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수도사는 갈고리를 들고 다닙니다
어린 시절, 긴장된 표정으로 퍼즐을 맞추는 벌거벗은 남자의 모습을 브라운관에서 본 적이 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캐스팅 큐브인 것 같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나 보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땀 흘리며 네모난 상자를 매만져 마침내 퍼즐을 풀어냈고, 프랭크는 보상을 받았다.
맞춰진 상자 속에서 나온
갈고리에 온몸이 찌ㅈㅇㅓ 발ㄱㅕ...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헬레이저'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함께 보던 부모님은 경악하며 TV를 껐고, 난 다른 테이프로 바꿔 오라는 야단과 함께 집에서 내몰렸다. 어떤 영화가 정화의 수단이 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프랭크의 살이 발겨지는 순간이 너무나 강렬해서였을까? 한동안 공포영화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헬 프리스트(핀헤드)와 새노바이트는 물론 원작자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게 죄악으로 느껴질 만큼.
클라이브 바커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영화인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우연히 보고,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클라이브 바커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갈고리가 내장된 큐브가 아닌, 고기를 다지는 망치를 가지고 말이다. 영화 속 살인마인 마호가니와 우주적 존재는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자연스럽게 그 서사를 창조한 클라이브 바커에게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 사람의 본업이 소설가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 실린 바커의 중편집 '피의 책'도 구입해서 읽어봤고, 그의 묘사력에 빠져들었다. 그런 중 '헬레이저'의 번역본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린 시절 끊어졌던 기억을 이어나가고 싶어졌다.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책을 주문했고, 곧 프랭크가 받은 보상이 뭐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이렇게나 역겨운 일이었을까? 르마샹의 상자 따위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어딘가에 갈고리가 늘어져 있을 것만 같아 가슴팍이 간질간질했다. 만약 시신경에 흐릿하게라도 수도사의 만행이 남아 있었다면, 책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고, 세상 너머 어디에도 없을 끝내주는 보상을 받았다.
세상 그 어떤 쾌락보다 짜릿하고,
세상 그 어떤 고통보다 끔찍한 보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