엔 엄마 따라 사우나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사춘기 이후 사우나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코로나 이후엔 더더욱.

모르는 사람들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마주하는 일, 그리고 탕목욕을 함께 즐기는 일이 내겐 결코 쉽지 않지만, 엄마의 호출에 거절 따윈 통하지 않는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늘 근무를 핑계로 빠지던 여동생까지 함께하는 사우나회동은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넷이서 온탕에 둘러앉아 근황을 시작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사우나에서 만난 엄마의 지인들이 “딸들이랑 손녀랑 사우나! 정말 좋다. 나는 우리 딸이랑 얼굴 보기도 힘든데!”, “나는 딸도 사우나 같이 올 딸도 없는데!” 라며 우리를 부러워했다.엄마는 별거 아니라며 웃었지만, 감출 수 없는 엄마의 딸부심 아우라가 느껴졌다.

사우나 귀찮다고 더 잔다고 투정 부린 게 미안할 정도로. 엄마가 이 맛에 사우나 오는구나!


한때는 자식자랑을 성적으로, 취업으로, 결혼 등으로 했다지만, 나이 들면 들수록 가까이 있는 자식이 가장 효자라고 했던가.

언젠가 엄마는 우스갯소리라며, 남들 자식자랑 할 때, 나는 자랑할 게 없어서 ‘우리 애들은 착한 게 제일 자랑이다’라고 했었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지금 보니, 엄마가 이긴 것 같다.


“엄마! 그때 기억나? 남들 자식자랑 할 때 엄마는 우리 자랑할 게 없어서 착한 게 자랑이라고 했던 거.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게 제일 큰 자랑이 맞았던 거 같아. 공부 잘하고 돈 잘 버는 거 아무짝에 쓸모없다? 이렇게 엄마 호출에 바로 뛰어나오는 우리가 최고 아냐? 히히. 맞지? 우리가 최고지~~~ 엄마가 이겼어!!! ^^”


아무래도 다음 사우나회동은 엄마가 호출하기 전에 내가 주선해야겠다. 우리 엄마 어깨뽕 좀 단단히 채워드려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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