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그림에 기댄 위로

이진민 작가의 <언니네 미술관>을 읽고 위로받는 슬픔

by 응원하는 보리맘

2025년 새해가 밝았다.

40여 년을 살면서 '새해가 밝았다'는 말이 슬펐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새해는 항상 기대로 가득 찬 거야 하지 않나

아님 적어도 슬프진 않아야지...


2024년 한국인으로 살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는 일이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던 와중에 늘 해오던 북클럽의 12월 도서가 이진민 작가님의 <언니네 미술관>이었고 그림에 대한 견해를 넓히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주는 뜻밖의 책이었다.


모든 챕터가 좋았지만 part2의 01 슬픔 [인간의 가장 무해하고 본질적인 감정]을 읽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눈물이 많아졌다'라는 도입부터 딱 내 이야기다 싶었다.


12월 3일 병실에서 혼자 마주한 비상계엄과, 12월 29일의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나라의 혼란에 시도 때도 없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나이 들면서 슬픔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조금 숨이 쉬어졌다.

너무나 참담한 현실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들어서 슬픔을 더 겹겹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위로받고 있는 것만 같다.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 건지 북클럽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한 문장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 눈이 점점 나빠지지만 슬픔을 보는 눈은 차츰 밝아진다. 노안이 오는 이유는 남의 허물을 너그럽게 넘겨주라는 뜻인 것 같고, 노안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더 잘 보이는 이유는 필요한 곳에 가서 같이 아파하며 손잡아 주라는 뜻인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이 문장은 종이에 써서 붙여놓고 두고두고 새기고 싶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슬픔의 영역이 늘어나지만, 영역의 확장이 저절로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슬픔을 감각하는 능력을 부지런히 키우는 것은 어른의 책무이기도 하다.'

2024년은 나에게 '나이 듦'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한 해였다. 자연스레 어른스러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어른답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생각이 닿았다.

나의 이 슬픔을 감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어른의 책무라니 지금의 상황이 마냥 좌절스럽지만은 않게 되어 또 한 번 위안이 된다.


책을 읽다 가끔 있는 일인데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문장을 마주할 때가 있다.

한때 나는 큰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힘을 잔뜩 주는 것이 젊음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나를 둘러싼 세상에도 의미 있는 변화 같은 건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냥 작고 무해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훌륭한 사람이란 꼭 영향력 있는 사람 것도 아님을 이제 안다. '말씀'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는 한때 큰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매 순간을 돌파하는 힘으로 살아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매 순간 내 목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정하고 친절한 철학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작가님은 어떤 삶을 살고 있길래 이런 글들을 쓰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궁금해졌다.



북클럽 줌모임에서 이 책에 나오는 그림 중 거실에 걸어 놓고 싶은 그림을 꼽아보기로 했다.

내가 이 그림을 이야기했을 때 모두들 놀랐다. 심지어 이 그림을 고른 나도 의아했다.


작가는 마그리트의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 그림 위에 '주관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올려놓고 싶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난제, 서로를 이해한다는 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15년간의 결혼생활을 통과하며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남편과 함께 살 수 있는 건 이와 같은 질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때로는 포기라 여겼지만 지금은 함께하기 위한 현명한 대처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완벽한 이해, 충만한 합일이 아니다. 그저 곁에 있으려는 노력이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사랑할 뿐이다. 천을 두르고서라도 너에게 매달려 입 맞추려는 몸짓이 사랑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깊이 공감하고 이 그림을 새롭게 보게 된 덕분에 앞으로도 이 그림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같다.



슬픔 속에 뜻밖에 만난 위로인 <언니네 미술관>을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요약해서 쓴 글입니다.

이 책은 한 권에 많은 것을 다정하고 친절하게 꾹꾹 눌러 담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꼭꼭씹어 읽고 싶을 만큼요.



작가의 이전글그림책은 나의 응원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