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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민혁 Jan 30. 2022

글로벌 금융과외:편리한(?) 힌두교와 인도인의 사고방식

강렬한 색상의 나라, 맛있는 카레 Curry의 나라, 힌두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가 탄생한 나라, 체스를 발명하고, 파이와 무한대를 발견했으며,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보다 천년 일찍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재들의 나라, 흥겨운 춤과 재미있는 영화의 나라,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


인도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로써, (한국의 33배) 인구 약 13억 8천만 명의 대국입니다. 지금의 추세라면 수년 안에 중국을 넘어서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될 것이고요. 

인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어서 언어도 무려 약 3천여 개나 통용되고 있는데요. 이 중에서 영어를 포함한 23개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도 델리에 있는 붉은 요새 Red Fort

인도인들은 정신적인 부분만 강조한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실제로는 물질적인 부분도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 부富를 얻어라! 세상의 뿌리는 부富에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지요. 또한 인도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남을 속이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들은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군인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용맹하게 싸우고 적을 죽여야 하는 것처럼, 상업을 담당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더라도 일단 돈을 버는 것이 상인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부를 얻는 것은 정당하며 정신이 물질에 지배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상인의 임무는 돈을 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위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도 전통문화가 섞여 있는 민족 신앙인 힌두교와 관련 있습니다. 인도 인구의 80%가 믿는 힌두교에서는 신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뚜렷한 절대적 행동 규범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절대적 기준이 없다 보니,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힌두교에는 이단이 없습니다.


사람이 신을 믿고,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일정 부분 자신이 가진 자유를 내려놓고 자발적으로 속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십계명을 지키고 불자들이 살생을 자제하고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씩 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종교 규율에 기꺼이 따르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힌두교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해라 말라 강요하지도 않고,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주니까 매우 편리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인도인들은 포크보다 손으로 먹는 것이 더 일반적인데요. 왼손은 불결하다고 여겨서 식사할 때는 청결한(?) 오른손만 사용합니다. 수저나 포크를 놔두고 왜 굳이 손으로 먹을까 궁금했는데요. 인도인들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피나 땀 혹은 침과 같은 분비물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씻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침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포크보다는 항상 청결함을 유지하는 자신의 오른손이 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인도의 쌀은 찰기가 많지 않아 쉽게 흩어지기 때문에 수저보다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이 더 편리하며, 식사하면서 시각, 후각, 미각뿐 아니라 촉각까지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도에는 커리만 해도 수 천 종류가 있고, 커리에 찍어먹는 난 Naan과 로티 Roti 그리고  화덕과 비슷한 탄두리에 구운 탄두리 Tandoori 치킨은 정말 인기가 많습니다.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Caste에는 수천 단계의 등급이 있는데요. 그중 가장 낮은 계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밑으로 아예 계급조차 없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 혹은 Dalits)까지 있습니다. 예전에 '고귀한’ 계급들은 불가촉천민들의 목에 방울을 달게 해서 자신들과는 마주치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불가촉천민들을 박해했지요.


그렇다면 외국인의 카스트는 어느 정도일까요? 힌두교에서 외국인은 불가촉천민보다 더 낮은 계급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주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인 데요. 이들은 기꺼이 힌두교를 받아들였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대부분 불가촉천민 계급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힌두교 신자를 보기 어려운 이유도 힌두교인 입장에서는 미천한(?) 외국인에게 굳이 포교할 이유가 없어서 해외로 전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국인 입장에서도 신자가 되자마자 가장 낮은 계급으로 직행하는 힌두교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서도 인도인들에게 호의를 기대하지는 말아야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실제 가보니 인도인들의 외국인 대접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고, 지방이든 도시에서든 호의의 눈으로 바라보며 인사를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말해보려고 다가와 말을 걸거나 같이 사진 찍자고 요청을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외국인은 인도에서 꽤 높은 계급의 대우를 받는데요. 왜냐하면 오랫동안 수많은 외세에 정복 당해 외국인을 우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외국인 관광수입이 크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도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의 궁전 the Palace of Winds이라고 불리는 하와 마할 Hawa Mahal

인도의 북부 지역은 넓은 평야 지대이고 땅도 비옥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많은 침입자들이 인도로 들어왔습니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부터 시작해서 페르시아, 몽고, 이슬람까지 다양한 세력들이 인도로 진격해 온 것이죠. 인도 역사상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무굴 제국도 북쪽에서 내려온 이슬람 세력이 세운 것입니다.


