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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람 Jul 27. 2023

런던과 장애인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원으로 산책을 갔는데 그날은 동네 근처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이 산책을 나온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 학교뿐만이 아니라 성인 장애인을 돌보는 다른 기관에서도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와서 그런지 공원에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많았다. 나한테도 런던의 이런 모습은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런던에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특수학교와 기관들이 분포해 있고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이 선진국인 이유 중 하나는 장애 학생들도 비장애 학생들만큼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 아동이라고 해서 움츠러들지 않고 비장애 학생들만큼 견학도 많이 다니고 야외 수업도 많이 가진다. 전체 학급이 휠체어를 타야 하는 학교여도 학생들을 위해 잘 디자인된 버스를 타고 테이트 모던에 견학을 갈 수 있을 정도니 이 정도면 당당하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런던의 인프라와 소수를 대하는 다수의 세련된 인식이 만나 이뤄낸 결과물이다.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나도 곁에서 열심히 걸었는데 갑자기 어느 학생이 나에게로 훅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너무 놀라 버렸다. 움찔할 정도로 놀라 버려서 스스로가 무안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웃으면서 그 학생과 하이파이브를 하긴 했는데 옆에서 인솔하시던 선생님이 내가 놀란 걸 알아채시고 우리에게 냉큼 다가와 "Sorry!" 사과를 하시며 그 학생을 끌고 가셨다. 그 학생은 끌려가는 순간에도 명랑하게 웃으면서 "Bye!"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학생에게는 아마 하이파이브 하자는 시늉이 "안녕하세요!"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특수학교 무리가 지나가고 나서 공원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는데 적막과 함께 알 수 없는 허탈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왜 이렇게 놀랐지? 물론 비장애인 학생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해도 나는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놀람이라기보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가까웠다. 그렇다. 나는 그 장애 학생이 무서웠던 것이다. 내가 왜 무서웠을까, 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이 삼십 초중반의 다 큰 성인인데. 그 학생이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웠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그 학생이 해코지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결국 외적으로는 그럭저럭 사회에 잘 적응해 가는 런더너인척 했지만 사실 내 속에는 아직도 서울의 한 중학교 일반학급에서 열심히 국영수를 공부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특수학급에 속한 학생들은 나와는 엮일 일이 없는 저 나라의 시민들이었다. 장애인을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마주치기가 유난히 어려운 서울에서 내가 형상화한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는 좋을 리가 없었다. 장애 아동은 일반학급의 학생들을 방해하는 아이들처럼 간주되고,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 장애 학생에 대해 좋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런던으로 이민을 오고서야 서울에는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나는 이미 훌쩍 커버렸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 내가 속한 반과 특수반 사이에 굵게 놓인, 저 후진 선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문득 나와 함께 졸업한 특수학급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 아이들도 나처럼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구경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이십 대 때 그랬던 것처럼 맛집도 탐방해 보고 한강에서 치킨도 시켜 먹어 볼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 엄마가 될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이미 엄마가 된 친구들도 있다. 지금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내가 당연시 여겼던 저 변변찮은 선이 아주 희미한, 사회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선으로 탈바꿈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두렵고 초라한 마음 말고 더 세련되고 포용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명랑하게 하이파이브할 수 있길. 그런 세상이 오려면 어른인 나부터 변해야 할 것이다. Better late than never,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한 뼘의 성장을 시도해 본다. 나도 다음번에는 공원에서 쿨하게 하이파이브를 해 주리라. 그리고 명랑하게 "Bye, see you later!"라고 인사해 주리라.

겉만 번지르르한 어른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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