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 0원의 시간

닭육수가 진했던 만큼 밀도높은 한 해가 되길

by 글쓰는 여자



prologue


"해가 떠오르는 걸 본 뒤 가서 먹자. 먹을 시간은 넉넉해" 작년의 이 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출을 보고 간 무료 떡국 나눔 냄비에는 얇게 썬 가래떡 대여섯 개만 있을 따름이었다. 자녀들에게 한 말이 있으니 그냥 가자는 말은 못 하겠고. 이도 저도 못한 채 우물쭈물 냄비 앞에 서 있자니 "여기 떡 있네~ 한 그릇은 나오겠어"라는 말이 들려온다. 잠시 뒤 떡국 한 그릇을 퍼주고 나와 그레이스, 제이콥 뒤로 두 어 팀이 더 와 남은 떡국을 먹었다





2025년에 이어 2026년에도 떡국 행사가 용두암에서 열렸다. 식사비 0원의 무료 행사였다. 찾는 이가 적을 거라 예상하고 일출을 보고 나서 유유자적 찾았건만, 아. 뿔. 싸.


하얀 국물만 가득한 냄비가 휘휘 젓는 국자 아래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올해는 떡국 먼저 보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자고 의견이 만장일치로 모아졌다.




새벽 6시 30분부터 무료 나눔이 시작된다고 용담2동 주민센터 한 주 소식란에 알렸는데, 6시 20분 정도 도착하니 몇몇 팀이 벌써 도착해 식사 의자에 앉았다.

용담 2동 (흥운마을) 게이트볼장에서 무료 떡국 나눔 행사가 이루어져 게이트볼과 관련한 용품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해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내부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따듯한 물을 받아오니 어느덧 30분이 다 되었다. 이제쯤 떡국이 나오려나 싶었는데 주방 쪽에서 냄비를 가져오고 김치를 뜨는 모양새를 보니 아직 준비가 덜 된 듯하다. 일출 예정 시각까지 대략 1시간 정도 남았으니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것도 좋다.



6시 40분 정도 되니 드. 디. 어. 떡국을 가져가란 소리가 들린다. 사람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 팔짝 뛰어오른 개구리마냥 여러 명의 사람이 갑작스럽게 우르르 배식대 쪽으로 몰렸다. 그들은 기다란 하나의 줄이라기보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고, 자칫 한 명이 중심을 잃으면 모두가 한꺼번에 넘어질 듯한 형국이었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며 여유롭게 한 줄을 만든 쪽으로 이동했다. 초반에 두 무리로 나뉘었던 줄은 차츰 질서를 잡으며 한 줄이 되었다.


배식대 앞쪽으로 가니 스테인리스 우동 그릇이 쌓였고 그중 하나를 집어 배식하는 이에게 건네니 국자로 솜씨 좋게 뜨거운 음식을 떠올렸다. 먼저 뜬 사람의 떡국 양이나 내 양이나 별반차이 없는 걸 보니 배부름보다는 의미에 더 무게가 실린다.



자리에 앉아 한 술 뜨니 속이 따땃해진다. 음식값을 지불하고 먹는 밥도 그렇겠지만, 무료로 불특정다수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음식이라 그 정까지 마음을 녹인다.


갓 무쳐낸 배추겉절이와 같이 한 그릇 음식을 먹으며 간간이 나누는 담소가 유쾌하다.




식사를 다 한 뒤 실내에서 잠시 머물다가 일출을 보러 나갔다. 용두암의 뷰포인트 쪽에 사람들이 다수 몰렸지만, 이곳의 일출 스팟은 용두암 공영주차장 쪽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뷰포인트에 있던 자들이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되자 점차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용두암 주차장 쪽에 있는 일출 스팟 - 비록 구름 뒤에 가려졌지만, 빛이 퍼지는 색이 아름다웠다

해라는 둥그런 모양의 구체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구) 라마다 호텔 유리창을 점차 따듯한 주황빛으로 물들여가는 태양빛은 이곳을 찾은 여행자에게 인상적이었다.


구름에 가려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없었지만, 진한 떡국의 닭육수처럼 올 한 해 농도짙은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epilogue


태국 방콕 여행을 그레이스와 같이 갔었을 때 일이다. 문화예술 공연을 볼 수 있는 장소의 뜰에서 태국 전통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무료라며 먹고 가란다. 그래서 삶은 족발을 얹은 밥에 음료수를 먹으며 그레이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에서의 무료 식사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기회가 된다는 건 방콕에서나 제주에서나 동일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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