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편> 3. 브라질 채권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브라질 채권'일 것입니다.
한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브라질 채권에 수 조원을 투자하고 있어서 브라질 정부도 고마워하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렇다면 채권이란 무엇일까요?
큰돈을 빌릴 때는 ‘얼마의 금액’을 ‘언제까지 빌리고’ ‘이자는 몇 %로 주겠다’고 약속한 차용증을 쓰곤 하는데요. 이러한 차용증이 바로 채권입니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고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이 쓴 차용증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고, 빚을 갚을 능력도 충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정부, 중앙은행, 공기업, 대기업들이 쓴 차용증이 바로 채권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 채권 중 하나는 바로 ‘예금 통장’입니다. 통장은 알록달록 예쁘게 생겼지만 본질적으로는 저희가 은행에 돈을 빌려주면서 받은 증서이니까요. 즉 은행 예금이라는 것은 은행이 발행한 채권이고 이것을 예금주들이 산 셈입니다. 차용증으로 예쁘고 멋지게 꾸며진 통장을 받고서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채권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즉 채권투자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어떤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익을 캐리 Carry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석유를 보유하고 있다면 석유를 담을 드럼통도 사야 하고, 넓은 창고도 빌려야 하며, 소방 장치도 설치해야 하고 도난 방지를 위해 관리인도 고용해야 하는 등 각종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석유를 보유한다고 해서 다음 날 석유가 더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보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익은 없고 비용만 생기기 때문에 석유의 캐리는 마이너스입니다. 물론 석유값이 오르게 되면 보유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수익이 날 수 있겠지만 만일 석유값이 떨어진다면 보유에 따른 마이너스 캐리까지 얹혀서 손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지인 중에 과일 도매상을 하는 A가 있는데요. 그는 새벽 경매시장을 통해 여러 과일을 사서 각 지역의 소매상에 팝니다. 명절 때는 많은 주문량을 대비해서 하루에 수천 박스씩 경매로 사기도 하고요. 하지만 과일을 보유한다고 해서 과일이 새끼(?)를 낳는 것도 아니고, 보관 비용만 듭니다. 그나마 배 같은 과일은 잘 썩지 않아서 경매로 받은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릴 때까지 창고에 보관하면서 팔 수 있지만, 빨리 썩는 과일들은 박스 안에서 한 개만 썩어도 전체가 다 썩어 버리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팔겠다고 안 팔고 그냥 두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A는 자신이 경매로 받은 가격보다 더 싼 가격이라도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일단 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과일 같은 농작물도 마이너스 캐리의 상품인 것이죠.
반면에 채권은 썩지도 않고, 전산상으로 보관되기 때문에 보유 비용도 거의 없지만, 채권을 보유하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자를 받기 때문에 채권의 캐리는 플러스가 됩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으로 금리 3.65% 채권을 샀다고 하겠습니다. 금리가 3.65%이니 1년 동안 이자가 (+) 365만 원, 하루 이자 (+) 1만 원입니다. 그래서 채권금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매일 이자가 (+) 1만 원씩 붙어서 내일은 1억 1만 원이 되고 그다음 날은 1억 2만 원, 그다음 날은 1억 3만 원이 될 것입니다.
채권투자의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이 우리 편인 것입니다. 쉬고 있어도 캐리가 쌓이니까요. 그래서 누군가 “채권에 왜 투자하나요?”라고 물으면 간단히 답하면 됩니다. “캐리를 얻으려고 투자합니다”라고요.
사실 넓게 보면 근로(월급)도 하나의 캐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루하루 근무를 통해서 월급이라는 현금 흐름이 나오고 은퇴할 때는 퇴직금이라는 현금 흐름이 발생하니까요. 이것은 매달 이자가 나오고 마지막에 원금을 수령하는 채권과 비슷한 현금 흐름입니다.
