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의 눈에 들어온 것-03
하루 중 가장 해가 높은 시간, 정오가 된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으로 짧은 생각을 시작합니다. 오늘, 중천(中天)의 눈에 들어온 것은 뭐였을까요?
사람의 인상은 참 다양하다. 미남형, 호감형, 범죄형 등등... 하지만 세상엔 이런 얼굴형도 있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형'
길을 가다 보면 내게 길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물론 자주 다니는 곳이라면 도움을 주는 데 아무 문제는 없지만, 처음 온 동네에서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같은 질문을 들으면 꽤나 당황스럽다. 나도 잘 모르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 알려주기는 한다.
요즘 같이 전화기에 지도책을 한 권씩 담아가지고 다니는 시대에는 길을 알려주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같은 수단이 없던 시절엔 정말 고역이었다. 지도책을 가방에 넣어다녀야 하나 고민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남녀노소는 물론 국적도 가리지 않고 길을 물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 덕에 알게된 게 있었다. 내가 길눈은 꽤나 밝은 편이라는 거. 또 하나는 앞으로도 사람들은 꾸준히 내게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아낼 거라는 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 꽤나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된지 오래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작은 용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한손에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음에도 낯선 이의 도움을 바란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작은 용기를 꺼낼 대상을 찾는 일이다. 날 도와줄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길눈이 밝은 사람의 얼굴엔 어떤 특징이 있길래? 어쩌면 얼굴과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극심하던 시절에도 마스크를 뚫고 검색어가 입력됐으니까.
물론 '저도 잘 모르는 길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이 짧은 거절의 말로 길 잃은 자의 검색엔진을 바꿔볼 수도 있겠지만, 썩 내키진 않는다. '왠지 저 사람이라면 알 것 같아서'라는 마음을 저버리는 것보단 그냥 잠깐 시간을 내 도움을 주는 게 성격에 맞는다. 어쩌면 도울 우(佑) 자를 이름에 새긴 사람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게이션형 인상으로 사는 자의 책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난 이름값, 이름값을 제대로 하며 살고 있다. 길 잃은 누군가를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면서.
가끔은 이 인상이 대체 어디까지 먹힐지가 궁금해진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을 받은 것 같다. 처음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도 수시로 길을 물어오곤 했었으니까. 만약 외국에 갔을 때도 현지인이 길을 물어온다면? 내 인상에 대해 진짜 심각하게 연구를 해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