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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Sep 28. 2016

가디와 구디는 매력적인 동네가 될 뻔하지 않았을까

수출의 다리를 건너며 든 생각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를 잇는 수출의 다리. 택시 기사님 왈, 유일한 연결 통로라고. 초행 운전자는 이 다리 하나밖에 없는 걸 모르고 구디에서 가디로 가면 십중팔구 헤맨다.
가디와 구디를 잇는 수출의 다리


갈 때마다 별로라고 생각한 이 동네를 오늘부터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여행 가이드 같던 택시 기사님 덕분이다. 그분은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목적지까지 택시비가 약 5,500(정확한 금액이 기억나지 않는다)원이 나오는 거리를 운전하면서 가디와 구디가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의 디지털 단지가 되기 전, 이곳은 공장 지대였고 철로 때문에 길을 뚫을수도, 지하도를 만들 수도 없어서 수출의 다리라는 고가도로가 생겼다. 그때의 이곳엔 삼립빵 공장이 있었고, 시대양점(??? : 양복) 공장은 공장 건물에 매장을 함께 운영했다. (의류 할인 매장의 시작은 그랬던 거얐다)


지금은 금천구, 구로구이지만 예전엔 영등포구로 묶였으며 영등포가 공장 지대일 땐 오비 맥주, 크라운 맥주 공장이 서울에 있었다. 창고 건물이라도 남았으면 좋으련만 그 자리를 다 부수고 철골에 커튼월을 친 유리 건물을 세웠다. 기업은 땅팔고 건물 팔아 자산을 늘려야 맛이겠으나,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만 남은 게 아쉽고 아쉽다.


몰개성한 동네라고만 보던 그 동네를 택시 기사님이 저기는 어느 공장 자리, 저 자리는 어느 공장 자리라며 알려주니 이곳도 역사가 있고 얘기가 있고 그걸 채운 사람들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임)
구로공단은 1960년대 조성된 국가산업단지이자 수출산업공단의 별칭이다. 섬유와 봉제 중심으로 공장이 들어섰으며, 1970년대에는 11만 명이 근무했다. 노동환경이 열악하여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났는데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와 출판 등으로 분화한 지금도 노동 환경 문제는 심각하다. 구디에 있는 게임 회사 넷마블은 얼마전 직원이 과로사했다. 이곳은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꿨고, 가산동쪽은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동은 구로디지털단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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