채권 시장의 수급과 경제 상황에 따라 채권 가격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채권 가격이 떨어져서 손실이 10만 원이 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1억짜리 채권의 가격은 9천991만 원(= 원금 1억 원 – 손실 10만 원 + 이자 1만 원)이 됩니다. 하지만 채권 투자자들은 비록 10만 원의 손실이 났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괜찮아 하루에 1만 원씩 이자가 들어오니까 ‘열흘’만 참으면 돼”라며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기분 좋게도 채권 가격이 상승해서 10만 원의 수익이 났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1억짜리 채권의 가격이 1억 11만 원(=원금 1억 원 + 수익 10만 원 + 이자 1만 원)이 됩니다. 채권 가격 상승으로 수익이 나고, 추가적으로 이자수익도 있기 때문에 “채권 가격 상승분 + 캐리 이익”이라는 두 가지 이익을 다 취할 수 있습니다. 잃을 때는 캐리로 손실을 상쇄시켜 나가고 벌 때는 가격 상승과 캐리를 다 얻는 것이 채권투자의 큰 매력입니다.
브라질 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이자는 약 10% 부근으로 저금리 시대인 요즘 매우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브라질 채권을 사려면 원(₩)을 헤알(R$)로 바꿔서 투자해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우리가 원(₩)을 바로 브라질 헤알(R$)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은 한국에서만 사용되고, 헤알(R$)은 브라질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양국에서 서로 바꾸려는 수요가 적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브라질 채권을 사려면 달러가 중간에 매개체로 작용해서 먼저 원(₩)을 달러($)로 바꾼 다음, 달러($)를 헤알(R$)로 바꾸는, 두 번의 환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은행에서 환전할 때는 그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달러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화폐는 결국 두 번의 환전 과정을 거쳐야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번의 환전을 통해 구입한 헤알(R$) 채권은 환율이라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원(₩)-달러($)”의 환율과 “달러($)-헤알(R$)”의 환율에 따라 손익이 결정됩니다. 마치 동전 두 개를 던져서 “이익-이익”, “이익-손해”, “손해-이익”, ”손해-손해”이라는 동전 게임에 참가하는 것과 같지요.
따라서 원(₩)-달러($), 달러($)-헤알(R$) 이렇게 두 개의 외환 변동에 노출된 브라질 헤알 채권은 각각의 환 위험을 제거해야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결국 이 비용을 고려하게 되면 그냥 한국에 예금한 것과 별 차이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브라질 채권 투자는 높은 이자를 쿠션 삼아서 헤알(R$)의 가치가 강해질 것이라는 방향에 베팅하는 것입니다
브라질 채권은 금리가 높기 때문에 저금리 시대에 복리를 활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품 중에 하나입니다. 매년 10%씩 나오는 이자를 가져가지 않고, 그 이자로 채권을 추가로 사면 ‘헤알(R$) 환율 변동 위험’이라는 불확실성도 복리의 힘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증권사에서 브라질 채권을 사실 때, 담당 직원에게 이자가 나올 때마다 이자로 채권을 사달라고 하시면 이후로는 증권사에서 알아서 매수해 드립니다.)
복리로 돈이 불어 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측정할 때 쓰는 72 법칙이 있습니다. 수익률이 R % 이고 모든 이익을 재투자했을 때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72/R” 년으로 구하는 것이죠. 브라질 채권을 예로 들면, 연간 10%의 속도로 투자금이 늘어나고 이것을 재투자할 경우 2배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72/10” 년이므로 7.2년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대학시절 재무를 가르쳐주신 교수님께서 종강 후 감사하게도 저녁을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맛있는 중화요리 식당에 갔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 음식이 1만 원짜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만 원짜리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격을 제가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원래 2만 원짜리 음식인데 식당에서 단골인 교수님께 할인해 주는 것인지 헷갈렸는데요. 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지금은 1만 원이지만 이것은 내가 10% 복리로 투자해서 7년만 있으면 2만 원이 될 것인데 그 돈을 지금 쓰고 있으니까 2만 원짜리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농담 삼아하신 말씀이지만, 복리의 힘을 잊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잘 모아서 투자하라는 귀중한 가르침이셨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