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과학스토리텔러 우수작품작
“셋, 둘, 하나, 큐”
사인과 함께 스튜디오 천장의 강한 조명이 켜졌다. 그와 동시에 진행을 맡은 제이가 스튜디오 중앙으로 걸어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최고의 고기를 제공하는 배양육의 차세대 프라임 마더를 뽑는 서바이벌 쇼, 고기혁명:인육의 왕의 결승전 무대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수십대의 카메라가 제이를 비추었다. 새하얀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제이의 완벽한 얼굴이 스튜디오 뒷편의 거대한 화면에 떠오르자 사람들의 환호가 울려퍼졌다. 스튜디오에 쩌렁쩌렁 울려 퍼자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 무대 뒤편에서 기다리던 미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메이크업이다, 동선확인이다 하며 정신없이 사람 혼을 빼놓은 탓에 지금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던 차였다. 주변을 힐끔 둘러보니 니클라스나 덕남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니클라스는 연신 거울을 보며 듬성듬성한 빈 머리를 매만지며 힘겹게 멋을 부리고 있었고 덕남도 주머니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쳐 닦고 있었다. 미아는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무릎에 문질러 닦았다.
‘저 둘만 꺾으면 이제 끝인가.’
미아는 저 둘을 보며 생각보다 결승전이 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결승전은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절반에 방청객들의 평가가 절반이 포함된다. 반쯤 벗겨진 머리의 니클라스나 아무리 봐도 냄새나는 오타쿠 같은 덕남의 고기는 아무리 맛있다 하더라도 징그럽지 않을까. 손 끝도 닿기 싫은 사람의 고기라니. 가당치도 않지. 미아도 자리에서 일어서 거울 앞에서 맛있어 보이는 완벽한 몸을 비춰보며 생각했다. 최고의 프라임 마더란 이런 거란다. 평상시에 방송용으로 입던 연분홍 빛의 트레이닝복은 던져버리고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금빛 드레스가 반짝였다. 대기실 한켠에서 덕남은 답답한지 연미복의 목덜미를 연신 벅벅 긁고 있었다. 덕남이 팔을 들어 올릴 때 마다 역한 땀냄새가 퍼져나왔다. 어떻게 저렇게 역겨운 덩어리가 결승까지 온 거지. 덕남에 비하면 니클라스는 차라리 양호한 편이었다. 머리가 좀 벗겨져서 그렇지 최소한 냄새날거같지는 않게 생겼으니까. 오히려 결승전에서 유력한 경쟁상대라면 니클라스 아닐까.
“참가자 분들, 이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귀에 마이크를 꽂은 스탭이 문을 열고 이야기했다. 자, 연습한 대로. 나는 지금부터 수줍은 소녀야. 미아는 최대한 우아한 동작을 상상하며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으악’
갑작스럽게 다리를 휘감는 통증에 미아는 잠시 주저앉았다. 이번 결승전을 위해 평소보다 무리해서 채취한 탓에 후유증이 조금 남을거라더니 이걸 의미한거였나. 허벅지가 불타는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주저앉은 미아를 보고 니클라스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미아씨?”
같은 경쟁자끼리 가식 떨기는. 니클라스 이 자식은 가장 유력한 경쟁상대인 내가 상태가 안 좋아 기권이라도 하기를 바라는가본데, 어림도 없지.
“아, 긴장해서 그런가 잠시 다리가 풀렸나봐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니클라스씨.”
미아는 예사 연습한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니클라스를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고지가 코 앞이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지.
스탭의 안내에 따라 무대 바로 뒤 대기 공간에 나란히 서자 덕남의 땀내가 더 심하게 올라왔다. 아니 정말, 데오드란트라도 쓰던가. 못 참아주겠네, 진짜. 미아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덕남에게서 한 걸음 살짝 떨어졌다. 운 빨로 살아 남는 건 여기서 끝이다, 얼간아.
“그럼 오늘 결승전 무대를 화려하게 빛낼 세 사람의 참가자를 가운데로 모시겠습니다. 니클라스, 덕남, 그리고 미아를 소개합니다!”
세 사람 앞에 있던 문이 좌우로 열리며 강한 조명이 눈을 찌르는 듯이 들어왔다. 밝은 빛 때문에 세 사람 모두 무대 앞으로 나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이 강한 빛에 익숙해지기 무섭게 니클라스부터 호명 받은대로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무대 중앙에는 유리로 된 거대한 쇼 윈도우가 자리잡고 있었다. 세 사람은 연습했던대로 쇼 윈도우 안으로 걸어들어가 마련되어 있는 벨벳이 덮힌 의자에 한 명씩 자리를 잡았다. 쇼윈도우 아래쪽에서는 밝은 조명과 함께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다. 세 사람의 등장과 함께 관객석에서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환호하는 관객들의 시선은 세 사람의 몸 여기 저기에 쏟아졌다. 여러 대의 카메라는 세 사람을 머리부터 다리까지, 다시 다리부터 머리까지 잡아 스크린에 쏘아냈다. 자신의 거대한 몸뚱이가 화면에 비춰지자 미아는 잠시 정신이 아찔했다. 거대한 비계덩어리, 미아를 둘러싼 아이들은 미아의 몸뚱이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하곤 했다. 거울에 비치는 몸을 볼 때면 그 살덩어리를 파고들던 손가락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고 있다. 내 살덩어리는 이제 너희를 먹이고 살찌울 거야. 너희가 손 끝으로 비난하던 이 몸뚱이가 이제는 너희를 먹이고 살찌울거야. 나는 프라임 마더가 될 몸 이니까. 미아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에 앉아 환하게 미소지으며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오늘의 참가자 세 사람의 각오를 한 마디 들어볼까요?”
제이가 운을 띄웠다. 카메라가 여러 대가 일제히 니클라스를 비추었다.
“여러분의 혀 끝에 최고급 요리를 올려드리겠습니다.”
