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을 주제로 한 자서전

by 응원하는 보리맘

부모님 칠순연 때의 일이었다. 기분 좋게 호텔 뷔페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영천에 있는 펜션으로 가족들이 함께 이동했다. 오랜만에 보는 작은아버지, 고모 내외, 사촌들과 그들의 가족들... 육 남매의 장남이자 타고난 샌님인 아빠 덕분에 가족모임은 늘 어색하고 재미없었지만 성이 다른 고모부들이 함께 있을 땐 분위기가 달랐다. 이번에도 고모부들 덕분에 유쾌한 분위기로 저녁식사까지 마무리했고 어른들은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젊은 세대들( 우리 남매와 사촌 가족들)은 식사 후 늦지 않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가족도 인사를 드리고 차를 타려고 하는데 둘째 고모부가 나를 붙잡고 집에 가서 아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 주라고 이야기하셨다.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외할아버지가 친손주만 너무 챙기는 모습에 외손주인 아들이 마음 상했을 수 있다며 덧붙이셨다.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친정아버지가 아들에게 친손주들에게만큼 애살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남매 중 장녀인 나도 어렸을 때 항상 느껴왔던 감정이라 당연하다고까지 여겼던 것 같다. 처음엔 서운했지만 아들도 시댁에서는 첫 번째로 귀한 손주로 여겨지므로 어쩌면 공평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는 친손주가 예뻐도 외손주에게 혹여나 그 사실을 들킬까 애쓰는 모습이 문득 보이는 반면, 친정 아빠는 한 번도 외손주의 마음이 상할까 신경 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외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노력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애처로워졌다. 예전의 나라면 입 밖으로도 못 꺼내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 불쾌함을 표현해야만 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아빠에게 "친손주랑 외손주 대놓고 차별 좀 하지 말고!"라며 한 마디 했다. 아빠는 당황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척 나름의 변명을 했고 내 아들도 아직 아이일 뿐이고 이유 불문이라며 아빠의 말 꼬리를 잘랐다. 결국 "알겠다"라는 말을 듣고 차에 올라탔는데 한편으론 너무 했나 싶으면서도 잘한 일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의 성차별의 역사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지 못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나에게 "너희 아빠가 네가 태어나고 딸이란 소식을 듣고는 병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라며 이야기해 준 사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본인 딸의 산고는 뒤로하고 첫째 아이로 딸을 낳았다는 사실에 담배를 꺼내 문 사위가 괘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굳이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가끔 하며 자라왔다.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은 내 기억에 항상 우리 집 1순위였다, 다행인 것은 아빠를 제외하고는 내가 첫 손주이자 조카여서 그런지 특별히 차별을 두지는 않았다. 엄마도 누나인 나보다 동생을 우선에 두고 무언가를 해 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우리 집 서열 1위인 아빠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은 아들인 동생이 가끔은 미워서 못되게 말하기도 하고, 일부러 사소한 심부름들도 시켰었다. 그래서인지 남동생은 나를 의지하면서도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할 남자를 만나게 되고 부모님께 소개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나를 빨리 치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30년 가까이 키운 딸을 보내는 서운함이 왜 없었겠냐마는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이 된 친정엄마는 가끔 본인이 아빠에게 "아들딸 구분 없이 주라고 했다."라며 이야기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나와 남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항상 남동생에게는 허용적이면서 나에게는 그런 것 없이 기대만 가지는 것 같았다. 결혼식 날 신부가 너무 웃으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주변해서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기실부터 식을 올리는 내내 하늘로 치솟는 입꼬리를 내버려두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해방감과 기쁨이 뒤섞인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 결혼 생활에서 또 어떤 성차별 속에 살지 알지 못한 채...

