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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5. 2020

[뮤지컬] <펀 홈>과 윌리엄 모리스

국내초연 뮤지컬 <펀 홈> 포스터와 원작『펀 홈』

토니어워즈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5개 부문(작품상, 음악상, 극본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수상에 빛나는 <펀 홈(Fun Home)>이 국내 초연으로 찾아왔습니다. 지난 7 중순부터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 >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 그린 동명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 또는 작가주의 만화『펀 홈』을 그 원작으로 합니다. 벡델은 2017년 버몬트 최고 만화가상을 받기도 한 미국의 만화가로,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 작가이기도 해요. 『펀 홈』은 벡델의 회고록으로, 뮤지컬 <펀 홈>은 장의사이자 영문학 교사로 일하다 돌연 죽음을 맞았던 그녀의 아빠 –사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Closet Gay였던- 브루스 벡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해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뮤지컬 <펀 홈>, 벡델 가족; 브루스 벡델 (사진 ⓒNews Culture)

앨리슨의 아빠 브루스는 상당히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래된 주택을 복원하거나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전문적으로 즐겼다고 해요. 그래서 벡델 가족이 살았던 집을 묘사하는 대사 중 “(18세기 말에 유행했던) 헤플화이트 양식의 의자”나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와 같은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월간지 <더 뮤지컬> 기사에 따르면, 연출가와 무대디자이너가 <펀 홈>의 한국 초연 무대를 위해 대본에 언급된 수집품과 비슷한 소품들을 구하려 노력했다고 하지요. 브루스의 취향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된 모리스의 벽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근대 디자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디자인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모리스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에 열렬하게 중세 시대(the Middle Ages)를 찬양하는 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중세의 정신에 매료됩니다. 모리스는 중세의 여러 미술 양식 중 고딕(Gothic) 스타일에 빠져 고딕풍의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건축가의 제자가 되었지만, 곧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Coley Burne-Jones)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를 만나 화가로 전향하기로 결심해요. (라파엘전파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16c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라파엘로(Raphael) 이전의 미술을 부활시킴으로써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이상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이들입니다.) 


레드 하우스 전경
레드 하우스 내부
레드 하우스의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

모리스는 제인 모리스와 1859년 결혼하면서 중세의 궁전을 축소한 듯한 신혼집을 짓고 ‘레드 하우스(Red House)’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특히 레드 하우스의 내부는 모리스를 주축으로 그의 예술가 친구들이 함께 완성했는데요, 창문에는 번 존스가 그린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고, 내부를 채운 가구들도 모리스가 중세풍으로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19세기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화를 전면에서 부정하면서 장인들이 디자인하고 기계가 아닌 수공예로 만들어내는 중세의 작업방식을 따른 것이었지요. 이를 시작으로, 모리스와 친구들은 1861년 모리스 마샬 포크너 상회(Morris, Marshall, Faulkner & Co.)를 설립하게 됩니다 (1874년부터  ‘모리스 상회’로 단독 운영). MMF 상회는 ‘훌륭한 장식’을 목표로 건축물의 외부와 실내장식을 모두 아우르며 중세풍 미학, 수공예와 전통 섬유예술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리스가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영역이 바로 벽지를 위한 패턴 디자인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모티프로 구성되었습니다. 식물의 꽃이나 잎, 혹은 새와 같은 동물 등 자연의 형태를 평면화/추상화하여 디자인한 모리스의 벽지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지요.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아칸서스 벽지(1875), 버드나무 가지 벽지(1887), 공작과 용이 그려진 모직물(1878)

모리스는 중세 시대 장인이 무엇인가를 직접 만드는 데서 느꼈을 본질적인 즐거움을 다시 찾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모리스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생산과 소비의 윤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사물을 즐겁게 만든다면 그것을 사용할 때도 즐거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러한 태도를 통해 일상생활 전체가 창조성을 품은 예술의 형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리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진실된 자세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이 생겨나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의미 없는 고역’이 아니라 ‘유용한 작업’을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물건들을 생산하고, 그것을 일상 생활 속에서 예술적으로 누리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모리스의 사상이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시장을 장악하던 산업화 시대의 디자인을 개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뮤지컬 <펀 홈>으로 돌아옵니다. 평생을 자신 스스로와 가족들을 속이며 살았던 브루스 벡델은 시대를 변혁하려고 했던 모리스의 벽지로 둘러싸인 ‘펀 홈’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생활했던 것일까요? 공연은 이번 달 30일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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