니클라스는 검지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하, 저 인간 또 시작이네. 미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른 카메라들을 생각하며 다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예선전부터 재력을 자랑하며 뭐든 최고, 최고급만 외치던 니클라스는 매번 썩 달가운 상대는 아니었다. 지난 안심스테이크 대결에서도 한 달간 스위스산 최고급 옥수수 요리만 먹으면서 육질을 관리했다더니 1등을 하지 않았던가. 니클라스의 주름 하나 없는 탄탄한 피부에서 그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걸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오로지 단 하나, 벗겨진 머리만이 그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깐 달걀.”
덕남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큽, 맞아. 탱탱하고 통통한 니클라스의 두상은 마치 껍질을 깐 삶은 달걀 같았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민머리를 감싼 덕분에 크기가 맞지 않는 둥지에 억지로 올려진 타조알 같다고 생각했다. 미아는 코구멍만 벌렁거리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니클라스를 잡던 화면이 덕남에게로 넘어갔다.
“덕남 씨, 각오 한 마디 해주세요.”
제이가 발랄하게 질문했다.
“그… 히나미 쨩, 와타시가 화이또 하고있다구!”
화면에 잡힌 덕남의 얼굴이 아직 본 대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땀으로 번들거렸다. 저 정도면 땀이 아니라 육수 아닌가. 미아는 티나지 않게 덕남에게서 멀어지도록 몸을 살짝 틀었다. 걸어다니는 비계덩어리라면 내가 아니라 저 인간이지. 미아는 덕남을 향해 슬쩍 눈을 흘겼다. 곁눈질로 카메라를 쳐다보니 아직 미아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는 없는 듯했다. 휴, 티 나진 않았나보군. 미아는 다시 미소를 다잡았다.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인 미아씨의 각오를 들어볼까요?”
제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메라들이 일제히 미아를 비추었다. 스크린에 미아의 얼굴이 가득 찼다.
“어, 음.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네요.”
미아가 말을 마치고 연습한대로 환하게 웃었다. 앞니는 보이지 않게. 광대는 너무 올리지 말고. 눈가에는 살짝 주름이 잡히도록. 좋아. 객석에서 작은 환호가 들렸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서 이제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히어로로 연승의 성공가도를 달려온 미아에게는 막 팬클럽도 생긴 참이었다. ‘미아는 천국에서 왔나봐! 입 안에 천국이 펼쳐져’ ‘혈관에 콜레스테롤도 미아라면 무섭지 않아’ ‘미아를 보면 혀끝이 짜릿해’’ 같은 현수막들이 환호와 함께 펄럭였다. 의기소침하고 주눅들어 있던 학교폭력의 피해자에서 다음 세대의 프라임 마더가 되기 직전까지 올라간 미아의 인생역전 이야기에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물론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고기가 더 맛있을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미아의 인기몰이에 아낌없이 반응했다. 카메라는 이번에 무대 오른쪽에 있는 심사위원 석을 비추었다.
“이번 결승전 심사를 맡을 네 분의 심사위원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배양육관련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기업, ‘더 뉴 팜’의 최고 경영자 라울, 세계적인 배양육 육질 수석 자문위원인 미스터 부처, 미식 칼럼니스트 에밀리와 세계에서 가장 있기 있는 레스토랑 ‘엘리펀트 맘마’의 셰프 필립입니다.”
네 사람은 호명에 맞춰 차례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저 네 사람의 혓바닥 끝에 내 인생이 계속 비상할지, 다시 방구석으로 추락할지 달렸다 생각하니 미아는 몸이 달았다. 이길 수만 있다면 저 인간들 혓바닥에 온몸 구석구석을 잘게 썰어 내다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잠깐. 배양육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진짜는 못 이긴다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배양육인 척 하고 진짜 허벅지살이라도 큼지막하게 베어서 내놓을걸. 그렇다면 시청률도 확실히 나오고 이렇게 떨고 있을 필요도 없을텐데!
“자, 그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심사위원분들을 소개합니다!”
미아의 생각 사이로 제이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 수십대가 객석을 비추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심사위원은 바로 현장에 계신 관객 여러분입니다. 심사위원분들이 각각 10점씩, 그리고 관객 여러분들의 ‘먹고 싶어요’ 점수 60점을 합해 100점 만점으로 진행됩니다.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각 좌석마다 비치된 리모컨을 잊지 말아주세요!”
제이가 한 손에 자그마한 리모컨을 들어올렸다. 그에 맞춰 관객들도 부산스럽게 자리에서 리모컨을 찾아댔다. 관객들의 소란이 조금 잦아들자 대부분의 카메라들은 다시 제이를 향했고 나머지 세 대의 카메라는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비추기 시작했다. 여기서 긴장을 놓고 표정을 구기기라도 하면 그 얼굴이 전 세계에 방송을 타고 송출될 판이었다. 미아는 티 안 날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억지 웃음을 짓고 있는 입 꼬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어서 심각한 화제라도 시작하면 좋을 텐데. 카메라 위에 반짝이는 빨간 불빛들이 야수의 눈빛처럼 미아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카메라를 신경 쓰다 보니 허벅지의 통증이 파도처럼 다시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미소를 유지한 채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더 뉴팜 관계자들은 반 년은 더 있어야 이 통증이 견딜만 해질거라 했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죽을상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고기혁명:인육의 왕 최종 우승자의 ‘심기’ 의식 사진은 새 프라임 마더의 배양육에 라벨로 쓰이기 때문에 끝에 끝까지 완벽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했다.
미아가 표정에 신경을 쓰는 사이 스튜디오 중앙으로 세 개의 카트가 옮겨져 왔다. 그 앞에는 각각 니클라스, 덕남, 그리고 미아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었다. 제이는 능숙한 솜씨로 세 카트 중 하나의 앞에 섰다.