남편은 경상도에서 귀하게 자란 1남 1녀 중 둘째 아들이다. 따지고 보면 나의 남동생과 같은 입장인 셈이다. 결혼 후 어머님은 나를 딸처럼 대하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항상 시어머니가 어려웠다. 한순간 눈 밖에라도 나면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착한 며느리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런 상황들이 피로했다. 딸보다도 나를 더 편하게 대하는 어머님이(시누이는 친정엄마에게 호락호락한 딸이 아니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누이는 나에게 "각자 시댁은 알아서 챙기자"라며 선을 그어주었다. 당시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말과 정반대인 그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시댁 챙기는 것도 버거운데 친정까지 챙기고 싶지 않았고 남동생이 결혼한 후 올케에게 똑같이 그 말을 적용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형님과 나는 어쩌면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아들 내외에게 효도 많이 받으시라!'는 마음...

부모로부터 느껴온 오랜 성차별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것은 첫째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힘들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정 아빠가 나에게 전화 걸어서 하는 첫 마디는 호통 아니면 남동생에 대한 안부였다. 내가 잘못한 일은 거의 없었고 본인 뜻대로 안되는 남동생과의 소통의 부재를 나를 통해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날도 시험관 시술에 실패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내가 일하던 병원 앞 스타벅스에 혼자 앉아있던 차였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또 어떤 일로 호통을 칠까 순간 겁이 났다. 용기를 내서 전화를 받았는데 의외로 아빠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촌 형의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마음이 착잡하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서운한 마음이 들어 아빠에게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아빠의 전화벨만 울리면 긴장이 된다고, 언제 한 번 잘 지내냐 안부 인사하는 전화 먼저 한 적 있었냐고...' 아빠는 많이 당황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후 장문의 문자로 스스로의 행동을 변명하며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사랑한다'라고까지 남겼다.

그 이후로 나는 형님처럼 친정 부모님과의 관계에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고 이상하게 어머님과의 관계에서도 예전처럼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딸과 며느리다운 행동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자 친정 부모님은 서운해했고 시어머니는 괘씸해 했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30년 넘게 부모에게 느꼈던 서운한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사는 게 한결 편해졌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걸 갈구할 필요가 없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욕망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마무리되는 간단한 결말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이후에도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보살핌을 타인에게 갈구하게 되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원만하게 마무리되기 힘들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혼식에서 느꼈던 해방감과 기쁨은 '진짜'가 아니었다. 또 다른 성차별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고 15년의 결혼 기간 내내 가정 안팎의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깨닫지 못했지만 내 인생에 전반에 걸쳐 '성차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럴수록 더 씩씩하게 힘을 가진 사람으로 살기를 열망했다.

여전히 알게 모르게 성차별적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친정에서 대단히 받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아빠가 우리에게 '손주들 몫'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지원을 해 주시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손주 개개인의 몫이라며 '1인당 얼마'씩을 주신다. 처음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가 둘인 남동생 네와 하나인 나에게 주는 금액이 다른 것이 아닌가. 또 향후 남길 재산에 대해서도 남동생의 몫만 챙겨놓고 딸인 나는 배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 가는 곳에 마음이 있다'라고 이럴 때면 정말 서운한 마음이 배가 된다.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운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한 번 작정하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손주 개개인의 몫이 아니라 남동생과 나 개개인의 몫으로 주겠다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진 것을 물려줄 의무는 없다. 그러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재산의 대물림을 당연시 여기고, 딸은 출가외인 취급하는 현실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면서 원하는 대로 된다면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아들에게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주면서 차별적 사랑까지 쏟아부은 결과 그들의 자녀들은 딸을 더 선호하는 세대가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요즘 세상에 딸 없는 부모로 산다는 것이 스스로 가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불손한 기대는 실망으로 마무리되었고, 아들 둘을 가지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들이 무심코 엄마에게 함부로 대한다고 느껴질 때, 여자아이들에게 매너를 갖추지 않을 때, 힘의 논리로 그들만의 세상에서 관계할 때... 나는 꽤나 불안하다. 살면서 느껴온 성차별이 내 아들의 세대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속상하고 염려스럽다. 생애를 관통하는 성차별의 역사가 나의 현재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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