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도돌이표

정리하기 위해 쓰는 글

by 서기

아침을 꽤 부지런히 시작했는데도, 정신이 잘 차려지지 않는다. 수요일에는 친구가 갔고, 목요일에는 병원, 금요일과 토요일은 늦잠을 자고 일요일을 쉬고 오랜만에 평소와 비슷하게 돌아와서 아직 적응이 덜 된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을 먹은 지 몇 달 째인데, 제대로 글을 쓴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쓰다가 말기를 여러 번 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일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일기’를 쓰다가 주제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오전에 보험 진단받은 곳에서 연락이 왔고, 실손 보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줄이면 되는데, 그게 괜히 심란하게 느껴졌다. 전혀 심란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보험을 잘 들고 싶고, 손해 보거나 후회하지 않으려면 잘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 같긴 한데, 알아볼 수 있는 만큼만 알아보면 될 일이다. 안 되면 몇 만 원 손해 보더라도 할 수 없지. 나중에 아플 때를 잘 대비하고, 지금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하게 선택하면 될 것이다.

엄마가 내 종신보험을 50만 원 넘게 내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그 부분에 상담사가 너무 걱정스럽게 얘길 해서 더 심란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저축성으로 넣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보험 설계사님이 엄마를 이용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고, 얼마 전에 엄마가 보험이 부담된다며 많이 해지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큰 액수의 보험을 계속 들고 있다는 것도 납득이 잘 안 되긴 했다.

아무튼 보험을 두고 이어진 통화가 거의 30분이 넘은 것 같다. 그렇게 긴 통화인 줄 몰랐는데, 영어 읽기 모임이 끝나고, 밥을 조금 먹다가 전화를 받았으니. 밥 먹다가 통화가 되어 더 정신이 없었으려나. 점심시간인 용이와 통화하고, 친구와 통화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어 손님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제야 숙소 확인을 했다. 숙소는 무척 따뜻하고, 다행히 깨끗했는데, 쓰레기-특히 음식 쓰레기가 많았다. 음식 쓰레기 버릴 생각에 또 심란해지는 걸 보니 내 멘탈이 참 새삼스럽게 허약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숙소는 일단 쓰레기 정리를 해 두고, 집 쓰레기와 같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제까지 눈보라가 치고, 칼바람이 불었는데, 오늘은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잠잠하다. 주말에는 주인이 있을까 싶어 가 보지 못 한 아기 강아지에게 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기 강아지를 보면 더 심란해질 것이고, 딱히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지난번 추위가 왔을 때, 강아지 집 입구에 바람막이를 해 주었었는데, 그게 잘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도 못 하고 있었다.

강아지들에 대한 생각은 맴맴 돌아서, 결론을 낸 것 같다가도 자꾸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에는 아기 강아지 중성화 수술까지만 시켜주자고 결론을 냈었다. 그전에는 중성화 수술 해 주고 나면 약 먹여야 하고, 산책시켜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또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마음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냥 아예 신경을 쓰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다시 그 집에서 그 아기강아지가 1살도 채 되기 전에 임신을 하고, 1미터 줄에 묶인 채 꼬물거리는 새끼들을 낳고, 그 새끼들이 대 여섯은 될 것이고, 제대로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먹을 것도 부실한 채로 새끼들을 먹이고, 새끼들도 굶주리다가 각각 또 어딘가에 지킴이로 뿔뿔이 흩어질 생각을 하면 차마 또 그 꼴은 못 볼 것 같은 것이다. 보리도 그렇게 낳고 자란 새끼들 중 하나였고, 봄이 와 포이도 그렇게 먼저 구조를 하게 된 것인데, 그때 가서 차마 외면할 수 있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개들을 구조하고 입양 보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때도 혼자는 할 수 없어 다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정작 나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외면하려고 애쓰다가 나중에 결국 더 큰 일을 감당하게 될 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첫째로 어려운 점은 내가 개들을 보고와도 행복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개들이 귀여워서 아무리 힘든 환경에 있어도 일단 개들을 사랑하게 되어서 그 마음으로 개들을 계속 보살피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늘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서서 그런지, 개들을 챙기면 챙길수록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차라리 보지 않는다면 마음도 점점 더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머릿속에 한 구석은 늘 그 개들이 차지하고 있겠지만.


