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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 세 번의 깨달음

by 보리아빠

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연등회에 참석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경문왕 6년인 866년부터 지금까지, 1,1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큰 행사입니다. 불자라면 한 번쯤은 경험이 있을 거예요. 다양한 색의 등이 동국대학교를 출발해 종각까지 이어지는, 불교 행사 중 가장 큰 잔치입니다. 해마다 꾸준히 참석을 했었는데요,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와 육아 문제로 참석을 못했었어요. 그래서 올해 연등회는 제게 세 번째 깨달음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럼 나머지 두 번은 언제였나고요?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2015년 봄,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딱히 '불자'라는 자각 따윈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해인사에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3,000배도 해 보고 '坦然'이라는 법명도 받긴 했지만요. 그냥 마음이 편해서, 향내가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절에 한 번씩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당시엔 온갖 진상을 상대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화가 되어 온몸이 마구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깨끗이 닦을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아마 저희 스님도 그걸 잘 아셨던 것 같아요. '저 놈 저거 기운을 좀 돌려봐야 하는데...'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며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힘들 때였고, 다독일 필요가 있다 생각했어요. 좋은 기운을 받아 업장을 좀 소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모실 겸 연등회에 참석하게 된 거지요.


행사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사찰과 단체의 깃발들이 보입니다.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은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요. 큰 무대에서는 법문이 한창이었고, 그 후 율동단의 무대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눈과 귀가 즐거웠어요.


어머니께서 계신 선원은 규모가 큰 사찰은 아닙니다. 신도들도 대부분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고요. 젊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와 저 멀리서 사람들을 챙기고 있는, 엄마랑 같이 온 듯한 아가씨 한 명뿐이었습니다. 총무를 보시는 신도분께서 잘 왔다며 절 반겨주셨습니다. 제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많다면서요.


사전행사가 다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연등행렬이 출발합니다. 우리 선원은 짧은 기둥에 양쪽으로 달린 등을 들고 대충 열을 맞춰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목적지인 조계사까지 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힘들어하시는 분은 없는지 중간중간 살피며 행렬 사이를 자유롭게 다녔어요. 제 역할이 그거였거든요.


동국대 정문을 지나 큰길로 나오니, 길가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대형 연등을 실은 차량도 합류했고요. 행렬이 길다 보니 신호 대기를 하는 동안 풍물놀이를 하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저희 선원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거라곤 손 흔들어주기 정도뿐이었습니다. 저도 딱히 다른 뭔가를 할 생각은 없이 그냥 그렇게 걸어갔습니다.


긴 행렬이 동대문을 지나칠 무렵이었습니다. 인도에 인파는 점점 많아지고, 주목받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던 전 점점 우그러들고 있었습니다. 길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게 점점 힘들어졌죠. 그때 길가에 있던 사람 중에 누군가가 소리를 지릅니다.


"부처님 만세!!"


순간 약간 놀라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봅니다. 저 멀리, 누가 봐도 노숙자임이 분명한 남루한 행색이 아저씨가 보입니다. 또 한 번, 더 크게 고함을 칩니다.


"부처님 만세!! 아유, 여긴 어느 절이유? 좋은 기운 받아가시믄, 나 같은 놈한테도 복 좀 나눠주슈!"


그 순간 엄청난 깨달음이 왔습니다.


좋은 기운을 받아간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받아가는 지도 몰랐거든요. "부처님 만세!" 이 외침 덕분에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눠야 하는구나. 다 비워야 하는구나. 그래야 채워지는구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던 사람이 제겐 부처였고, 고래고래 치던 소리가 사자후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몸과 목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복 많이 받으세요!"

"성불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미친놈처럼 소리치며 길 양쪽을 뛰어다녔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에 맞춰서 손도 흔들어 주고, 환호성도 보내며 호응해 주었습니다. 정말 상쾌한 기분이었어요. 동대문에서 만난 귀인 덕분에 제 마음속에 있던 큼직한 응어리가 없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나눠줘도 복은 커져만 갔고, 조계사까지 무사히 완주를 했습니다! 목이 쉬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행렬에 참석했던 어르신들 누구 하나 큰 탈 없이 잘 마치신 걸 확인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행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의미 있는 날이었어요.




그렇게 매년 연등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 많이 생겼고, 제 마음도 점점 둥글게 다듬어졌어요. 화가 나도 적당히 넘기는 요령도 생겼고, 세상을 좀 더 밝게 보게 된 것 같았습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이후 한 번 더 찾아왔고, 매일 마음을 닦으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다리는 아팠고 목은 맛이 갔지만, 얻어 가는 건 훨씬 컸습니다.


10년 전 큰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났고, 이번에도 행진 내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녔습니다. 심지어 구경하던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여 행렬에 참가해 조계사까지 같이 가기도 했어요. 첫 연등회에서 얻은 복은 아직 많이 남아 다 나눠주려면 앞으로 30년은 연등회에 참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매년 참석을 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연등회에 참석해 두 번째 깨달음을 얻은 건 3년 뒤인 2018년이었습니다. 제가 글 초반에 언급했던 사람 기억하시나요? 엄마랑 같이 온 아가씨 말이에요. 매년 얼굴만 보던 그 사람이, 사랑하는 보리의 엄마이자 제 아내입니다.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였어요.


사랑하는 보리에게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풀어볼지 오랜 시간 고민을 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계기가 생겼습니다. 잘 정리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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