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호주 여행 : 브리즈번 편
친한 언니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호주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매우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호주를 생각하니 설렘의 감정이 몰려왔다. 하루 뒤 회신을 했다. "응 갈게."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여행까지는 3개월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여행의 설렘은 삶의 원동력과 활기가 된다. 스멀스멀 갑자기 다가오는 감기기운처럼 마음을 중독시켰다. 우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여행을 위한 탐색을 시작했다. Real Aussie Life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늘 그렇듯 삶이라는 핑계로 생각보다는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그냥 '가서 부딪히면 되지 뭐...' 그런 얼렁뚱땅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대만을 경우하여 도착한 브리즈번 공항에는 오전에 도착했다.
언니가 알려준 대로 Optus사의 prepaid SIM을 장착하고 브리즈번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줄 Go Card(영국은 교통카드에 Oyster, 홍콩은 Octopus, 그리고 시드니는 Opal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우리도 애칭으로 부를 수 있는 T머니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도 구매했다.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에어 트레인 정류장에 서있으니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음이 느껴졌다. 우려와 달리 브리즈번은 춥지 않았고 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이 빠알간 마음을 식혀주었다.
브리즈번 역은 앤틱했다. 내가 좋아하는 붉은 벽돌과 기둥이 있었고 옛스럽지만 깨끗했다. 역사 앞을 나가니 반가운 얼굴이 뛰어오고 있었다. 언니는 브리즈번 어린이 병원에서 어제까지 근무해서 매우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도 짐을 바로 풀고 언니의 호주인 해부학 교수님과 유기화학 교수님이라는 교수님의 남편이 계시다는 숙소 앞 커피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탈리아 아저씨 알프레도의 얼굴이 그려진 알프레도 커피집 (Alberto's Shot Cafe)는 소박하고 아담했다. 터키 고기가 들어간 부폰(Buffone) 샌드위치와 호주식 라떼인 진하디 진한 플랫화이트(Flat White)는 여독을 녹이는 맛이었다.
호주 교수님 댁에서 페리 스테이션은 멀지 않았다. 우리는 페리를 타고 브리즈번의 명소라는 도심 속 인공해변 사우스뱅크(South Bank)를 가기로 했다. 사우스 뱅크 페리 스테이션 앞에는 최근 포켓몬과 그 친구들이 많이 출몰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인파가 고개를 숙이고 포켓몬을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니 빌딩 사이로 아담하지만 구성진 백사장과 갈매기들이 보였다. 브리즈번 시민들의 여유로운 삶이 느껴졌다. 고층의 차가운 건물 숲 사이의 오아시스 같아 보였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시내 중심가였다. 고풍스런 백화점과 중심가의 시끌벅적함이 있었다. 친구들을 위해 포포 크림(PawPaw cream)과 향 좋은 산양유 비누(Goat soap)도 샀다.
브리즈번에서는 호주 교수님 댁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교수님 부부는 훌륭한 요리사이자 예술가이자 소믈리에셨다. 우리에게 근사한 저녁을 선사하셨는데 양고기와 꼬꼬뱅 그리고 호주 와인 Pierro LTC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건강한 자연과 푸른색 녹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여태껏 먹어본 양고기 중 최고였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는 아마도 신선한 양고기를 구할 수 없어서이리라. 호주식 디저트인 레밍턴(Lamington)도 별미 중 하나였다. 코코넛 가루가 위에 뿌려진 아주 부드러운 초코 스펀지 케이크 같았는데 무엇보다 달콤했다. 부른 배도 달랠 겸 잠시 밖을 걸었다. 밖은 브리즈번 도심 주택가였지만 한산했다. 선선한 날씨에다가 하늘도 높고 별도 많아서 언니와 도란도란 오랜만의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은 새벽같이 일어났다. 호주 동물들을 보러 론파인 국립공원(Lonepine Koala Sanctuary)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나와서 집 앞에서 호주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집 앞 노선을 다니는 시티 글라이더(CityGilder)라는 버스에는 날다람쥐가 그려져 있어 사랑스러웠다. 론파인 국립공원에서는 호주만의 독특한 동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특히 코알라를 안아볼 수 있다. 코알라는 뭉실뭉실하고 푹신하면서 묵직했다. 유칼립투스 잎의 환각성분 때문에 나를 나무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나를 폭 안으니 내가 코알라 엄마가 된 것 같고 따뜻했다. 캥거루, 딩고, 에뮤, 웜벳도 보았다. 호주의 특별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호주 정부의 세관 및 검역 절차는 유독 까다롭다고 한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면서 입국자들을 일렬로 서있게 하고 큰 개가 지나다니면서 냄새를 맡게 하는데 그때 기분이 불쾌했었다.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바로 이 생태계 보존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보며 나를 위로해 본다.
론파인에서 돌아오니,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그리스 레스토랑인 카페 메제(Kafe Meze)에 들려 해결하기로 했다. 브리즈번의 웨스트앤드(West End) 지역은 맛집이 많다고 했다. 그리스식 음식도 정말 만족스러워서 브리즈번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날다람쥐를 타고 브리즈번 역에 가서 우리는 다시 골드코스트(Gold Coast)로 떠나는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