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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Sep 19. 2021

어떤 '글쓰기 모임'이어야 할까?

클럽 색깔 명확하게 정의하기

뭐라도 써보자!


이 생각으로 노트북에 빈 창을 열어 놓고 한자도 못쓴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날들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나는 내가 작가인 줄 알았다. 야외로 백일장이라도 나가는 날이면 빨리 써내고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에 30분간 호다닥 써서 낸 글이 상을 타는 마법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땐 몰랐다. 그만큼 제대로 써낸 애들이 거의 없어서였다는 걸. 나보다 더 대충 써내고 제대로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10년 후 마주한 냉혹한 사회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재능은 시궁창이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길고 지저분한지 미처 몰랐다. 나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글로 쌓인 스트레스, 감정을 쏟아내는 글로 풀어볼까 싶어 워드 창을 띄워놓고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하... 내일 쓰자. 



나는 글을 잘 쓰거나
쉽게 쓰는 사람,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란 자신의 글에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조차도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살마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작가 훈련을 하라.

- 주디 리브스



'365일 작가 연습' 책의 저자 주디 리브스는 작가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 '단지 그냥 계속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 15분, 시간을 정해놓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습관은 글쓰기 근육을 키워주고 습관을 들여줄 뿐 아니라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고. 물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내일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일상을 기록하고 특정 주제에 관한 일을 곱씹으며 '글을 쓰는' 이 작은 행위가 반복됨으로 인하여 내 일상과 생각을 돌아보게 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인생의 소소한 순간들을 곱씹게 될 수는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는 본인의 수필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로 시작한다. 나는 밥을 먹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 나는 이러이러해서 슬펐다. 이렇게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나'라는 주어로 시작해 결국은 '너', '그', '그녀'라는 타인으로 주어가 확장되며 세상이 넓어지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그런 시야의 확장은 세상을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 좋은걸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왜 혼자서는 작심 하루일까. 혼자서 죽어도 안된다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해보자. 즐겁게 글 쓰는 습관을 만들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2시간의 킬링타임용이 아닌 즐겁게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모임을 만들 수 있을까. 찾아오시는 분들이 내가 의도한 기획의 취지를 이해하고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했다. 



글 쓰는 스킬이 아닌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모임


잘 쓰던 못 쓰던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어차피 나도 작가나 글쓰기를 지도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글을 쓰는 스킬을 가르쳐주는 곳은 이미 너무도 많았다. 처음 모임을 기획했을 때부터 이거 하나는 명확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 찾아오는 이들이 그 힘들고 지루한 반복의 여정을 함께 이겨내며 결국은 글 쓰는 습관이 밥 먹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기록자'가 되길 바랐다. 


코로나 전 촬영 사진


이 모임의 주요 타깃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전문가들이 아닌 글쓰기를 시작해 보고 싶은데 뭘 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백지 공포증을 앓고 있는 초보자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에 이미 익숙한 이들이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체기에 다시금 이 일이 재밌는 놀이처럼 느껴지게끔 만드는 모임이면 좋을 것 같았다.



랜덤 글감으로 20분간 즉흥 글쓰기



- 이 글감 처음 받아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 엄청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이 글감으로 글을 쓰다가 제가 잊고 있었던 추억의 시간들도 떠오르고 알지 못했던 제 생각들도 알게 됐어요. 


일요일 라운지에서 만나 함께 글을 쓰는 오프라인 모임은 각자의 관심사를 나눈 후, 그날 멤버들이 떠올려 종이에 적어낸 글감을 랜덤으로 뽑아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20분 동안 무조건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보자마자 영감이 줄줄이 떠오르는 주제를 뽑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생각했던 주제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주제를 뽑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주제가 뽑히면 그래서 더 재미있다. 혼자서 글을 썼다면 생각도 못해봤을 주제에 20분 동안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이다. 


'백지 공포증'을 사라지게 하기 위한 훈련이라 아무것도 못쓰시는 분이 있으면 어떤 도움을 드리면 좋을까도 많이 고민했는데 그런 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그 상황 속에 모이니 아무리 제대로 된 글쓰기에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도 뭐라도 줄줄 써내게 된다. 아마도 막막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함께 모여 있는 이들이 뭘 쓰는지 모르게 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돼서 일거다. 이래서 처음엔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  


20분이 지나면 각자의 글을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읽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건 내가 글을 쓴 후 혼자서도 많이 하는 굉장히 좋은 연습이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그제야 알 수 있다. 내 문장이 얼마나 호흡이 긴지,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많이 쓰고 있는지. 내가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말은 무엇인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주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글을 쓰는 작가 입장의 시각, 독자의 시각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일주일간 충분히 시간을 들여 써보는 시간


함께 만나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순발력을 키워주는 글쓰기를 했다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써보고 초고를 다듬어 퇴고까지 해보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모임은 단체 카톡방에 온라인 과제를 부여하고 다시 만나는 일요일 전까지 해당 글감으로 글을 써보고 공유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그림을 그려본들
넌 화가가 아니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할 때
그 목소리를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 빈센트 반 고흐


한 분야에 제대로 미쳐본 자, 반 고흐의 말. 나는 내면의 목소리가 저렇게 나를 방해할 때 그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모든 걸 다 제쳐두고 도망가곤 했다. 반 고흐처럼 진정한 장인이 되려면 저런 마인드를 장착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1기부터 지금까지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너무 기쁘고 뿌듯했던 순간, 감사했던 순간이 더 많지만 두려워서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이 찾아올 때면 그냥 남들이 만들어 놓은 모임에 들어가 글 쓰고 그림도 그리고 조용히 내 취미 생활이나 즐길걸 그랬나 싶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도 매 기수마다 오픈하는 첫날은 그렇게 긴장이 된다. 막상 이렇게 첫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면 신기할 정도로 좋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에 매 번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그렇게 수많은 순간을 함께 쌓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모임을 마친 후 내 손을 꼭 잡고 오래오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신 고마운 분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금 행복해진다. 내가 이런 감사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많은 순간을 함께 쓰고 또 쓰고 소중한 기록으로 묶어갈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나의 모임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계속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어디서든 '글쓰기'로 소중한 '나'를 찾아가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쓰기 #글쓰기모임 #글요일선데이 #뭐라도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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