이후 지방에 있는 호족들의 세력이 커져가면서 무굴 제국의 세력은 약해졌는데요. 이때 이권을 얻기 위해 진출한 영국이 조금씩 인도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858년에는 인도 전체를 점령하여 영국령 인도 제국(1858년~1947년)을 세웠는데요. 영국령 인도 제국은 지금의 인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미얀마 전체는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과 네팔, 부탄의 일부 지방까지 포함하는 엄청난 규모의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도 많지 않은, 작은 섬나라인 영국이 어떻게 수억 명의 대제국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영국은 당시 최첨단 무기와 유럽에서 쌓은 풍부한 전투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고대 로마 제국에게 배운 “분열시킨 후 다스린다”Divide and Rule는 전략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인도 내 영국군에서 진짜 영국인은 소수의 장교들뿐이었고 대다수의 군인은 용병으로 뽑은 인도인이었는데요. 인도 내 다수인 힌두교도 대신 소수인 무슬림 위주로 군인과 경찰을 뽑았습니다. 인도인의 반란을 더 쉽게 진압하기 위해 소수 종교의 사람들로 채용한 것이죠. 또한 영국은 각 지역 간의 지역감정을 조장함으로써 분열을 통해 인도인들이 하나로 합쳐 영국에 대항할 여지를 차단했습니다.


이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싸우게 되었는데요. 이때 전투를 수행한 영국군 중에 인도 출신은 무려 11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도 군인들이 전쟁에 참가한 이유는 전쟁이 끝나면 인도의 자치권을 보장해주겠다고 영국이 약속했기 때문이었고요. 그러나 영국은 전쟁이 승리로 끝난 뒤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인도인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였는데요. 이때부터 인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인도의 국부國父이자 존경받는 간디 Mahatma Gandhi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고요.

영국의 약속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약 8만 5천 명의 인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위령탑 겸 전승 탑, 인디아 게이트 India Gate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도 영국군에는 250만 명의 인도 출신 군인들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또 한 번 영국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싸웠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이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했고, 영국의 힘도 약해졌기 때문에 1947년 인도는 결국 원하던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0여 년에 걸친 식민지 시기가 끝나고 꿈에도 그리던 독립이 되어 모두가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 제국은 영국의 힘에 의해 묶여서 이뤄진 제국일 뿐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의해 역사, 언어, 문화, 종교가 다른 수많은 민족들이 인도 제국이라는 단일 구호 밑에 공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도 제국이 독립하게 되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특히나 종교 간의 갈등이 너무 깊었는데요. 인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이슬람 세력인 무굴 제국 밑에서 오랫동안 억압당했기 때문에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컸습니다. 이후 무굴 제국이 영국에게 무너지자 더 이상 무슬림들의 특권은 사라졌고 오히려 복수를 기다리던 힌두교도들에게 역으로 차별당했습니다.

 독립을 앞두고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투표로는 도저히 힌두교 정당을 이길 수 없기에 무슬림만의 국가 수립을 요구하였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이름은 무슬림들이 주로 살고 있는 서북부의 다섯 개의 주, P 펀잡 Punjab, A 아프간 Afghania, K 카슈미르 Kashmir, S 신드 Sindh 그리고 발루치스탄 Baluchistan의 ‘스탄’을 따서 파키스탄 PAKISTAN으로 말이죠.(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i를 중간에 넣은 것입니다. PAKISTAN은 우르드 어와 페르시아어로 청정한 땅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인도 전역에서는 힌두교와 무슬림 세력 간의 충돌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태로까지 번졌는데요. 결국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어 지금의 인도가 탄생했습니다. (인도의 분열을 끝까지 막으려고 노력했던 인도의 영웅 간디는 오히려 힌두교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미국에 할리우드 Hollywood가 있듯이 인도에는 발리우드 BollyWood가 있습니다. 뭄바이의 옛 지명인 봄베이 Bombay에서 B를 따온 것이죠. 인도에서는 매년 천 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인도의 영화 산업은 상당히 큰데요. 인도는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백 개의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민족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교 갈등, 카스트 제도의 모순으로 인한 갈등 등 할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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