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다. 쓸만한 게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여러 글감들이 좁은 길목에 한꺼번에 몰려 트래픽이 생긴 것이다. 글쓰기의 병목현상이라고 할까. 부지런히 써서 하나씩만 내보내 준대도 이 답답한 교통체증이 금세 정리될 텐데, 목구멍(나는 ‘병’이 아니고 ‘사람’이니까) 앞에서는 또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싸움이 난다. 그래서인지 요즘 목구멍이 자주 먹먹하고 울기 직전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일 때가 많다. 나는 먹먹한 상태로 생각에 잠긴다. 글쓰기 천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오늘 더 멀어져 가는가 아니면 1밀리미터라도 가까워졌나.
‘손흥민’과 ‘환승연애’와 ‘친구’, ‘먹는다는 것’, ‘호르몬의 노예’, 개미’, ‘철없는 마흔’ 따위의 글감이 얽힌 털실처럼 엉망진창인 채로 목구멍에 걸려있다. 그래서 억지로 삼켜버리려고 한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을 땐 쌀밥을 작게 떠서 꿀떡 삼키면 좋은데 나는 그냥 무엇이든 쓰면 된다는 마음을 크게 한술 집어넣어 삼키려 한다.
아니면 그냥 이렇게 써버린다.
방에서 ‘개미’가 잡혀도 ‘호르몬의 노예’가 아닌 날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호르몬의 노예’로 살면 작은 것에도 예민해지기 일쑤여서 개미뿐 아니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배고파서 먹는 건데도 죄책감을 느끼니 말이다. ‘호르몬의 노예’는 단짠조합 팝콘을 입에 마구 쑤셔 넣으며 포르투갈 전을 본다. 경기가 끝나고 ‘손흥민’이 우는 것을 보며 같이 눈물을 펑펑 흘린다. 이것은 호르몬 탓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인가. 그나저나 ‘손흥민’이 남자로 보여 큰일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마음만은 ‘친구’ 같다. 실상은 나는 01학번,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고작 코 찔찔(?) 10살짜리 꼬마였다. ‘손흥민’에 열광하고 ‘환승연애’를 보는 나는 진정 ‘철없는 마흔’인가!
생각보다 훌륭한 글이 완성되었다. 병목현상도 쉽게 해소되었으니 나는 이제 글쓰기 천재다!
…씁쓸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