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깼다, 나의 넥스트로 가기 위해

창업은 자아의 균열이었다

by 템즈강변의 태양


나는 그 시절을 새로 시작한 시기라 부르지 않는다.


시작 같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게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창업은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조종당하지 않기 위한,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창업자'라는 이름을 처음 달았을 때

나는 홀로 있음의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약한 나.

무너지는 나.

인정하는 나.



계속 나아가자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고,

멈추자니 모든 걸 놓는 것 같았다.



그 절박한 균열의 연속이었다.





내 이름으로 시작한 삶은,

나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매 달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던 월급,

명함 하나로 족했던 자기소개.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누리던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허허벌판에서 맨손으로 흙을 파는 일이었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직장이라는 구조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스스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칭찬과 평가, 복지와 보상으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나는 '괜찮은 직장인'이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실체로서 시험받은 적이 없었다.





조직 안을 구성해 왔던 많은 것들.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보다는

'누가 시켰는가',

‘누구의 안건이었는가',

‘누구 밑의 사람인가’로 결정되는 흐름.


관계 맺음으로 평판과 실적이 갈렸고,

표면보다 더 많은 것들이

비공식적인 기류 속에서 결정되곤 했다.


내가 더 잘났다는 걸 확인받기 위한 언어,

책임을 피하기 위한 표현 방식,

회의보다 분위기, 실적보다 정치.


그 안에선

'진짜 일'보다

‘일하는 척'이 더 능력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보고를 위한 일정,

회의를 통한 R&R 조율,

서로 미루기 바빴던 업무 분장.


그 와중에 때로는

충분히 쉴 수 있던 연차,

여유로웠던 사내식당,

포근한 복지카드.



싫었던 것이든 좋았던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로부터의 언어였다.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견디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일을 하고 또 해도,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해결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날들.


지금 멈추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어진다는 두려움,


계속 가자니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었던 날들.


정말로 벼랑 끝이라는 단어가 실감 났던 시간.




존재를 지키기 위해 퇴사했는데,

그 존재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누군가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고,


누구의 이름도 아닌

내 이름으로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건 단순한 독립이 아니라

내가 무뎌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창업 이후에도

나는 다시 존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들어가 있었다.


이번엔 더 고요하고,

더 거칠고,

더 외로운 싸움이었다.



회사는 나를

조직 안에 천천히 지워가는 방식으로 위협했다면,


창업은

매일 나를 스스로 견디게 하는 방식으로 시험했다.


회사는 나를 조종하려 했고,

창업은 나를 매일 스스로와 겨루게 했다.


회사에서 나는 존재를 통제받았고,

창업 안에서는 존재 전체가 시험대에 올렸다.



내 선택은 다른 이름의 벼랑 앞에 나를 다시 세웠다.





그래서 창업은 시작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이름을 지우고,

직장인의 자아가 깨지는 순간.



그건 구조 밖으로 나오는 순간

‘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잔인한 깨달음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자원,

불안정한 감정,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



‘해냈다’가 아니라, ‘견뎠다’를 말하는 하루.

그 조악함을 견뎌내는 힘,


그게 창업이었다.





매일이 자기 확인의 연속이자,

질문의 연속이자,

판단의 연속이었다.



"이거 괜찮은가?"

"이대로 가도 되는가?"

"이게 맞는 방식인가?"



이 질문들이 처음 내 안에서 올라올 때,

나는 마침내, 대답을 스스로 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묻거나 기대지 않고,

누구의 확인도 기다리지 않고,


이 결정이 가져올 모든 결과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


그 무게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벼랑 끝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 실체.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 깨뜨림을 지나야 만

진짜 나로 시작되는 여정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포장 없는 나로,

나를 지우지 않고 일하는 나로,

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스스로 납득되는 하루,

내가 존재할 수 있는 하루,

내 기준을 훼손하지 않는 하루.



나의 이름으로 살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것.


그걸 느끼는 지금,

시작은 충분하다.



이제야 안다.

나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삶은,

한참을 부서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의 균열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타인의 구조물 안에서의 나를

진짜 나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 번은 자기 자신을 깨뜨려야만,

진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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