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생태공원을 도보로 이동한 자의 썰
prologue
그레이스와 11월 여행 때 가려던 애기봉생태공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너무 멀고도 먼 여행지였다. 적어도 온전히 대중교통과 도보에만 의존해야 하는 도보여행자에게는. 하지만 지도를 보니 한 길로 올곧게 가기만 하면 되는 도보길을 보니 문득 '가볼 만하겠는데?'라는 마음이 들었다. 후훗!
가기 전, 블로그 리뷰를 찾아보고 소요시간을 지도를 통해 알아보며 '과연?'이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처음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택시 이동을 추천한다는 챗GPT의 조언과 자가 차량 이용으로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들로 가득 찬 상황 가운데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포기를 가장한 지연이었다.
11월 여행에는 가지 못하지만, 버스를 놓쳐 1시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생기더라도 끝까지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방문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서 김포골드라인을 타고 가는 길에는 운양역 / 장기역 / 구래역이라는 버스 환승 하차 역이 세 군데였다. 이중 어느 곳에서 내려야 버스 대기 시간을 줄여 이동 시간을 줄일 것인가? 지하철을 타며 가는 동안 네이버 지도의 실시간 버스 운행 시간을 확인하며 내릴 역을 수정하고 수정했다. (차로 이동했다면, 이런 수고는 필요가 없었을 것인데 ㅜㅜ)
만약 버스 배차 간격이 한 시간 이상이라면 주변 지역에서 놀거나 아울렛을 가보는 플랜 B를 세운 뒤 구래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마침 5분 정도 뒤에 도착하는 90번 버스가 있었다. 그레이스에게 지하철 역에서부터 구래역까지의 길 안내를 부탁한 뒤 주변을 살폈다. 이 지역의 정보가 전무했던 터라 주변을 살펴본 나는 '이곳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지도를 헷갈려하는 그레이스와 같이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정류장 맞은편으로 이마트와 스타벅스가 입점한 건물을 보니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다닐 것 같았다.
90번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처음 세웠던 하차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꿨다. 이유인즉 지하철에서 내린 뒤 버스를 타는 승차 대기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갈산사거리에서 102번 버스를 7분 정도 기다린 뒤 탔다. 이 갈산사거리쯤 가니 택시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애기봉까지 가는 동안 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여럿 있을 정도로 수요일 오전의 10시는 찾는 이가 적어 한가로웠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몇 몇 있던 승객이 이전 정류장에서 모두 내리고 탑승객은 그레이스와 나만 남았다. 앉은 자리에서 호기롭게 버스 하차벨을 눌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내리기 전, 운전기사분께 "여기가 애기봉생태공원인가요?"라고 여쭤보았다. 기사분께서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안내해 주시고 이후 내릴 때는 애기봉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셨다. 참 친절하고 감사한 분이셨다.
버스에서 내려 알려주신 대로 길 건너 맞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사분은 그레이스와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하신 뒤 출발하셨다) 지도상으로 봤던 길은 초입부터 당도하는 지점까지 한 줄로 올곧게 이어져 있어 가볼 만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도가 잘못 안내해 주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헷갈릴 수 있는 초행길의 여행지로서는 접근 장벽이 낮다는 마음이 들었다. 길은 지도와 동일하게 한 방향으로만 계속 걸어가면 되었다.
가는 길에 몇몇 민가와 김포문예창고, 주민 대피시설, 화장실, 평화누리 자전거길, 김포 평화누리길, 벼가 심긴 논, 채소가 있는 밭 등을 볼 수 있었다. 벼 이삭을 털어낸 뒤 남은 짚단을 묶어 볏짚단으로 세워둔 모습이나 적의 도발 때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대피 시설 등은 현재 지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라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초입 길에 뿌려졌던 우박 덩어리들은 길을 걸어감에 따라 양은 적어졌지만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추운 지역에서 서울 여행의 마지막 날 아이스링크에서 사용하려던 넥워머와 장갑을 가방 안에서 꺼내 사용했다. 찬 기운이 목을 타고 상체로 들어가지 않도록 목을 따듯하게 감싼 뒤 10여 분을 걷자 땀이 이마를 접한 머리카락 부분에 베기 시작했다. 그레이스가 이제 덥다고 말하는 시점이었지만, 공기가 무척 싸늘해 바람이 조금 통할 정도로만 넥 워머를 매만졌다.
그다지 오래 걸은 것 같지 않았지만, 어느덧 애기봉생태공원 검문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레이스와 제이콥과 같이 여행을 다니며 기본적으로 하루 만보 이상을 걷는 편이다. 하루 만보 걷기가 여행의 목적은 아니지만, 이동 거리가 길거나 한 두 정거장 정도는 걸어서 이동하며 대중교통비를 아낀 대신 그 지역의 길거리 음식을 먹기 위함이다. 실제로 짠내 나는 투어지만, 편식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 위해 자녀를 최빈국으로 보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이러한 여행을 소망했었다.
제이콥과 그레이스는 여행을 가면 나와 많이 걷고 어느 정도는 힘든 것을 감수해야 함을 안다. 그래도 여행이 좋다며 같이 가곤 한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사이판에 가기 전, 제이콥에게 가고 싶은지 의향을 물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단서를 붙였는데 그것은 가면 좀 걷고 좀 힘들다는 점이었다. 제이콥은 힘들 거라면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대신 여행을 갔던 그레이스가 다녀온 뒤 참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선 자신도 좀 힘들더라도 간단다. 그리고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루 만 보 이상을 걷더라도 같이 여행을 다니는 중이다.
epilogue
가는 길은 오는 길이 되었다. 가는 길에 보지 못했던 흰색 개가 도로를 유유히 걸어갔다. 그곳을 지나다니는 여행자에게는 별다른 관심 없이 자신의 갈길만 보고 가는 개였다. 군사 지역의 긴장감과 언제 적의 도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성을 담은 여행지였지만, 개 안에는 여유가 있었고, 바람은 태극기에 실려 잠시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