“프라임 마더를 뽑는 결승전, 이번 요리의 주제는 ‘최고의 고기요리’ 였습니다. 결승 후보분들에게 각자 ‘최고의 고기요리’가 무엇인지를 여쭈어 보고, 각자 배양 전문가와 요리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꾸려 각 참가자 분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고기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사전에 공지해 드렸는데요. 심사위원분들도, 저도 어떤 요리가 나올지 몹시 기대되네요.”
미아는 제이의 하얀 옷이 마치 요리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가, 도축업자의 하얀 앞치마인가. 요리를 돋보이기 위해 준비한 밝은 오랜지색의 조명 아래에서 제이의 하얀 원피스의 주름을 따라 붉은 조명이 반사되면서 원피스 군데군데 피가 낭자한걸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이가 카트 뒤로 물러서자 옷은 다시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래도 결승전이라고 너무 긴장을 했나.
“결승전 첫 번째 순서는 니클라스씨의 요리로 시작하겠습니다.”
호명과 함께 니클라스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제이가 니클라스의 카트 위에 은색 덮개를 치우자 커다란 도자기 냄비가 등장했다. 도자기 냄비에는 검붉은 색의 걸죽한 소스에 엄지 손가락만한 고깃덩어리와 야채들이 푹 절여져 있었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적당히 짭조름한 냄새가 스튜디오에 퍼져 나갔다. 달큰한 과일 냄새가 스튜디오 중앙에 앉아있던 미아의 코에도 들어왔다. 대체 뭐야 저건? 고기 요리라니까 무슨 과일찜이라도 가져온거야?
제이는 작은 국자를 들고 심사위원들의 수에 맞춰 요리를 덜었다. 카메라 한 대가 제이의 손 끝을 비추자 화면에는 국자를 타고 흐르는 검붉은 색의 소스가 선명하게 비추어졌다. 미아는 무의식중에 입 안에 군침이 도는게 느껴졌다.
“꼬르륵”
옆 자리 앉아 있는 덕남의 배에서 요란하게 뱃고동 소리가 들리자 카메라들이 일제히 덕남을 비추었다. 덕남은 요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군침을 삼키는 덕남의 얼굴이 화면에 떠오르자 니클라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겠어, 미아는 요리에 집중하는 척하며 그 너머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작은 접시들이 심사위원석으로 옮겨졌다. 라울부터 차례로 심사위원들은 작은 숟가락을 사용해 소스를 떠 먹어 보거나 작은 고깃조각을 포크로 으깨면서 맛을 보기 시작했다. 관객에서는 묘한 긴장과 함께 침묵이 감돌았다.
“뵈프 부르기뇽이네요, 니클라스 씨. 프랑스산 와인과 배를 곁들였군요.”
침묵을 깬 건 필립이었다. 필립의 평에 라울은 소스를 숟가락 끝으로 찍어 다시 먹어보았다. 약하게 포도의 향이 느껴졌지만 프랑스산이라는건 대체 어디서 알아맞출 수 있는 걸까.
“배에서 올라오는 풍부한 단 맛이 고기와 잘 어울리네요. 고기는 목심이나 엉덩이살일까요?”
에밀리가 말을 이었다. 아니, 최고의 고기요리에 채취도 가장 쉬운 목심이나 엉덩이라니. 자격미달 아닌가.
“하하하, 그럴리가요, 에밀리 씨. 물론 둘 다 제 고기라면 훌륭하기야 하겠지만 오늘을 위해서 좀 더 무리를 했답니다. 제 노력을 증명하자면… 여러분께는 이걸 먼저 보여드려야겠군요.”
니클라스는 몸을 뒤로 돌려 엉덩이를 카메라 쪽으로 향하고 입고 있던 바지의 단추를 풀었다. 깜짝 놀란 제이가 다급히 막으려고 했지만 니클라스의 바지는 이미 발목까지 내려간 뒤였다. 미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 대회에서 이기려면 전 세계 앞에서 바지라도 벗어 젖혀야 하는 건가. 아니, 몸매가 또 좋으면 몰라. 차라리 이렇게 추태를 부려서 기권당한다면 이건 또 왠 횡재야? 이 정도면 방송사고 아냐? 니클라스의 정면이 미아를 바로 향하고 있었기에 미아는 차마 속옷차림의 니클라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대신 곁눈질로 슬쩍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비장의 수 길래 마흔 넘은 아저씨가 카메라 앞에서 엉덩이를 까는거지? 다행히 니클라스는 속옷까지 벗으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스크린에는 니클리스의 새하얀 엉덩이의 윗 둔덕이 비춰졌다. 그리고 그 위로 작고 새빨간 수백 개의 점이 보였다.
“보섭살이라고 합니다. 엉덩이와 다리를 잇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죠. 이 부위가 매우 작기도 하지만 몸 속 깊숙한 곳에 있어 채취도 쉽지 않았지요. 가늘고 긴 바늘로 수백 번 찔러낸 이후에 딱 네 분을 위한 양이 준비되었습니다. 최고의 요리에 걸맞는 최고의 부위라면 역시 힘들게 구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다.”
신나서 몸을 들썩거리며 이야기하는 니클라스를 보며 미아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겨우 저 정도 정성을 가지고 이 정도 퍼포먼스라니.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보섭살이라, 예전에 도축육을 먹던 시절에는 드라이에이징을 통해 스테이크용으로도 가끔 나오던 특수부위이긴 하죠.”
미스터 부처가 말을 덧붙였다. 그 옆에서 라울은 아무 말없이 숟가락 뒷부분으로 고기 조각을 짓이겼다. 화면에는 숟가락으로 누를 때 마다 결결이 찢어지는 고기조각들이 비춰졌다. 라울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취하기 어려운 부위인데 굉장히 잘 만들어졌어요. 이 부위를 채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데. 고기에서도 그 노력이 보이는군요. 잘 먹었습니다.”
