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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Sep 19. 2021

대부분 재미없고 어쩌다 가끔 재미있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두 달 전, 매일 그날의 감상을 남기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딱 1년 전 이맘때쯤 시작했던 회사와 나의 일, 내 주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1년 전 친구와 함께한 수원의 힐링 여행에서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한 편씩 쓰는데 도전했다. 매일 내 모닝커피를 찍어 '오늘의 커피'로 인증하며 그날 하루 회사에서 느낀 점과 퇴근길에 드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발행했다. 그렇게 브런치 북도 만들고 가제본도 만들었다. 그 후 지금 회사로 이직을 했다. 본업이 너무 바빠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핑계로 모든 걸 방치했다. 오늘 문득 내 블로그와 브런치에 저장되어있는 60여 개가 넘는 글의 목록을 쭈욱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 글들은 한 편도 밖에 나오지 못했을까. 컴컴한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그 글들은 좀 더 재밌게 잘 쓰고 잘 마무리해서 발행하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에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시기상 늦어져 내 기억 속에서도 잊히고 만 글이었다. 나의 일상이, 그리고 그것을 풀어놓은 글들이 늘 재미있을 수만은 없는 건데 그걸 인정하는 게 왜 이리 힘들던지. 그리고 그때 썼던 내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그때 난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정기적인 글을 쓰면서 꽤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됐다.  어느덧 경력이 쌓여가고 있는 지금 이 일을 아예 등지려고 생각했던 날, 거기에서 다시 빠져나와 뭐라도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시작했던 글쓰기까지. 


글을 쓰는 일. 유일하게 현존할 수 있는 명상 같은 이 순간, 스트레스일 때도 자극일 때도 있지만 어떤 것이든 끝마치면 내 몸에 건강한 피가 도는 기분이다. 무기력에 시달리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 다시 시작한 일이건만. 지금 두 달째 쓴 글을 돌아보니 기분이 안 좋다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라고 마무리되는 글이 태반이다. 이렇게 뚜렷한 무기력의 색채를 마주하니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가 냉동고 밖을 빠져나와 줄줄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같다고 시작된 한 여름 폭염 시즌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 일기는, 어느덧 습기 하나 없이 선선해진 바람으로 산뜻해진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제발 없어라) 입김을 후 불면 얼어버릴 것 같은 하얀 눈의 계절까지 이어질 것이다. 콘텐츠를 기획해 만들고 자료를 써내는 PR업에 있다 보니 늘 하나의 주제를 기획하고 마지막 문단까지 흐름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글을 써야 될 것 같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럴수록 글쓰기와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내가 써서 올린 초안들이 빨간펜의 공격을 받아 피를 철철 흘리는 수정 요청안이 되어 돌아오면 자신감도 급격히 떨어지고 내가 나와 맞지 않는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닌가 싶은 혼란까지 찾아왔다. 그러던 중 5년 넘게 나가던 독서 커뮤니티 아그레아블의 대표이자 소중한 벗인 그녀로부터 글쓰기 모임을 기획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문예 창 자과 졸업생도 작가도 아닌 내가 글쓰기 모임의 리더가 되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믿기지 않게 글방은 열렸고 더 믿기지 않게 2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그들을 만났다. 수많은 분들의 글을 읽고 낭독을 들어왔다. 책을 출간한 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분들도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주옥같은 문장들로 그 시간을 채워 주셨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배우고 변화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나는 그들의 솔직한 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나가야 할 이유를 배우고 진심을 나누는 법을 배워 간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술술 써지는 날보다 한 자도 안 떠올라 머리를 쥐어뜯는 날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써내는 이 글들은 어쩌면 재미없고 주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하루 반짝,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이게 솔직한 인생의 모습이니까. 


'대부분 재미없고 어쩌다 가끔 재미있는' 


어떻게 바뀔지 몰라 더욱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써나가고 싶다.




#글요일선데이 #글쓰기 #글쓰는일요일 #내가글을쓰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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