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skaa Joulua!

by 보리아빠

산타 할아버지는 1년에 한 번만 선물을 주지만, 아이는 1년 내내 줍니다. 때로는 엉덩이 춤으로, 때로는 활짝 웃는 얼굴로,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로요. 매일 자라는 보리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부모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매번 잊고 살지만 말이에요.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 때 선물을 나눠줄 아빠를 모집한다기에, 고민 없이 신청했습니다. 산타 복장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와 함께 다른 아빠 한 분이 지원해 총 두 명의 초보 산타가 결정됐습니다.


올해부터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던 보리였기에, 저도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기대가 많이 됐어요. 산타를 믿는 아이들의 마음을 꼭 지켜주고 싶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목소리도 바꿔서 내 보고, 조금 과하지만 핀란드어 인사도 연습했어요. 작년 크리스마스엔 문화센터 산타를 보고 보리가 대성통곡을 했던 적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무서워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정체가 발각되는 거였어요. 보리가 알아보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평소 잘 안 쓰던 파운데이션까지 챙겨뒀습니다. 뭐, 핀란드 사람이니 얼굴이 하얘야지요. 틈날 때마다 목소리를 연습했고, 유치원 선생님인 아내에게 맞춤 강의도 받았습니다.


"당신은 목소리가 낮고 말을 끄니까, 지금보다 3도 정도는 톤을 높여서 말해야 해요."


매일 차로 이동하면서, 아내의 조언을 참고해 연습했어요.


Hauskaa Joulua! (메리 크리스마스)

Hei lapset. (안녕 어린이들)

Hei ystävät! (안녕 친구들)


점점 메서드 연기에 심취해 갔고, 행사날이 되었습니다. 보리를 등원시킨 후,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어린이집으로 슬며시 들어갔어요. 준비해 주신 빨간 옷을 입고, 준비해 간 파운데이션을 발랐습니다. 선글라스까지 쓰니 이 정도면 변장은 완벽하겠다 싶었습니다. 곧 산타 할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전 선물 꾸러미를 메고 나왔어요.



제가 맡은 곳은 영아반이었는데, 선물을 나눠줄 친구들 중 보리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배려로 보리네 반은 가장 마지막에 만나게 되었고요. 긴장됐지만 배운 대로, 연습한 대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줬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아이들을 만난 적이 처음이다 보니, 다양한 표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어요.


낯을 가려서 우물쭈물하기도 하고, 먼저 안아주며 활짝 웃기도 했습니다. 우는 친구도 있었고요. 선생님들이 참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용기 있게 다가와 주는 아이들도 그랬고요. 행사는 별 탈 없이 진행되었고, 점점 보리를 만나는 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어린이의 사회생활이 궁금해졌어요.


매일 올라오는 알림장을 보면 잘 지내고 있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하원 후 이야기도 나누며 경험도 공유했었고요. 그렇지만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보리의 모습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건,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란 걸요.


마음 한편이 조금씩 저려왔습니다. 가볍게 생각해 산타 할아버지에 지원했지만, 한 번뿐인 소중한 경험은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감정으로 다뤄야 할 것 같아서요. 목소리는 조금씩 떨려왔지만, 간신히 누그러뜨리고 보리를 만났습니다.


"어디 보자, 이번엔 마지막 친구구나. 보리 어린이 어디 있을까~?"


그 말에 친구들과 앉아 있던 보리가 사뿐 일어나 다가왔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뿜어내는 낯선 기운에, 조금은 망설이면서요. 매일 보는 딸아이의 처음 보는 모습에, 전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고 준비했던 말을 건넸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보리 선물 주려고 가져왔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항상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길 할아버지가 기도할게요!"


안아달라는 제 말에 눈빛은 조금 흔들렸지만, 그래도 빼진 않았어요.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제 옆으로 와 예쁜 포즈도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보리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참여해 줘서 고맙다며 어린이집에서 챙겨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고, 기분 좋게 나왔습니다.


숨을 돌리고 출근하기 위해 차에 앉았는데, 갑자기 보리의 얼굴이 아른거렸어요.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아이가, 벌써 커서 자기만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떨어진 채 혼자서도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그 모습이 대견해, 눈이 살짝 흐려졌어요.


저는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작은 선물을 했지만, 보리는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함께 하는 날들이 모두 귀중한 선물이고, 특권이란 걸요. 정말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귀하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조금은 더 성장한 느낌이었어요.


윤슬처럼 빛나는 아이로 보리를 키우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다행히, 보리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산타가 누군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원할 때, 산타 할아버지와 만나 선물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며 한참이나 자랑했거든요. 그제야 전 졸였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아빠였어."


언젠가 이 말을 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겁니다. 보리는 금방 자랄 거고, 그러면 산타의 정체를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오늘 하루치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흘러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