라물의 말을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고민을 하며 전자보드에 점수를 입력했다. 미아는 네 명의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다들 심각한 표정인지라 예상 점수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관객들은 어떨까? 덕남의 뱃고동을 자극했던 이 새콤달콤한 냄새가 관객들까지 사로잡았다면 정말 위험한거 아닌가? 그나저나 대체 저 요리는 뭐람. 냄새만 봐서는 그냥 새콤달콤한 과일찜인데 고기가 들어갔다면 좀 짭조름한 장조림 같은 거일려나. 달짝지근한 과일맛 장조림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제이는 심사위원들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니클라스는 어느 새 바지를 다시 갖추어 입고 제이의 옆에 섰다.
“자, 그럼 니클라스씨의 심사위원 점수를 공개하겠습니다.”
제이의 말과 함께 스크린이 까맣게 되더니 숫자들이 깜박이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십, 삼십, 일, 이, 삼 … 삼십사 점! 니클라스씨의 심사위원 점수는 삼십 사 점입니다. 그럼 관객 점수를 평가하기 전에 심사평을 먼저 들어볼까요?”
생각보다 낮은 점수에 미아는 흠칫 놀랐다. 아니, 아까 다들 맛있다며? 뭘 보고 감점 하는건데?
“다른 분들은 감점을 하셨다니 놀랍군요. 보섭살이 원래 부드러운 부위이긴 하지만 니클라스씨의 보섭살은 단언컨데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 부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하, 저 사람은 만점을 줬나 보네.
“글쎄요, 고기가 훌륭했다는데 이견은 없지만 저는 뭔가 불쾌한 느낌이 드네요. 고기를 씹고 삼킬 때 묘하게 약한 불쾌한 맛이 감돌더라구요. 그래서 맛에서는 1점 감점했습니다.”
에밀리가 손가락으로 안경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그래도 맛 평가에 까칠한 에밀리가 저 정도 점수를 줬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요리였을 거다.
“저는 그 답을 알거같군요, 에밀리씨.”
필립이 말을 이었다.
“니클라스씨, 이 요리를 위해 재료들 역시 직접 공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필요한 와인과 과일은 혹시 모두 프랑스 공수해 온 최고급 재료들이었을까요?”
니클라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저 사람 엄청난걸. 미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필립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에밀리가 1점만을 감점했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문제는 와인이었습니다.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은 대부분 장시간 숙성을 거치다보니 쓰고 떫은 맛이 강합니다. 물론 와인으로서 이들의 가치는 최고지만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죠.”
필립이 니클라스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관객들 중 몇이 얼굴을 끄덕이는게 보였다. 아니, 그렇게 와인에 대한 전문가들이 많단 말야? 다들 허세 아니었어? 미아는 불쑥 치밀어오는 짜증을 감추며 니클라스를 바라보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니클라스는 필립의 심사평에 당황해 미아의 시선 따윈 의식할 여력도 없는 듯했다.
“저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뵈프 부르기뇽, 분명히 최고급 요리일테고 두 분이 말씀하신 문제점을 저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음식 선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라울이 말을 이었다. 니클라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며 라울을 바라보았다.
“보섭살, 분명히 시장성 있는 상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뵈프 부르기뇽이라고 발음조차 힘든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니클라스씨의 고기를 구매할까요? 고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요리가 충분했을텐데 무슨 맛인지 짐작조차 안되는 요리를 선보이신다면… 이 대회 이후에 시장에 이 고기를 출시하려는 저희 입장에서는 글쎄요, 높은 점수를 드리기는 힘들군요.“
라울의 말에 아까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냄새는 꽤 그럴싸 했지만 과일 맛 나는 장조림이라니, 뭔가 맛있을 것 같으면서도 느끼하지 않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건 미아 혼자만이 아니였나보다. 라울은 그 지적은 꽤나 합리적인 것 같았다.
“자, 그럼 심사평은 여기까지 들어보고 이번에는 오늘의 가장 중요한 심사위원인 관객 심사가 시작되겠습니다. 제 신호에 맞춰 ‘먹어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버튼을 눌러주세요. 셋, 둘, 하나!”
제이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퍼졌다. 절반으로 나뉜 스크린의 왼쪽에는 아까 받은 점수 34점이 떠 있었고 오른쪽에는 아까와 비슷한 검정 화면에 숫자들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십, 삼십, 아, 더 올라가네요. 사십, 일…..이! 관객점수는 사십이 점입니다., 니클라스씨의 최종 점수는 칠십육 점입니다.”
점수 집계가 완료되고 니클라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민머리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그래도 까칠한 저 네 사람을 상대로 이 정도는 선방한 거 아닌가. 아니, 그나저나 고급 요리를 고급 요리라고 감점을 한다면 평범한 요리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거 아닌가. 이건 과연 공정한 심사는 맞아? 그냥 저 네 사람 하고 싶은대로 맘대로 점수를 매기는 것 같은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동시에 허벅지가 다시 욱씬욱씬 쑤셔오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슬쩍 만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열기가 후끈거리는게 느껴졌다. 우승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심기’를 할테니 항생제도 거부한 미아였다. 욱씬거리는 허벅지에 땀으로 차갑게 식은 손바닥을 올려 진정시켰다. 니클라스는 긴장이 풀어진건지 머리카락마저 힘없이 축 늘어진 것 처럼 보였다. 니클라스의 깐달걀 같은 민머리를 처다보자니 제작진과 최종전을 위한 메뉴 상담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두피가 가장 얇은 피부래요. 튀기면 바삭바삭해지지 않을까요?’
니클라스가 만약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카메라 앞에서 엉덩이를 까는 대신 그냥 민머리만 들이밀면 되지 않았을까?
“자, 그럼 이제 덕남씨의 요리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제이의 목소리에 미아는 상상을 멈추고 덕남을 바라보았다. 미아의 옆자리에서 암내를 연신 풍기며 땀을 닦던 덕남은 이름이 호명되자 쭈뼛이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덕남이 가까이 오자 제이가 코끝을 찡긋거리는 장면이 스크린에 비춰졌다. 제이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덕남의 카트 앞에 섰다.
