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밥상문간 슬로우 대학로점
prologue
'목회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무턱대고 왔어요. 무얼 할까 기도하며 지내는 중에 가톨릭 재단에서 하는 김치찌개 집을 갔어요. 가격이 저렴한데 맛도 좋고 청년들을 섬기기에 좋겠단 마음이 들었어요. 다 먹고 난 뒤 어떻게 김치찌개를 만드는지 물어봤어요. 이후로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을 연습했어요. 이젠 제법 맛이 좋습니다"
12월 중순의 여행.
여행 경비가 무척 적은 일정이었다.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것을 살피니 역시나 식비였다. 출발 시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로 주변의 밥집을 검색했다. 그러자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다. 한 번쯤 가보고 싶던 '청년밥상문간'
청년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알게 된 이 음식점은 취지도 좋았지만, 낮은 가격에 맛까지 좋다니 흥미가 생겼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적은 여행경비 덕분에 오래전 소망이 이루어졌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대략 300미터 지점에 있었다. 대학로는 연극을 보거나 데이트를 위해 젊은 남녀가 많이 모이는 여행지라 번화가 주변에 있을 거라 여겼지만, 그레이스에게 맡긴 네이버 길 찾기는 점점 어슥한 골목길로 안내했다. 단독주택과 작은 빌라 등이 이어진 길을 걸으며 그레이스에게 "여기가 맞아?"라고 물어보았다. 그레이스는 지도를 보여 주며 맞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10분 정도 걷다 보니 주택 가 안에 몇몇 가게와 소극장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여기에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 같은 순간이 여행지에서 가장 설레면서도 떨린다. 지나가는 이가 없어 가는 곳을 물을 수 없어 지도상의 길 안내에만 의지해야 할 때. 그리고 길 분위기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장소와 다르게 되면, 작은 실 하나를 잡아당겨 올이 풀린 비단처럼 마음속에는 작은 긴장감을 생긴다.
따듯한 노란불빛이 은은하게 퍼져가는 한옥집이 목적지였다. 그레이스와 내가 가던 방향에서는 1층만 먼저 보였지만, 건물을 감싸듯 좀 더 돌아가니 '청년밥상문간'이란 간판이 나타났다. 다음 일정이 있어 시간 내 밥집을 제대로 찾았다는 마음에 안도의 숨이 입 밖으로 슬며시 나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갈 때는 머리를 숙이며 들어갔다. 계단을 통해 들어가니 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둘 혹은 네 명이 같이 한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잠시 살펴본 뒤 무인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려니 음식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 중, 직원이 다가와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서 안내해 주는 위치에 서서 기다리는데 5분 정도 되니 앉을자리가 생겼다. 그제야 "이제 주문하셔도 돼요"라는 말을 들었다. 대기하는 중에는 주문이 안 되는 집인가 보다.
김치찌개가 나올 동안 물을 떠 와 마시며 인덕션에서 음식을 데워 먹는 방법을 살폈다. 그렇게 음식을 기다리다가 우리 호출 번호를 부르니 오픈 주방 앞에서 냄비를 가져왔다. 그런 뒤에야 밥과 콩나물무침을 떠 왔다. 찌개가 나올 동안 콩나물과 밥을 떠 오는 편이 나을 듯싶어 뒷날은 그렇게 시간을 활용했다.
찌개 속에는 두부와 고기, 국물, 김치, 대파 등이 들었다. 고기는 다소 질긴 듯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번 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이 참 신기한 지점이었다. 고기는 먹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덜 질겼고 국물과 같이 먹어 좋았다.
지난번 그레이스와 폴, 제이콥과 같이 상해 여행을 갔을 때 그레이스가 밥값을 아낀다고 마라맛 햄버거를 주문해 먹었던 적이 있다. 각자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해 잘 먹고 있었는데, 그레이스는 몇 입 먹지 않고 더는 못 먹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레이스의 마라맛 선택 때부터 "마라맛? 이 맛으로 왜 먹으려고?"라고 물었는데 그레이스는 그것이 좋단다. 그렇게 주문해 먹었는데 잘 먹지 않으니 이유를 물었다. 그레이스는 그것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 정도 금액으로 여행 경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뿐더러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을 전했다. 여행 경비를 아끼는 마음은 귀했지만,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래서 결국 그레이스의 햄버거는 거의 먹지 않고 폴과 제이콥, 내가 주문한 음식을 나눠먹었다. 그 일 뒤로 때때로 여행 갔을 때나 집에서도 재정 아끼려고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주문했다가 남기는 것보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편이 좋겠다고 일러줬다.
이러한 그레이스와 같이 갔던 청년밥상문간이라 그저 값싼 음식으로만 남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건더기를 다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는 모습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흔쾌히 뒷날도 다시 오자는 말을 꺼냈다.
epilogue
청년들이 혼자 온 테이블이 많았다. 그들의 서울생활은 혼자인 시간이 많은 거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서울에서 부모님이 사주신 아파트에서 살며 호위호식한다고 여겼던 어느 날 나는 친구 집에 얹혀살았었다. 뭐든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같이 지내고 얼마 이나지 않아 문득 내게 말했다. "나는 가끔 아파트에 혼자 있다 보면 이 안에서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라고. 고독사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나에게 그 말은 실로 놀라웠고 고요한 울림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너의 죽음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대장암에 걸려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나는 그 친구 곁에 있지 못했다. 친구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지만, 당시의 일은 내게 여러 메시지를 준 것 같다. 친구는 만화가였고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그의 삶을 내가 살아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마저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크리에이터와 예술가의 삶을 선택해 가는 중이다. 그의 아버지는 내게 잊지 않고 집으로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게 '이제 친구는 친구의 삶을 살아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친구에 대한 부채감을 내려놓고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청년밥상문간에 오는 친구들이 혼자 오기보다는 친구와 삼삼오오 같이 와 한 끼 식사를 하며 정서적 힐링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