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열다섯 살까지만 존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3학년 때부터는 아예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수능을 치고 대학생이 될 무렵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스무 살이 된 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촌 언니의 '엄마가 뇌 수술을 앞두고 있고 너를 보고 싶어 하니 한 번 와달라'는 연락에
"저에게는 엄마가 없어요"라고 말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형식적으로 나에게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빠의 재혼으로 진짜 엄마를 대신할 가짜 엄마가 있었으므로 특별한 공백 없이 그냥 평범한 아이처럼 살 수 있었다.
단 한순간도 새엄마가 친엄마를 대신한 순간은 없었고, 엄마 아빠가 이혼한 그 순간부터 나에게 엄마는 그저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특별히 서운하지도 않았다. 닥쳐온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엄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남아있는 가족 (아빠와 나 그리고 남동생) 이 그저 힘을 내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와 다르게 우리를 지키고 있는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가 없는 내 처지가 가엽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단지 훗날 아이를 낳게 되면 친정엄마의 부재가 뒤늦게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된 적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신 엄마와도 화해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
그림책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글쓰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엄마에 대한 생각들을 어렴풋이 해보기 시작했다. 엄마를 향한 무뎌진 감정을 조금씩 파헤칠수록 두려워져서 더 이상 직면하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 시작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와의 이야기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에 어떤 알지 못할 변화가 일어난 까닭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어머니의 문지기] 이야기를 통해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빠가 나의 아빠 같았고, 내가 기억하는 열다섯 살 이전의 엄마에 대해 떠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나의 엄마는 이 글에서의 엄마만큼 지혜롭지 못했고, 문지기 아빠를 눈속임하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열망했던 것 같다. 내가 결혼 후 남편과의 관계에서 투쟁하듯 부딪치는 것은 엄마를 닮은 어떤 점 때문이며 그 시대의 엄마는 성공하지 못한 것을 나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차이뿐 그 바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