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분석
최근 가장 큰 사회적 이슈라면 뭐니뭐니해도 부동산입니다.
현 정부가 역대 가장 강력한 억제정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고 정리해봤습니다.
우선 위 그래프를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우상향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맞지만 지속적으로 상승만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일정 주기마다 횡보와 상승을 반복하는 양상입니다.
전체적으로 세번의 가격 하락과 두번의 상승 구간이 있는데, 우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7년 올림픽으로 과열된 부동산 시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호 주택 공급과 함께 가격이 하락합니다. 그리고 1997년은 IMF로 가계소득이 감소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던 시기였습니다. 세번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며 실물경제의 불황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두번의 상승은 공교롭게 부동산 억제정책을 펼치던 진보정권 시절 이루어집니다. 김대중 정부는 IMF를 끝내고 경기부양을 위해 완화정책을 펼쳐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유도합니다. 이를 투기과열이라고 판단한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급의 억제 정책을 이어갔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가격 폭등이였습니다. 당시는 저금리, 유동성 과잉으로 전 세계의 주택가격이 폭등하던 시기라 억울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집값이 급상승한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10년 후,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우며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격이 또 다시 급등하며 아직까지 집값 잡기에 실패한 모양새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제는 기본적으로 심리전입니다. 공급은 일정하거나 더디게 증가하는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면 수요가 급증하고 공급을 선점한 사람들은 부를 얻게 되는 것이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면 어떤 정부가 그 어떤 정책을 내놔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억제정책으로 효과를 본게 노태우 정부때지만 당시는 200만호라는 거대 공급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반대로 대대적인 완화정책을 펼치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는 오히려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은 정부 정책 기조와는 크게 상관없이 당시의 실물경제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일정한 싸이클에 따라 움직인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정책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발휘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환금성이 낮은 위험자산인 부동산의 경우, 정책이 시행되면 사람들이 적응하고 자신의 자산운용에 대해 판단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투기수요가 정점을 찍고 이명박 정부 시절 하락한 그래프를 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 말기에 시행한 종합부동산세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시행한 세금(보유세, 종부세) 완화, 대출규제 완화, 임대사업자 혜택 강화 등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이 10년의 기간을 지나 현재 가격 폭등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기 중의 수치만으로 부동산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현 정부가 시행한 부동산 대책은 크게 다섯개 정도가 있고 방향은 세가지입니다.
규제 지역 확대, 대출 규제 강화, 세제 강화입니다. 8월 4일 발표한 정책까지 더하면 공급 확대 내용이 추가되겠네요. 대부분 갭투자나 투기 수요,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책입니다. 이 중 가장 강력하다고 보여지는 정책은 최근 시행된 7.10 정책인데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의 세율을 모두 상향 조정하고, 세제 혜택으로 투기의 온상이 된 임대사업자등록제를 사실상 폐기했습니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어 처방안인 ‘임대차 3법’도 함께 처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지난 5월 기준 서울 주택매매의 52.4%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매하는 ‘전세보증금 승계’ 거래인 만큼, 단기간에 500조에 달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는 어렵고, 부동산 가격상승 여력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 전세가 급속도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예전에 금융대출이 어렵던 시절, 개인거래를 통한 합법적 대출 성격으로 활용되었던 전세제도는 지금같은 초저금리시대에서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의 12.16 대책 이후 감소한 9억 미만 아파트 거래량을 보면, 이번 7.10 정도의 대책은 시간을 두고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래량이 줄어들면 가격상승의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30, 40대의 ‘패닉바잉’도 정점을 찍고 나면 수요가 줄어들며 점차 하향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투기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는 너도 나도 구매행렬에 동참해서 가격이 급등하고, 수요가 정점을 찍게 되면 자연스레 하강국면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러한 공격적인 정책 입안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장에 타격을 주지 못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로 저금리, 유동성 과잉 환경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금리와 부동산 가격은 정확히 반비례 관계를 보여줍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통화량이 많아지고 