“덕남씨의 요리를 공개합니다!”
은색 덮개가 치워진 카트 위에는 작은 가스버너가 있엇고 그 위에는 작은 전골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카메라 한 대가 수증기를 피해 냄비 속을 비추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글동글한 고깃덩어리들과 투명한 젤리 같은 고깃덩어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보였다. 약한 비릿한 고기 잡내와 함께 여러 향신료들의 쌉싸래한 향이 뒤섞였다. 제이가 작은 국자를 사용해 야채와 고깃덩어리들을 보기 좋게 나눠 담은 다음 가스 불을 껐다. 그릇에 담긴 고기들은 대체 어느 부위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형태였다.
“도가니탕… 같기도 하고… 이 투명한 덩어리들은 연골같기도 하네요.”
미스터 부처가 젓가락으로 작은 투명한 조각을 들어 올렸다. 작은 조각은 젓가락 위에서 용수철처럼 흔들거렸다.
“이 공 같은 것들은… 단면이 굉장히 부드럽네요. 마치 내장같아요. 간을 삶았을 때 나오는 질감과 비슷하네요.”
필름이 스프 속에 있던 동그란 덩어리를 건져 나이프로 단면을 썰며 말했다. 단면이 부드럽게 썰리는게 보였다. 진짜 내장인건가? 내장은 비인기 부위라서 이번 심사에서 불리할텐데. 그렇다면 선지인가? 선지는 여러 의학적인 사유때문에 채취가 금지되었다고 들었는데. 저 미친놈이 설마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했을라고. 미아는 심사위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덕남이 어떤 고기를 선보였는지 추측하느라 머리 속이 부산했다.
“덕남씨, 시식 이전에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군요. 어떤 요리를 준비하신 건가요?”
에밀리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 속에 뭔가가 떠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모두 시식을 시작하지 않고 덕남을 지켜보았다.
“흐..흐흐… 흐흐흐… 그.. 그건 또….또 다른 와타시랄까.”
덕남이 우물쭈물 거리다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던 미아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보니 다들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 가장 호기심에 넘쳐 고기조각들을 이리 저리 썰고 관찰하던 필립은 식기를 두 손에 든 채 굳어버렸다. 미스터 부처는 상기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연신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라울은 덕남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 손으로 턱 밑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오로지 에밀리만 숟가락을 여전히 들고 있었다. 설마 저걸 진짜 먹이려고 한거야?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거 아니야? 미아는 혹시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무대에 뛰어오를 사람들은 없는지 눈알을 굴려 스튜디오 주변을 보았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다. 관객석도, 스튜디오도 침묵이 잠식했다. 그럼 지금 저 인간은 자기 생식기에 그 큰 바늘을 꽂았다는거야? 이거 찌질한 놈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담한데?
“자, 시식을 해봐야죠. 심사를 하려면.”
에밀리가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 그래도, 남자의 고간을 정말 먹겠다는거야? 저 여자 비위가 엄청난데? 모두의 시선이 에밀리의 그릇에 꽂혔다. 수십 대의 카메라들은 일제히 에밀리의 손 끝을 비춰내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동그란 고깃덩어리, 아니 덕남의 고환을 작게 썰어 입에 넣은 후 눈을 감았다. 세상에, 저 여자 진짜 입에 넣었어?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입 안에서 굉장히 작은 조각들로 부드럽게 부서지는 게 느껴져요. 마치 도축육을 먹던 시절에 먹어봤던 푸아그라를 다시 먹는 기분이네요.”
에밀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들도 쭈뼛거리다가 최대한 작게 조각을 내어 입에 넣었다. 정말 눈물겨운 직업정신이군, 미아는 생각했다. 덕남도 심사위원들이 정말 먹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들은 자기 성기가 공격받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한 법이지.”
어린 미아를 앉혀두고 할머니가 성교육이랍시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마 덕남은 지금 머리 속으로 자신의 고환이 잘게 썰려 씹혀 삼켜지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걸까? 새하얗게 질린 덕남의 얼굴을 보며 대담한 놈이라 생각했던걸 취소했다.
“이건 아마도… 음경이겠군요.”
미스터 부처가 모든 걸 체념했다는 말투로 말하며 최대한 작은 조각을 찾아 그릇을 뒤적거렸다. 옆 자리의 라울은 고기를 먹는 척하며 안에 들어있는 쑥갓과 야채만 집어먹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건 미아 밖에 없는 듯했다. 오로지 에밀리만 호기심에 찬 눈으로 고기를 포크로 찔러보고 썰어서 단면을 구경하고 입에 넣고 있었다. 그런 에밀리 앞에서 덕남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지나친 모험은 좋지 않다니까. 덕남은 애당초에 경쟁상대로 고려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돌발 행동을 할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아니, 세상에 누가 고환과 음경으로 끓인 스프를 먹어보고 싶겠냐고? 미아는 속으로 킥킥거렸다. 예상치도 못한 니클라스의 낮은 평가와 덕남의 폭주 덕에 미아는 이미 승리를 거머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심사위원분들의 점수를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이 다시 까맣게 변하더니 숫자가 차례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십, 이십, … 잠깐만 이거 몇 점 만점이더라? 이게 이렇게까지 올라간다고?
“사…삼심오 점! 니클라스씨보다 1점 더 높은 삼심오 점입니다.”
점수를 발표하는 제이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이렇다면 심사위원들의 평이 더욱 기대되는데요, 어느 분께서 먼저 시작하실까요?”
라울이 마이크를 들었다.
“다른 분들께서 이렇게 높은 점수를 주시리라 생각지도 못했네요. 생식기를 배양할 수 있다는건 저희 연구팀도 확인해서 알고 있었지만… 굳이 먹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서 연구 단계에서 정리했었는데… 이게 시장성이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마트 고기코너 앞에 나이제한 딱지라도 붙여야 하는거 아닐까요? 뭐, 과감한 용기와 시도를 높이 사 6점 드렸습니다.”
