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런던파리여행 -1

14박 16일 초5남아와

by 보리보리

08.07

인천공항에서 캐리어 보내는데 바닥에 캐리어 바퀴가 떨어져 있어서 어머 누가 바퀴가 빠졌는데 모르고 그냥 갔나 보다 했더니 내 가방. 게다가 2년 전에 여행 가서 바퀴 깨져서 캐리어 새로 사야지 했다가 완전히 까먹고 그대로 들고 온 것임.

바퀴 깨진 캐리어로 여행 시작.


14시간 반 비행은 힘들었다. 8시간 정도 지나서 너무 지겹고.. 이렇게 많이 왔는데 아직도 많이 남았다니... 하는 정신적 고통.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왕창 다운받아 올걸. (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는 것이 위험해서 돌아가느라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아이는 잠 안 온다고 내내 만화보고 영화 보고 아이패드 게임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다음에는 비행기 넓은 자리에 앉아요." 이런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엄마는 두세 번 와보셨겠지만 저는 유럽이 처음이에요." 하며 상기된 표정. 와... 처음이라 얼마나 설렐까.. 그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오후 5시에 공항 도착했는데 호텔방 들어오니 8시. 교통카드 사고 (오이스터카드 7파운드+20파운드 충전) 어린이 할인받느라 좌충우돌.

young visitor discount 적용받으면 14일 동안 런던에서 50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대중교통 이용 가능.

중간에 파리 가는 날짜를 빼고 뒤에 날을 더 해서 출국할 때까지 할인받게 해달라고 말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영국식 발음 너무 알아듣기 힘들어서 그냥 당신들이 내 말을 알아들어 보시오 하며 내가 하고픈 말만 했다.

어쨌든 역무원이 굉장히 여유 있고 유머러스하고 친절한 느낌을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지하철 타는데 다른 직원이 다가와서 어린이 할인받았냐고 물어봐주기도..

서울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우리는 방어적이다. 여러 가지에.


바퀴 깨진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 타고 호텔 찾아갔다. 지하철에서 아이는 꾸벅꾸벅 잔다. 한국 시간 새벽 3시이니..

한 손으로는 툭툭 떨어지는 자는 아이 머리 붙잡고 다른 손으로 캐리어 붙잡고 의자커버 찢어질듯한 낡은 피카딜리 지하철에 앉아서, 이 지하철을 나가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무서웠다. 용감했던 나 자신이 조금 싫었다. 이상하게도 마치 그 지하철에서 내리면 런던이 시작되고 여태까지는 런던이 시작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터널이라는 공간은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 어쩌면 은유가 아니고 본능에 적혀 있는 공간감일 수도.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에 여행 가자고 했더니. 엄마 여행이라는 것에는 장난감이 들어있나요? 하고 묻던 것이 생각난다.


홀본 역에 계단이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유튜브까지 찾아봄 런던 홀본 역 영상) 20여 개의 계단이고 내려가는 거여서 힘들지 않았다. 서울 방구석에서는 나 힘들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크지만 막상 외국 나와서 온 세상 여자들이 큰 캐리어 번쩍번쩍 들고 다니는 거 보면 아 나는 마음이 너무나 나약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서양에 처음 와서 신기하다 하고 호텔 너무 좋다고 기뻐했다.

새우탕면과 김부각 가져온 거 먹이고 잤다.

작년에 리모델링했다는 시타딘 홀본. 인테리어가 예뻤다.

08.08

시차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에 할 일이 없어 슈퍼 구경하고,

오픈런인데도 줄 서서 3-40 분 기다려 영국 박물관 입장했다.

줄이 섞여서 단체 줄 따라가다가 줄 잃어버리고 당황해하니 우리 뒤에 서 있던 서양인 할머니가 원래 자리로 오라고 불러주셔서 순서 되찾고 입장 가능했다.

박물관은 19년 전이랑 똑같은 느낌이었다. 기념품샵의 상품 구성도 똑같은 거 같고, 길거리 기념품 가게들도 그대로인 것 같고...

유명한 것들 찾아보고, 챗gpt 에게 저거 뭐냐고 물어보고... ai 가이드와 함께했다.

다른 나라의 건물 통째로 뜯어와 전시하는 거 보며 아.. 인간의 탐욕이란... 했더니 엄마 철학자가 되셨군요. 이런다.


피시 앤 칩스 식당 가서 아이리쉬 사이다가 알코올인 거 잊고 탄산음료라고 생각하고 주문하는 실수. 몇 모금 마시고 다 남기고.. 피시 앤 칩스 맛없는데 아이는 맛있단다. 생선가스가 더 맛있지 않나.


엄마만 의지할 거예요 하면서 팔 잡고 손 잡고 다닌다. 서울서는 손 잡지도 못하게 하더니..

외국이라고 쫄았나 보다.


호텔 가서 한 시간 낮잠 자고 나와서 빨간 이층 버스 타고 셜록 홈스 집 갔다가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으로.

바글바글 아주 난장판인데 좋아한다. 살 것 두 개 찍어놓았다나. 다음에 다시 와서 사겠다나.. (하지만 다시 가지는 못했다.)

온 세상 어린이들이 장난감 사달라고 징징대는 곳이라던데 별로 우는 애는 못 봤다.

곰돌이 인형 솜 채워주고 옷 골라서 사는 것 재미있어 보였다. 나만의 곰돌이 사고 싶었는데 유치하다고 아이에게 끌려 나옴.

곰인형 솜 채워 만들어준다.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

버스 정류장에서 보니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잇다. 그래도 일하는 사람들 표정이 밝은 편이다. 형식적이지 않고.

엄마 이번에는 꽤나 계획적이시네요. 이런다.

저녁마다 일기 쓰라고 시키는데 쓴 것을 읽어 보니 귀엽다.

외국에 온 거 같지 않다고.. 영어를 읽을 줄 알아서 그런가. 런던이 편해서 그런가. 별로 영어 쓸 일이 없네요 한다. 내가 다 하니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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