두 번째로는 개들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과정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불확실성이 너무 큰 가운데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했다. 선택을 하기보다는 떠밀리는 상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니 늘 그랬다. 아픈 강아지를 치료하는 일도, 임보처를 찾아서 보내는 일도, 최종적으로 입양가족을 선택하고 보내는 일도. 하나하나 내가 선택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해야 했는데, 예를 들면, 강아지들이 출국하는 날짜와 시간 같은 것들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임보처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많은 일들도 그랬다. 반면에 여러 과정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의 무게를 느꼈는데, 그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고,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느낌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세 번째는 ‘구조’를 한다는 것이, 혹은 내가 안쓰럽게 여기는 한 존재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이 꼭 내가 바라는 좋은 결과를 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가능성이다. 두 번째와 이어지는 것일 수 있는데, 최근에 한 큰 동물단체의 노조가 단체에서 구조한 개들이 사설 위탁소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죽은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큰 규모의 후원금을 받고 있고, 대대적인 구조 작업을 홍보하며, 개별 개들에 대한 후원도 받고 있었는데, 구조 후 그 개들이 지내던 곳은 구조 이전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제한되고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단체의 구조활동을 응원하고, 구조된 개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꺼이 후원금을 냈을 텐데, 정작 그 개들은 ‘구조’ 자체를 홍보하는데 이용되고, 그 이후의 삶은 그 전의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별반 나아지지 못한 채 아픔 속에서 죽어간 것이다.

아주 큰 단체에서의 ‘구조 활동’이라는 게 이럴 진데, 내가 능력 밖의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꼭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개입해서 입양을 보낸 개들은 시애틀에 백미와 현미, 밴쿠버에 봄이와 라라, 토론토에 포이, 뉴욕에 럭키, 엘에이에 비키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누리와 무무도 있지만, 그 애들에 대해서는 내 역할이 아주 미미했기 때문에 셈에 넣지는 않는다. 그 아이들을 포함해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대게의 강아지들이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포이는 소식을 듣기가 조금 어렵다. 다른 강아지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포이에 대한 궁금증과 염려에 늘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분명 잘 지내고 있을 포이에 대해서도 내가 직접 소식을 듣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렇게 마음이 시린데, 앞으로도 개들을 구조해서 멀리 떠나보낼 경우 모두 잘 지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내가 ‘구조’를 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개들에 대해 결론 없는 생각을 자꾸만 반복해서 하게 되는 이유가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물리적으로 몸이 메여 있지 않고, 모두 내가 자발적으로 시간과 힘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늘 개들에게 가서 물과 밥을 주고 챙기는 일과 저울질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저울질에 자꾸 시간을 쓴다. 당장 1시간이라도 밥이나 물을 주고 와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도 했는데, 그 1시간이 계속되면 결국 더 큰 시간과 비용을 쓰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개들에게 신경을 딱 끄고 내 할 일에 집중을 하면 된다. 하지만 또 여기서부터 도돌이표처럼 다시 개들에 대한 생각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중성화 수술이라도 해 줄까?부터 시작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려면 어느 정도 산책도 해 줘야 하고... 밥도 잘 먹이고 싶고.. 그런데 일단은 돈이 없다.

중성화 수술 시켜주려면 적어도 30만 원은 있어야 하고, 중성화 수술 설득이라도 하려고 주인을 만나려면 박카스라도 한 박스 사 가야 하고, 사료며 간식이라도 잘 주려고 하면 그것도 돈이다. 지금 나는 그런 돈도 없다.

그러니까, 그런 돈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개들은 잠시 잊고, 할 일을 하자. 그런데 당장 밖에 개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 간식만 조금 주고 오자. 옷을 입혀주자, 똥을 치워주자. 아, 오늘도 글을 못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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