잠깐, 덕남은 딱 5점을 잃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남은 심사위원 중에 최소 둘 이상이 만점을 줬다고? 미아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해 안 되는 건 덕남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보아하니 덕남은 어차피 우승을 할 수 없을 바에야 해보고 싶었던 걸 그냥 질러본 듯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성기와 생식소를 야무지게 씹어삼키는 모습을 보자 패닉이 온 듯했다. 덕남의 높은 점수에 당황한 미아의 겨드랑이가 축축해지는게 느껴졌다.
‘야, 비계 인간. 니 겨드랑이에서 육수나오잖아.’
짖궃은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메아리쳤다. 겨드랑이에 땀이 차자 ‘비계 덩어리’, ‘비계 인간’ 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흘러내리면 안 되는데. 미아는 매우 놀랐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겨드랑이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덕남을 향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자 겨드랑이가 자연스럽게 열리면서 땀이 마르기 시작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소의 생식기를 가지고 하는 요리가 보양식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기 음경부분의 고기는 특히 투명하고 탄력이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아 조금 아쉬운 마음에 1점 감점했습니다.”
부처의 말이 끝나자 관객석에는 야유와 함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덕남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부처의 말은…
“보… 본 적 있냐구요!”
덕남이 외쳤지만 마이크는 이미 꺼져있었다. 미아는 덕남이 니클라스보다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도 잊은 채 속으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잠시나마 덕남처럼 나도 다리라도 벌리고 올걸 그랬나 생각했지만 그건 천박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프라임 마더가 될 나는 너희와 다르게 아무 데나 주사기를 박아댈수는 없지. 미아는 코웃음을 치며 옷매무새를 다잡았다.
“하지만 스프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씹을 때 잡내가 살짝 느껴지긴 했는데 함께 곁들여진 향신료들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어요. 새로운 요리의 지평이 열린 것 같아 저는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에밀리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심사평을 말했다. 에밀리의 심사평에 덕남의 화가 한결 누그러 진 것 같았다. 새하얀 피부에 밝은 금발의 전형적인 공주 같은 인상의 에밀리니까 카메라 앞에서 저딴 걸 먹고 저런 헛소리를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내가 그랬으면 다들 ‘못 먹는 게 없는 돼지년’이라 부르면서 방송 화면을 캡쳐하고 여기저기 합성해 뿌리고 다닐 거야. 미아는 짜증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누군가는 ‘입으로 먹는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주둥이로 처먹는다’ 라고 한다. 미아는 항상 후자에 속했다. 그래도 여기서 우승하기만 하면 내가 뭘 먹든 사람들은 자기관리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치겠지. 에밀리를 매섭게 노려보다보니 필립의 심사평이 지나가 버렸다. 뭐 듣거나 말거나 음식이 좋았네, 훌륭하네, 어쩌네 하고 말았겠지.
“자, 놀라운 결과가 등장한 가운데, 이제는 관객분들께서 심사를 해 주실 차례입니다. 다들 리모컨 잊지 않으셨죠?“
제이의 목소리에 맞춰 관객석이 부산해졌다. 스크린의 화면이 점수판으로 다시 바뀌었다. 왼쪽에는 크게 35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셋, 둘, 하나!“
오른쪽에 빠르게 숫자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의 성기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좀 더럽지 않나? 정말 먹고 싶다고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에이, 설마. 하지만 미식에 눈이 돌아간 인간의 욕망은 미아의 간절한 바람을 산산조각냈다.
“오…오십삼 점!”
제이 역시 적잖이 당황한 눈빛이었다. 60점 만점에 53점. 아까 심사위원 점수를 합하면 얼마지?
“팔십팔 점! 덕남씨의 생식기 스프가 팔십팔 점을 받았습니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군요. 다들 이 새로운 맛을 만나보고 싶으셨나 봐요.“
무대에 서있던 덕남은 사색이 된 채로 자리로 돌아왔다. 보아하니 만에 하나 덕남이 이기기라도 한다면 ‘심기’의식을 어떻게 해야할지 심란해 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덕남의 선전에 미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다들 정말 제정신이야? 대체 어떤 생각을 해야 남의 고추가 먹고싶은 건데? 심사위원석을 보니 에밀리와 필립은 예상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 맛있으면 다라고? 그딴 논리라면 눈알이든 뇌든 다 내줄 수 있는데! 미아는 여자로 태어나 음경이 없다는 사실이 심각하게 아쉬웠다. 만약 이번에 패배한다면 이건 다 내가 여자라서 그래. 아쉬운대로 괄약근이라도 내놓을걸 그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근위 소금구이도 제맛이라던데…
“자, 이제는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 미아씨의 요리로 넘어갈 차례네요.”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이는 미아를 무대로 호출했다. 미아는 허벅지의 통증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연습한 미소를 장착하고. 쇼윈도우를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중앙으로 몸을 옮겼다. 첫 본선을 치를때만 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암퇘지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칼을 뽑아 든 전사의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고개를 들어 관객석을 쳐다보다가 현수막을 발견하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 먼지투성이 교실 바닥에서 뚱뚱하다고 발로 걷어차여가고, 땀냄새 난다고 향수를 병째 뒤집어 쓰던 내가 이제는 이렇게 모두 앞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잖아. 미아는 자신만만한 훈련된 미소를 지으며 덕남의 성기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자, 그럼 미아씨의 요리를 공개하겠습니다.“
제이가 미아의 카트 위에서 은빛 덮개를 치우자 그 안에서는 황금빛으로 노릇하게 튀겨진 고기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스튜디오에 퍼져나갔다.
