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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Feb 09. 2023

나의 작은 집

1. 나만의 코지한 둥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말하자면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진짜 내 집’(집주인의 집임)도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집’은 내게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농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여기에서 보낸다. 이 집에서 기뻐서 날뛰고 슬퍼서 날뛴다. 내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는 곳, 나만의 파라다이스. 나는 여기서 ’공간을 가꾸려 노력하는 만큼 공간도 나를 빚어나간다‘는 진리를 배웠다. 언젠가는 이 집에서 나가게 되겠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그 진리만은 변함이 없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간이 말해주는 나’를 보고 느낀다고 한다. 나 또한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면 전에는 몰랐던 그 사람의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집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는 개인의 은밀하고 독특한 취향 같은 것이 폭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크한 줄만 알았던 친구 집에서 의외로 하트무늬 일색의 핑크색 방을 발견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박하거나 화려하거나, 어떤 사람이 점령한 공간은 고유하고, 면면이 그이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만의 코지한 둥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방이 세 개 딸린 아파트에서 살았다. 엄마, 아빠, 딸이 셋. ‘안방’은 당연히 엄마 아빠 방, 나머지 두 개의 방은 자동으로 언니들 차지였다. 큰언니가 입던 옷은 작은 언니가 물려 입고, 작은 언니가 입던 옷이 내 차례가 되려면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런 막내가 내 방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완전히 주제넘은 일이었다. 그 후로도 언니들 방에 얹혀 지내는 신세에서 벗어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는 따로 떨어져 지내기보다는 뭉쳐 있기를 좋아했던 것도 같다. ‘개인주의’라는 말이 잘 쓰이지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하면 아랫목에 둘러 앉아 한 이불 덮고 서로의 살을 부대끼며 귤을 까먹던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까. 공중목욕탕, 공중 전화…퍼블릭public이 프라이빗private에 앞서던 시절이었으니까. ‘개인의 나’보다 ‘그들 속의 나’가 우선했다. 막내는 더욱 그러했다. 언니가 물려준 옷을 입고, 내 방인지 니 방인지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 누가 시키는 일을 하며 지내는 일상이었다.


그 와중에 아니, 그래서 어쩌면 더욱 나는 비밀스러운 나만의 공간을 갈구해 왔던 것 같다. 어렸지만 은연중에 모든 걸 같이 하기보다는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방의 한 귀퉁이, 소파 뒤의 공간 등을 이불 따위로 막아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주 아늑하고, 따뜻하고, 비밀스럽게. 물론 비밀스럽다는 건 내 차원에서의 생각이지 식구들은 모두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별 방해 없이 나만의 비밀공간을 자주 짓고, 부술 수 있었다.


가장 오래 부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던 곳은 안방 한 귀퉁이였다. 이 공간이 내 것이 된 건 장롱이 협소해 엄마가 행어를 들여놓으면서부터였다. 처음에 옷이 잔뜩 걸린 행어는 지저분하고 짐스럽게만 보였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도 희로애락이 있다는 걸 쉽게 잊어버린다. 내가 잼민이었던 시절은 더 그랬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되게 억울하고 슬펐던 날. 내 감정 따위는 아무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날. 안방에 오도마니 앉아 빽빽하게 걸린 옷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 뒤로 숨으면 아무도 날 찾을 수 없을지 몰라.


행어를 앞으로 조금 밀어낸 다음, 그 뒤에 나만의 방을 만들고 거기 숨어있자고 생각했다. 벽에 붙여 두었던 행어를 살짝 움직이기만 해서 쉽게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슬픈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션 몇 개를 가져와 한쪽 벽에 기대어 놓았다. 사방에 레이스 장식이 있는 방석을 깔고, 푹신한 이불을 가져오고, 손전등을 구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대한 코지cozy하게 꾸몄다. 그 이후로 자주 나의 작은 몸은 거기 들어가 책을 읽고, 인형놀이를 하고, 간식을 먹고 상상놀이를 했다.


혼자였지만 혼자 지낼 공간은 없었던 어린 시절. 행어 뒤 숨은 공간은 내게 톰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트리하우스였고, 귀여운 다람쥐 둥지였다. 잔잔한 강가에 떠 다니는 조각배, 혹은 우주선이 되었다. 상상만으로 거기는 어디든 될 수 있었으니까. 어린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세계 최고 아늑한, 귀여운, 편안한 공간을 나는 매일 새로 지었다.


한 사람의 손이 빚어내는 공간의 마법을 나는 그때부터 조금씩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배경 사진 우리 집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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