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드라이브는 즐겁기만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가운 사람, 그리운 곳에 찾아가는 길은 비록 10시간이었지만 내겐 전혀 길지 않았다.
고향을 다녀왔다. 나에게 제1의 고향은 인천, 코리아이고 제2의 고향은 랜싱, 미시간이다. 미국 중서부(미드 웨스트)에 속하는 손바닥 모양의 땅. 동부나 서부에 비해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은 아니지만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은 많은 곳이다. 동부나 서부에 비하면 가난한 지역 일지 모르나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의 마음은 정녕 부자인 곳이다. 도시와는 다르게 넓게 넓게 나눠 쓰는 땅, 맑은 공기, 푸른 숲. 빈부와 상관없이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유로운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마트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맘만 먹으면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다녀온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독만큼이나 떨쳐내기 힘든 게 그리움이다. 사진만 남는 거라고 하길래 사진은 많이 찍어왔다. 이번엔 비디오도 많이 많이 찍어왔다. 10시간을 꿈결 속에 돌아오다가 우리 집 근처 조 다리(조지 워싱턴 브릿지) 앞 트래픽을 보자 바로 현타가 왔다. 현실은 트래픽. 갑갑한 그래픽.
그러나 타국 살이에 고향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씨암탉 고아 기다리는 엄니같이 온갖 맛난 것을 고아 우리를 기다리던 여러 엄니들. 그분들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에게 고향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2009년 부모와 조국을 떠난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랑과 섬김과 오래 참음, 열정과 겸손과 지혜를 배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도시생활에 치여 멋대로 살고 있었는데 며칠 그분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아, 맞다. 이거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출했다가 엄마 집에 돌아온 탕자의 기분이었다. 엄마의 따숩고 맛난 밥, 포근한 잠자리가 눈물 나게 감사한 것처럼, 비뚤비뚤 탈선되었던 것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안심되었다.
나이가 차기 전에 집을 나가면 탈선이고 가출인데, 과년하여 나가는 건 엄연한 출가다. 신이 보시기에 우리는 출가하기에 충분한 나이었나 보다. 더 이상 그 따숩고 아련한 곳에 머물 수는 없는 운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고향의 맛은 다시다로 만족하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모험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내가 이래서 여행이 싫다. 여행지가 너무 좋으면 현실로 돌아오기가 눈물 나게 괴로우니 말이다. 그렇다고 괴로운 현실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바보 천치 같은 짓이라 기회가 되면 또 여행을 할 것이다. 미시간 여행에 대해 구구절절 쓰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 다 귀찮아져 접어 둔다. 지금은 그저 나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달래는 게 급선무다. 차가 막혀도 욕하지 말자, 끼어들어도 욕하지 말자, 빵빵거려도 욕하지 말자.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도시 생활, 일단 욕을 줄이고 살아보자, 넓은 마음으로 살아보자, 여행에서 돌아와 그런 작은 목표를 세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