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나에게 참 힘든 존재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이해해야 했고, 수용해야 했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기보다 그들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랐다.'는 타인의 평가가 자존이었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부모님의 갈등관계 속에서 나와 남동생은 자라났다. 그럴수록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썼고 남동생은 좌절하고 우울해했다. 부모님의 불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매일 싸우는 부모의 영향 아래서 사느니 차라리 얼른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마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 아빠 혹은 엄마 중 우리를 양육하는 어느 한 쪽에 서기만 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바람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고 나와 남동생은 아빠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우리의 양육을 책임지는 아빠의 편에 서게 되었고 그때부터 엄마를 '유책 배우자' 혹은 '무책임한 부모'로 낙인찍으며 내 삶에서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나의 노력들이 죄책감으로 남아 더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기를 쓰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를 미워한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었다. 내가 나의 엄마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나를 내 아이의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랬었기에 스스로 잘 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들었고, 뭐든지 열심히 해내며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며 버텨왔다.
'엄마를 용서하게 되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한없이 가엽게 느껴진다. 그동안 나는 왜 그토록 엄마를 용서하고 싶지 않아 했을까...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 그만큼 커서 였을까...
청소년기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에서는 벗어났으나 불행히도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그 당시 나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자리한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린 마음에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 번 다시 '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노력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해야 할 노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부모는 미숙했기에 우리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보니 부모로서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혹여나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왜 나의 부모는 그런 것들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나의 부족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표현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면 대견하면서도 부러운 마음마저 든다.
어린 시절 나는 왜 내 마음 보다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 그토록 애썼는지 애처로우면서도 그러지 못한 나를 탓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다. 그것이 꼭 내 잘못만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도 가족이 그리운 존재였으면 좋겠다. 새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각자 자신들이 최우선이었고 힘들다고 했다. 새엄마는 우리 가족 사이에 끼는 것이 마치 이방인 같다고 했으며 아빠는 그런 새엄마와의 관계를 힘들어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힘듦은 이해받지 못했고 '알아서 잘 하는 자녀들'일 때 그들에게 인정받았다. 그래서 더 알아서 잘 해보려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알아서 잘 살고 있는 딸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이룬 나에게 가족은 '힘든 존재'로 남을 뿐 '그리운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외롭고 둥지가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요즘 들어 내 아이들에게 나는 '둥지'가 되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가 크면서 느끼는 놀라운 사실은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알아서 잘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면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애니까 그렇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또 한 번 긁혀 남편을 향해 그 화를 더 크게 돌린다.
이런 내가 변하는 방법은 '부모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걸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더 많이 읽으면 될지... 더 많이 써내면 될지... 그것도 아니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해결이 되는 것인지...
둘째의 출산을 한 달 남짓 앞둔 요즘,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조용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해결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또 한 명의 아이를 키워내며 발견되는 내 부족함 앞에 좌절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애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