”이건… 치킨이네요.“
도축육이 모두 금지당하고 배양육을 먹기 시작한 이례로 몇몇 음식들은 비록 고기의 종류는 차이가 있지만 도축육으로 하던 요리의 이름을 그대로 전승했다. 이제 치킨은 사람의 허벅지나 가슴 언저리의 근육을 집중적으로 배양해 만든 튀김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흠, 치킨은 뭐, 굳이 심사하지 않아도 맛을 알 것 같은데 말이죠. 덕남씨처럼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드신게 아니라면요.“
필립이 접시를 받으며 말했다. 저 인간은 지난 준결승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미아의 요리를 앞에 두고 먹기도 전에 볼멘소리를 지껄였다. 거참 혓바닥 한 번 기네. 닥치고 주둥이에 쳐 넣으라고. 미아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필립은 미아가 당황하기를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포크를 들어올렸다. 이런 흔하디 흔한 치킨은 편의점에 가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단 말이지.
“앗!”
포크로 치킨을 집은 다음 칼로 썰려는 순간 무언가 단단한게 안에서 느껴졌다. 이물질인가? 배양육에 이물질이라니, 더 뉴팜도 이대로 나락으로 가겠군. 필립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칼로 조심스럽게 이물질 주변을 벌렸다. 하얀 엷은 수증기 사이로 살코기들이 결을 따라 찢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작은 회색 막대가 보였다. 카메라들은 일제히 필립의 손 끝에 집중했다.
“이건…!”
필립은 칼을 내려놓고 손으로 막대 끝을 잡은 후 반대손으로 살코기 덩어리를 잡아당겼다. 살코기와 인대 등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작은 회색 막대기가 필립의 엄지와 검지에 사로잡혔다. 당황하는 필립의 얼굴을 보며 미아는 이번에는 진심을 다해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었답니다.
“뼈네요. 완벽한 정강이뼈요.”
미스터 부처가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사람들이 도축을 멈추고 배양육을 먹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 고기 속에 파묻힌 뼈조각. 양념이 깊숙히 스며든 뼈조각을 마지막으로 쪽쪽 빨아본게 언제였지. 이 매끄러운 촉감을 살아 생전 다시는 만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필립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큰 결심을 한 듯 손으로 치킨을 들고 한 입 베어먹은 에밀리가 울컥해 말했다. 세상에 치킨이라 불리는 요리는 많았지만 그저 짭조름하게 양념된 살결을 느끼려고 먹던게 아니었나. 에밀리는 볼에 튀김조각이 뭍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 저기를 물어 뜯으며 발골에 집중했다.
“아직 남았습니까? 이건 뼈 째 뜯어야 진정한 맛을 심사할 수 있다구요. 남은게 있다면 더 주십시오.”
필립이 다급히 외쳤다. 제이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집게로 치킨을 한 조각 짚어 필립에게 건냈다. 미아를 향해 날을 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필립은 온순한 개처럼 치킨을 두 손으로 들고 뼈를 갉아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관객들 중 몇몇은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필립은 앞니로 뼈조각에 붙은 고기를 갉아먹으며 오랜만에 만족감을 느꼈다. 각자의 접시는 빠르게 비워졌고 심사위원들은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미아는 그 모습을 보며 우승을 자신했다. 이윽고 심사위원들은 하나 둘 전자보드에 점수를 입력했다.
“자, 그럼 미아씨의 심사위원 점수를 확인해 볼까요?”
제이가 차분하게 진행을 이어갔다. 어두운 스크린 화면에는 숫자들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십, 이십, 삼십, … 그리고.. 일, 이, 삼… 삼십오! 삼십오 점 입니다!”
응? 잠깐, 뭐라고? 니들 그렇게 맛있게 먹어놓고 겨우 삼십오 점이라니? 무대 한 켠에서 미아의 팬클럽 회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삼십오 점. 덕남씨와 같은 점수입니다!”
미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내 뼈를 깎는 노력이 저딴 자지스프랑 같은 점수라고? 저새끼들 잔뜩 가져가 먹을 때는 언제고 점수 가지고 장난하나? 머리에 피가 쏠리며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허벅지에도 화끈화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놀랍군요. 저는 정말 즐겁게 먹었는걸요.”
에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았을 때 에밀리는 분명 최고점을 줬을거야. 의심스러운 건 역시 필립이려나.
“다만 껍질에 기름기가 조금 많아서 살이 찔까봐 걱정이되서요. 그래서아쉬운 대로 9점 드렸습니다. 0.5점 단위로 매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에밀리의 어이없는 사유에 미아는 카메라들이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도 까먹고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아니, 실컷 먹어놓고 살찔까봐 걱정이 된다고?
“저는 의견이 좀 다르긴 합니다. 치킨은 역시 기름져야 제맛이죠. 저는 정말 간만에 뼈가 달린 고기조각을 뜯어먹을 수 있었네요. 정말 그리웠던 맛이었습니다.“
미스터 부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뼈조각이 생각보다 물러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미아씨, 다음에는 운동을 조금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럼 뼈가 단단해진다던데…“
미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이 모든게 다 내 탓이라는거야? 내가 이렇게 한 몸 바쳐 뼈를 깎아 가면서 너희에게 최상의 맛을 제공해줬는데? 갑자기 억울함이 밀려왔다. 심사하는 너희야 거기 앉아서 편하게 나오는 음식을 다박다박 먹지만 참가하는 우리는 매 달 적격여부 판단한다고 피검사에, 정신감정에, 배양육을 만들려면 약물도 검출되어서는 안된다고 매주마다 소변검사까지 수행하고는 정작 세포를 채취할 때마다 마취약 성분이 남으면 안된다고 마취 하나 없이 크고 기다란 바늘이 몸 속을 들어올 때면 정말 인간은 먹기 위해, 또 먹히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회의감이 들곤 했다. 엉덩이에 수백개의 바늘을 꽂았을 니클라스의 고통은? 비록 자원했다고는 하지만 성기에 생검용 바늘을 찔러야 했던 덕남의 고통은? 내 고통은? 미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걸 보고 제이가 조심스럽게 미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제이의 치마자락에 붉은 조명이 어른거렸다. 치마에 비친 붉은 조명은 핏자국같아. 미아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추스르려 애썼다. 저건 핏자국이야. 다들 온 몸에 다른 사람들의 핏자국을 달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살코기를 베어 물 때 그들이 흘린 핏자국을 몸에 새기는 거야. 미아는 심사위원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필립씨, 아까 뼈를 깎는 고통이라 하셨죠? 맞아요. 이건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었어요. 최고의 고기를 만들기 위해 아무런 마취도 없이 생 살을 파내고 뼈를 긁어내서 완성한 고기랍니다.“
미아는 오른손으로 치마 자락을 걷어 젖혔다. 미아의 새하얗고 통통한 허벅지에는 커다란 반창고가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미아는 그 중 하나를 잡아뜯었다. 반창고 아래에는 시퍼런 멍자국과 함께 살이 움푹 패인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한 가운데에는 새끼손가락 두께만한 동그런 피딱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카메라 여러 대가 미아의 허벅지와 영광의 상처를 스크린에 띄우자 관객석에서는 짧은 비명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아, 아니… 미아씨. 저는 이게 최고의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필립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입가에는 미아의 드레스처럼 노르스름한 튀김옷 부스러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필립의 이야기에 미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필립이 보복성으로 감점을 한게 아니었다고? 그렇다는건…
”그 뼈를 깎는 노력 때문입니다. 미아씨.“
라울이 말을 이었다. 미아는 당황스운 표정으로 라울을 바라보았다.