일부는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금리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졌고, 정부는 경기 하락을 막기위해 3차 추경에 걸쳐 막대한 재정을 시장에 쏟아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부동산 가격상승에 제동을 걸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위와 같은 이유로 꾸준히 상승세였으나, 몇몇 국가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어 거래가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대로 우리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덜하거나, 아직 본격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OECD도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시중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과다유입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집값 안떨어져요, 이게 하루이틀 일입니까
두번째는 시장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부동산 자산 비율은 75.4%에 달합니다. 이런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핀셋대책과 같은 안일한 대응으로 정부는 초반에 승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중 가장 뼈아픈 실책은 ‘주택임대사업자제도’ 라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전세난 해결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집값은 하락하고 전월세 가격이 치솟고 있어,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며 임대공급 안정을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장했죠. 하지만 이 후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이 제도는 다주택자의 합법적 투기 창구로 변질되었고 집값 상승에 주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아쉽게도 이 제도는 현 정부 초기까지 임차인 보호와 전세 공급을 위해 활용되었죠. 달라진 환경에서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했다면 초반에 어느정도 안정화 대책이 먹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연이은 안정화 대책들을 계속해서 내놓아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에 대한 정책적 신뢰도 역시 점점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경제는 심리여서 정부가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격 억제에 대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장은 오히려 이를 냉소하는 형국입니다.
세번째는 딜레마입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사실 집값 급락도, 급등도 아닌 현상유지입니다. 특히 집값의 폭락은 결코 정부가 원치 않는 결과입니다. 일본처럼 거품이 꺼지면 부동산에 대한 왜곡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경제 전반에 가해질 타격은 상상 이상이겠죠. 애초에 7.10과 같은 강력한 대책을 초반에 내지 못한 이유도, 그리고 더 과감한 과세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보지만, 역사상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행동에 주저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세금지옥’도 일부 과장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아는 시장은 이 게임에서 항상 정부보다 앞서 나가게 됩니다.
2017년 전체 배당소득 19조 6,000억 원 중 상위 0.1%에 해당하는 9,313명이 8조 9,387억 원(전체의 45.7%)을, 상위 10%가 18조 3,740억 원(전체의 93.9%)을 각각 차지
2005년 약 5억원이였던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 가격은 현재 10억원에 가깝고, 중위값 역시 2015년 5억 1,000만원에서 현재 9억 2,500만원이 되었습니다. 30대의 전세담보대출액은 100조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부동산 양도차익 등 불로소득 규모는 135조 6,000억 원입니다. 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불로소득은 극소수에게 집중되는데 2017년 전체 배당소득 19조 6,000억 원 중 상위 0.1%에 해당하는 9,313명이 8조 9,387억 원(전체의 45.7%)을, 상위 10%가 18조 3,740억 원(전체의 93.9%)을 각각 차지했다고 합니다.
부동산의 경우, 신고액수를 기준으로 부동산 거래로 인한 전체 양도소득 84조 7,947억 원의 절반이 넘는 53조 7,913억 원(63.4%)이 신고액수 상위 10%의 몫이였습니다. 부동산의 불로소득은 양도차익과 임대소득, 귀속임소득까지 포함하면 GDP의 30% 수준입니다. 이는 특히 국민의 주거공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주식과 달리 거시경제에도 큰 해를 끼치는 악성 불로소득입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 정의를 실현하겠다,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투기를 근절하겠다, 한마디로 집으로 돈 버는 시대를 끝내겠다는 정부의 일관된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의지를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욕망과 공포를 다스리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죠. 앞서 얘기한대로 가격의 하락 주기가 돌아오지 않은 것도 타당하고 투기수요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채 정부 정책 효과가 더딘 것도 사실이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다들 화가 나있습니다. 다주택자는 조세저항을, 무주택자는 이미 너무 많이 올라버린 집값에 절망감을 토로합니다. 정부의 조급함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부동산은 경제적이면서 정치적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사이기도 한 매우 예민한 이슈인 것이죠. 그만큼 한참을 잘못 달려온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일겁니다. 여러 불만이 한순간에 해결되지도 않을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논란들이 차츰 우리사회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불로소득의 불평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주거환경 안정화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