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의 눈에 들어온 것-01
하루 중 가장 해가 높은 시간, 정오가 된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으로 짧은 생각을 시작합니다. 오늘, 중천(中天)의 눈에 들어온 것은 뭐였을까요?
온전히 내 힘으로 새 차를 구매한 지 벌써 3년째다. 인생 첫 차는 아니지만 누구 도움 없이 샀다는 점이 이 차를 첫차로 받아들이기엔 충분했다. 바로 전 탔던 차는 배출가스 5등급인 경유차였다. 2006년 출고, 2019년 매연 저감장치 장착. 그리고 사망. 저감장치를 달고 차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도로 위에서 ㅎ흰 연기를 뿜으며 다니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구청에서 공문도 수차례 받았다.
그래도 꿋꿋이 타고 다녔다. 아버지 유품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렇지만 보리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오게 되어, 정들었던 차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17만 6천 킬로미터. 15년 동안 내 발이 되어 준 자동차는 신차 딜러의 손을 거친 뒤 수출 말소가 되었다.
지금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인수받던 날, 간단히 고사를 지내기 위해 명주실, 북어포, 돼지저금통과 막걸리를 한 통 준비했다. 먼저 대학 시절부터 약 15년 동안 정들었던 차 앞에 상을 펴 두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안전하게 여기저기 다닐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낯선 외국에 가서도 좋은 사람들 태우고 잘 다니라고. 그러고 나서 아버지께도 인사를 했다.
"아버지, 물려주신 차 잘 탔어요. 이제 막둥이도 많이 커서 처음으로 제 힘으로 차를 샀어요."
"더 깨끗한 새 차에서 아버지 모시고 안전하게 다니겠습니다. 곧 태어날 보리도 좋아하겠지요?"
이렇게 인사를 하며 내심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문득 옆을 보니 아내도, 장모님도, 같이 있던 딜러분도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가족들 모두가 한 마디씩 인사를 하고, 딜러분도 말없이 5만 원짜리 한 장을 돼지저금통 앞에 조용히 두셨다.
지금까진 자동차라고 하면 그냥 이동 수단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차량을 꾸민다고 아내의 눈총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막상 보낼 때가 되니 오만가지 생각이 나며 아쉬움이 커져갔다. 그간 정이 많이 들긴 했었나 보다. 어쩌면 아버지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새 차바퀴에 막걸리를 뿌리는 것으로 간단한 고사가 끝났다. 상징적으로 아버지를 새 차에 모시고, 온 가족을 태운 뒤 첫 주행을 했다. 1톤 트럭, 겔O퍼, 싼O페를 거친 뒤 처음으로 타게 된 휘발유차다. 적응을 하기 위해 발의 감각부터 조금씩 맞춰봤다.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켰는데, 그때 장모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이 차는 깜빡이 소리도 참 좋네, 남서방"
난 이 별 거 아닌 장모님 말씀에 한참을 웃었더랬다. 정든 차를 보내고 아쉬운 마음이 남은 걸 아셨던 걸까. 아내는 지시등의 소리를 입으로 따라 하며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래, 보낸 건 잊어버려야지.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곧 만나게 될 보리를 생각해야지. 그렇게 진짜 인생 첫 차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다음 해인 22년 2월, 아내가 소중히 품고 있던 보리가 건강히 태어났다. 병원 밖으로 처음 나서던 날도,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할 때도 이 차와 함께였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국을 누비며 좋은 추억을 쌓게 해 줄 거라 생각한다. 오늘은 세차를 한 번 해줘야겠다.
25년 6월, 운전석 등판을 발로 찰 수 있을 정도로 보리가 훌쩍 컸다. 세월이 참 빠르게 가는구나 싶다. 언젠가 이 차를 보리가 운전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때까지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문제없이 타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