”대량생산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건 프라임마더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일입니다. 지금 미아씨의 다리만 봐도 통증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이죠.“
전혀 예상치도 못한 라울의 카운터 펀치에 미아는 어질어질했다. 라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기껏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여기 까지 왔는데 아프니까 그만두라고? 미아의 시선이 부옇게 흐려졌다. 차가운 교실 바닥의 감촉과 동급생들이 손가락질 하며 끼얹어 대던 향수냄새가 코 끝에 되살아 나면서 인생이 다시 과거로 내팽겨쳐지려 한다. 두 번 다시 비계 덩어리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건 제게 이걸 또 할 수 있냐 물어보시는 질문인가요?“
온몸에 끓던 피가 차갑게 식으며 미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아직 이 판은 끝나지 않았어. 미아는 다시 자신만만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말했다.
”만약 제게 또 할 수 있겠냐 물어보신다면, 제 대답은 ‘당연하죠’ 입니다. 바닥까지 내몰렸던 제 삶을 구원해준건 여기 계신 모든 관객분들의 사랑 덕분입니다. 제가 이 몸 하나로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을 큰 감동으로 돌려 드릴 수만 있다면 저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또 할 수 있어요.“
미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허벅지의 아픔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위기를 잘 모면한 것 같다는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데다가 ‘여기서 눈물 한 방울 흘러 내린다면 완벽할 텐데’ 생각을 하자 눈물이 정말로 흘러내렸다. 미아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지만 카메라들은 연이어 미아의 눈물에 초점을 맞췄고 관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미아씨의 관객 점수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번 점수가 집계되면 이번 시즌 최종 우승자가 결저이 되겠네요! 여러분들의 손 끝에 이번 시즌의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자, 하나, 둘, 셋!“
검정 스크린의 왼쪽에 35라는 숫자가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오른 쪽 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십, 이십, 삼십, 사십, … 숫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이번 시즌의 최종 우승자는 미아! 미아입니다!”
제이의 최종 발표에 관객석의 모든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심사위원들은 자리에서 나와 한 명씩 차례로 미아에게 악수를 건넸다. 미아에게는 화려한 꽃다발과 커다란 우승패가 전달되었다.
”자, 최종 우승자의 세레모니, ‘심기’를 할 시간이죠.“
미아가 눈물을 닦는걸 지켜보던 제이가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얀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한 사람은 액체질소가 든 탱크를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작은 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액체 질소가 담긴 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사람은 미아의 치마자락을 걷었다. 아니 잠깐, 너무 많이 올렸어. 아래에서 보면 팬티가 보일거같단말야. 미아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주위를 둘러 싼 카메라들 때문에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을 내려 최대한 속옷을 감추려 애썼다. 그러는 와중 다른 사람은 은색 가방을 열고 거대한 바늘을 꺼내들었다. 생검용 거대한 바늘은 붉은 조명 아래에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저… 저번에는 오른쪽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왼…”
미아의 말을 끊고 제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자, 모두들 기다리셨을 우승자의 첫 번째 ‘심기’입니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맛있는 살코기 조각들이 몸에서 떼내어져 배양액에 들어가는 모습을 놓치지 마세요! 첫 번째 심기로 만들어진 모든 고기들의 수익 중 일부는 불우이웃과 유기견들을 위한 봉사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랍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제이와 함께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셋, 둘, 하나!”
거대한 바늘이 미아의 오른쪽 허벅지 피부를 찢고 들어가 뼈를 긁기 시작했다. 일전에 느꼈던 아픔이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꼬리뼈까지 저릿한 느낌이 온 몸에 퍼져나갔다. 꽃다발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 싼 카메라들을 생각하니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마다 빨간 핏자국들이 생기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 새 무대를 내려간 덕남과 니클라스 역시 무대 앞에서 미아의 첫 번째 심기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빨간 반점이 생기고 있었다. 반점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자 바늘이 무자비하게 빠져 나가며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바늘이 빠져나간 자리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온 몸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살짝 현기증이 나서 미아는 잠시 휘청했다. 뒷처리를 하느라 분주한 심기요원들을 자세히 보니 얼굴 뿐만 아니라 온 몸에 붉은 핏자국들이 선명했다. 것봐, 다들 온몸에 핏자국을 달고 살고있다니까. 그 핏자국들은 점점 커져서 사람들의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아아, 그렇구나. 내 허벅지에 있는 이 상처들은 성흔이구나. 너희를 먹여살리기 위한 성흔. 그리고 너희는 온 몸에 내 핏자국을 새기면서 나를 영원히 기억할거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