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우리 집 막내 누리.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가면 "왕왕"하며 꼬리를 흔들고 으르렁거린다. 이 세 가지를 한번에 한다. 진짜다.
이 말썽꾸러기 개는 2007년 어느날 우리집에 왔다. 적적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동생이 데리고 왔다. 아는 사람이 키우는데 그 집은 이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이 길었다고.
누리는 정말 예뻤다. 지금도 예쁜데 그땐 더 예뻤다.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미모로 식구들의 마음을 훔쳤다. 무뚝뚝한 아버지마저 퇴근길에 누리 간식을 사들고 와서 '시-' 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누리야~"라며 쳐다봐달라고, 꼬리를 흔들어달라고 했다.
집이랑 사람들이 낯설어서인지 누리는 낯을 많이 가렸다. 식구가 많은데 다들 밥 먹는 때, 나가는 때, 잠드는 때도 제각각이라 스트레스가 심했을 게다. 그래도 우리집에 적응했고, 똥 오줌을 바깥에 나가 누는 습관을 들였다. 누구 하나 강요한 적 없지만, 자기 스스로 이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누리는 우리집에 오기 전까지 바깥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누리가 오고 한두 해가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누리의 강아지를 보고 싶어서 임신을 시도하였고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집에 왔을 때가 이미 다섯살이었다. 임신했을 때는 예닐곱살이었던 것 같다. 노산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욕심을 부렸다.
욕심은 화를 불렀다. 누리는 예정일보다 한참 앞서 산기를 보였다. 아무도 없던 어느날 저녁, 누리의 양수가 터졌다. 누구도 그게 양수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서 오줌을 눈 줄 알고 혼냈다. 그런데 영 이상했다. 결국 새벽에 병원에 데리고 갔다. 누리는 사산했다.
누리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까.
누리가 우리집에 왔을 때, TV프로그램에선 집에서 키우는 개를 길들이려면 엄하게 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자주, 인상깊게 나왔다.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누리를 혼냈다. 여섯 명이 제각각 혼내니 힘들었을 것 같다. 나중에야 든 생각이다.
그러다 누리는 엄마 한 사람에게 마음을 붙였다. 같이 있는 시간이 제일 길고 밥이랑 똥오줌 챙기는 사람이 엄마이다. 나머지 식구들은 바쁘다고 힘들다고 엄마에게 누리 챙기기를 미뤘다. 그러니 누리가 유독 엄마를 따르는 게 당연하다.
올해로 누리는 열두 살이다.
(동생과 며칠 전 카톡했는데 열네살인 것 같단다
이자슥!!)
일이 년 사이에 누리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와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누리는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보다 걷고 뛰는 시간이 줄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처럼 꼬리를 흔들며 현관으로 마중나가지 않는다. (엄마 빼고) 검버섯도 생겼다.
할머니가 떠날 걸 두려워했던 것처럼 누리가 우리 곁을 떠날 날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