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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Nov 16. 2016

날 달래줄 달력 없나

'왜 하지?' 내가 하는 가장 큰 반항이다. 소심하다. 기껏해야 의문 품고 의심하는 것밖에 없다. 실천에 옮기는 반항은 극히 드물다. 아무도 모르게 나홀로 반항하는 방법을 오늘 알게 됐다.


'다양력'. 텀블벅에서 진행중인 달력 제작 프로젝트이다. 식목일, 어린이날, UN의 날 같은 기념일 말고 나만의 기념일을 만드는 달력이다. 



굳이 이런 달력을 사느니, 시중에 팔거나 어딘가에서 공짜로 얻은 달력에 '내 생일' 이라고 써도 될 일이지만, 사람 기분이란 게 그렇지가 않다.




2014년 4월 이후론 해마다 4월이 오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 날 때문이다. 어느 달력에도 표시되지 않지만, 그즈음이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날이다. 기억해야 할 날.




요즘 나는 퇴사가 아니라 '이래도 되나'를 고민한다. 그렇지만 이땅의 모든 직장인이 1년에 한 번, 아니 매일 꿈꿀지 모르는 '퇴사', 다양력에는 퇴사를 생각하는 달을 달력에 새겼다. 퇴사를 짜증날 때 불현듯 떠올릴 게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건가. 하려면 계획은 하고 나와야지.




다양력엔 별 쓸모도 없어보이는 걸 기념하는 달도 있다. 빛 반사 재채기를 하는 사람을 위한 7월이다. 듣도보도 못한 신체의 이상한 증상은 실제로 아시아 사람 넷 중 한 명은 겪는 증상이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그러니까 나와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일깨우려고 이런 해괴망측한 달을 만들었단다. 지금 나와 한 공간에 8명이 있는데 이중 두 명은 밖에 나가면 재채기를 할 수 있겠군.




나는 다양력에 어떤 날을 표시할까. 5월도 있고, 10월도 있고, 11월도 내겐 인상적이다. 가족과 관련되지 않은 날이 낀 달인데도 마음이 간다. 전전전 직장에 다니던 2009년 5월 23일, 지난 해 처음으로 내 글에 값을 매긴 프로젝트를 한 10월, 그리고 올해 11월.

퇴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지금까지 다섯 번 했나?




다양력을 보고서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는데 가격에서 상념이 멈춘다. 최소 구매 금액 1만7천 원. 탁상용 달력과 스티커, 대형 스티커가 기본 세트이다. 퇴사학교라는 오프라인 행사가 포함된 퇴사 달력은 2만5천 원, 세월호 실종자 9명을 기리는 '9' 모양의 노란 리본을 포함한 세월호 달력은 2만7천 원, 연말 목욕재계하자며 비누를 포함한 달력 2만5천 원이다. 퇴사 달력은 2개 이상 사면 4만원(선착순 49명) 또는 4만5천 원에 판다. 


퇴사 달력이 메인 상품 같은데, 이 달력을 회사 사무실에 놓는 건 너무나 큰 모험일 것 같다. 


탁상용 달력인데 사무실 없고 집에 책상도 없어서 고민이다. (주말에 책상 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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