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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Apr 01. 2022

두뇌 시뮬레이션을 당장 그만 둬라

당신이 생산적이지 못한 이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생각과 동시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나는 행동이 굼뜰 뿐 아니라 행동에 옮기기도 전, 자주 방전되는 편이다. 뭘 하기로 작정하면 대뇌피질에서 무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도 안 한 일에 다 해버린 것 같은 에너지를 쓴다. 쪼다 같은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정지음 씨가 말하길 ADHD 중에서도 <머릿속이 바쁜> 타입은 ‘주의력 결핍 우세형’이라 했다. 아직 진단받은 바는 없지만 어쩌면 나도 ADHD인지 모르겠다. 새로운 병명을 하나 얻는 것이나 단순 쪼다인 것, 두 쪽 다 쉬운 생은 아니라 침울해진다.


운전하다 가끔 람보르기니를 만난다. 람보르기니 운전자들은 잘 모르나 본데 람보르기니는 그냥 서 있어도 람보르기니이다.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부아앙 달리지 않아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보르기니는 항시 도로를 F1 경기장 삼는다. 람보르기니와 함께 신호대기하는 행운이 생길 때마다 나는 창문에 코를 박고 노골적으로 구경하곤 한다. 좀 촌스럽긴 해도 어쩔 수 없다. 곁에 정차한 차들도 쪽팔려서 티 내지 않을 뿐, 마음은 나와 같다고 믿는다. 역시 신호가 바뀔세라 “라~암보르기니!” 튀어나간다. 구경할 틈을 주지 않는다. 멋진 디자인을 구경하고 싶은데…왜 그들은 시승할 때마다 번번이 엔진의 마력을 확인하려 드는가. 매일 경기처럼 달리려고 람보르기니를 산 걸 테니, 이해해 준다. 람보르기니는 99센트 짜리 미니카로 만족하고 F1이라곤 남편이 획득한 학생비자가 전부였던 나는(심지어 나는 F2였다.) 밟자마자 전속력 질주하는 기니(줄임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미친 추진력을 람보르기니에 비유한다면 나는 빼박 경운기 같은 사람이다. 요즘 경운기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라떼는, 내가 어릴 때는 경운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소진됐다. 왼손으로는 레버 같은걸 당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역자 모양의 쇳덩이를 돌려야 시동이 걸렸다. 그것도 쇳덩이를 쥔 오른손이 리듬을 타며 졸라 빠르게 원을 그려야 시동이 걸릴까 말까였다. 시동이 걸린 경운기 조차도 겨우 덜덜거리며 추진하니, 그 속도가 속 터지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오랜 시간 경운기는 경운기로서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럭저럭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보니 마냥 경운기로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경운기도 진화했을 것이다. 요즘 경운기는 시동도 좀 더 쉽게 걸리고 아마 힘도 더 세졌을 거다.


그러니까 나는 좀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 시동 거는 데 시간 고만 허비하고 액셀을 밟는 동시 대차게 튀어나가고 싶다. 미시간 살 때, 볕 좋은 여름이면 스포츠카가 유난히 많이 돌아다녔다. 그건 미시간의 날씨가 오바 좀 보태서 6개월이 겨울이기 때문이다. 눈 쌓인 겨울에는 탱크 같은 차를 몰고, 따뜻한 몇 개월 바짝 스포츠카를 끌며 좋은 날씨를 만끽하는 것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멋진 오빠의 모습을 기대하며 꽁무니를 좇아가노라면 반드시 반전을 만나게 된다. 스포츠카를 쿨내 나게 모는 운전자는 열에 아홉, 할비들이기 때문이다. 할비가 스포츠카 모는 것을 비하하거나 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제 멋진 할비들이라 생각한다. 다만 선입견의 노예인 내게 스포츠카 이꼬르 젊음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미국에 오래 산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스포츠카를 몰고 싶었어. 근데 그땐 돈이 없었지. 지금은 돈이 있어서 스포츠카를 모는데 젊음은 없는 거야.”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금 슬퍼해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가 돼서야 ‘전속력의 인생을 살아야지’ 결심한 사람처럼 약간 가엽게 느껴졌다.


육십 오세 일 때보다는 마흔 일 때 람보르기니로 살고(타고) 싶다. 나는 귀여운 노인이 되고 싶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노인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노인이 마력을 자랑하려 들 때마다 보는 이들의 항마력만 키우게 될 뿐이다.


오늘도 할 일이 많은데 머리로 다 해버려 이미 지쳤다. 여전히 추진력 매우 낮음. 기동성 제로의 상태로 종일 제자리를 맴돈다. 람보르기니의 마력 같은 추진력은 오늘 하루만큼 또 멀어지는 것인가. 그런 추진력을 갖는 것 보다 람보르기니 를 한대 사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불가능). 두뇌 시뮬레이션을 당장 끝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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