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아이들 온라인 수업이 끝났다. 아무것도 안 할 요량으로 침대에 기대어 앉는다. 점심도 다 먹였으니까 저녁 식사 때까지는 휴업. 마시는 요거트와 커피를 옆에 놓고 홀짝거린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구나.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일이니까 말이다. 죽지 않는 이상 뭔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바빴다. 보람 있는 일도 있었고 짜증나는 일도 있었다. 일은 항상 있다.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요거트의 맛이 시큼 달달 혀를 자극한다. 만족스러운 맛이다. 여태 힘차게 놀렸으니 이제 좀 쉬라고 주는 선물인가, 혀는 맛을 보느라 쉬지 못한다.
쉼, 쉼이 필요하다. 어제는 첫째 바이올린 레슨과 둘째 졸업 파티 때문에 뉴욕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내 기준에서는 꼭 해야 하는 일들인데 굳이 너무 피곤한 날에는 다 그만두고 좀 쉬면 어떤가 싶다. 차가 막힌다고 짜증, 덥다고 짜증, 피곤하다고 짜증을 부릴 바에야 말이다. 차 안에 갇혀서 탈출하지도 못하고 엄마의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 잘 되라고 한 일인데 과연 아이들이 정말 잘됐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반쯤 기대어 누웠는데 날씨까지 흐리멍덩, 나의 쉼을 한껏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쉬자면서 손가락을 놀려 글을 쓴다. 이게 쉬는 건가 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어서 뒤척이다, 생각하다, 기도한다. 내가 원하는 쉼은 이거다. 생각할 시간이 있는 것.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 좋다. 나에게 쉼은 삶이다. 쉼이 있는 삶이 허락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물질의 풍요에 나의 인생을 갈아 넣지 않는 것도 쉼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나는 한심하고 게으른 인간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나에게 충실히 쉼을 제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쉬지 않으면 사고가 마비되어 제대로 된 판단도 사회생활도 어렵다. 최고로 최악인건 불행하다 느껴지는 것이다.
쉬지 않고 사는데도 올바로 판단하고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되며 절대 지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데 나는 나의 쉼을 걸겠다.
다들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가끔, 왜 그러고 사나 돌아보길 바란다. 쉬어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가끔은 세상의 스위치를 끄고 오롯이 나에게로 스위치, 스위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