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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Feb 24. 2017

정보 불균형

우리 집엔 TV가 없다. 며칠 전 우리 동 게시판에 케이블 TV 수신료 공지 글이 붙었기에 관리사무소에 갔다. 이번에 지역 케이블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우리 아파트 전체에 케이블 수신이 되는 듯한데 나는 TV가 없으니 케이블을 쓸 일도 없어 공제 신청을 하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자


케이블 TV 공제 신청하려고요.


라고 말했다. 직원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주길래 빈 칸을 채우고 돌려줬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이번 달은 부과될 거고 다음달부터 빠져요' 말했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쓴 적도 없는데 디폴트값이 부과라니.


그런데 그 직원은 내가 낸 서류를 보며 TV가 없는데 입주자 카드 작성할 때 안내를 못받았느냐고 물었다. 반 년도 더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날 뿐더러 내가 오늘 낸 서류와 이사오며 TV 수신료 공제 신청이 뭐가 다르고 같은지 몰라 당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TV가 없다고 했는데 케이블 TV 수신료는 납부해왔단 얘기인건가.


맞았다. 그 직원은 모니터에 눈을 둔 채로, 이사온 뒤로 낸 관리비에 케이블TV 수신료가 포함되어 왔는데 몰랐느냐며, 고지서 확인을 자세히 하라고 했다. 당황했다. 그동안 난 관리비 내역서를, 숙지는 안 해도 항목 이름만큼은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굴리며 반 년간 받은 관리비 내역서를 기억해내려 했지만, 도통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랬나?


가만, 그럼 내가 반 년 전 이사와서 TV 없다며 TV 수신료 공제 신청하러 왔을 때 케이블TV 수신료 공제 신청은 따로 안 한 건가? TV 없다고 하면 묶어서 공제 신청을 해야 했던 게 아닌가? 이 서류가 그 서류고 저 서류는 다른지 아닌지를 관리사무소 직원도 아닌 내가 어찌 알거라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관리사무소 직원은 평소 고지서를 꼼꼼히 보지 않고, 입주자 카드 쓰러 와서 서류를 챙기지 않은 날 탓하듯 말했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매일 하는 일이니, 업무 절차와 용어, 서류를 잘 알테지만, 직원이 아닌 나는 당연히 용어가 낯설고 용어 구별도 못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TV가 없다고 했는데도 그간 케이블 수신료를 부과한 건 이상한 행정 아니냐고 따졌다. TV 없다는 집이 케이블 방송은 어찌 보겠나. 사과를 바란 건 아닌데 자꾸 내 잘못으로 몰아가니 불편했다. 둘이서 한참 실랑이를 벌였고, 관리사무소 직원도 처음과 달리 한 발 물러서서 케이블 방송사에 그간 잘못 부과된 걸 환불해줄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여전히 관리사무소의 이상한 행정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은 안 했다. 본인이 근무하기 전의 일이니 모르지만, 관리사무소 사람들이 안내를 제대로 안 할 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있어봐야 결론 안 날 얘기라서 알았다, 하고 나왔다. 머리에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직원 몇 명이 수기로 하는 행정이라지만,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동대표회의에 들어가야하나, 이래서 난방 열사가 나온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뒤에서 '저기요, 다시 올라와보세요'라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나랑 실갱이한 그 직원이다.


내가 떠나고 나서 확인하니, 이사오면서 TV 수신료 공제 신청했을 때 케이블 방송 수신료 공제 신청도 같이 됐고 이사 첫 달을 빼곤 부과한 적이 없단다. 그럼 아까 내게 한 말은 뭔지. 그땐 확인하지 않고 말했던 거란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지. 괜히 퇴사한 직원을 두고 안내를 했느니 안 했느니 쓸데없는 논쟁한 게 아닌가. 그분도 멋쩍은 듯 웃었고 진상 입주자 된 나는 '아까 하신 말씀은 뭐였냐'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듯 아닌 듯, '그럼 둘 다 안 해도 될 얘기하느라 시간 쓴 것이었냐'며 돌아섰다.


한 달에 몇 천 원 안 하는 돈인데 그 직원도 나도 입이 아프게 말했다. 꿈으로 치면 개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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