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되었다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품목은 화장품이다.
한국의 화장품제조사로부터 ODM으로 생산을 하여, 이커머스를 통해 판매한다.
우리 브랜드의 첫번째 화장품이 출시되고 난 후, 난 홍보 차원에서 지인 분께 제품 하나를 선물로 드렸다.
피부과 전문의로 일하고 계시는데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얼굴도 뵐 겸 의원으로 찾아갔다.
제품을 얼굴과 손등에 발라 보시고 향기도 맡으시며 꼼꼼하게 테스트 해보시더니, 제품을 주변에 소개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신다.
" 그럼요, 물론입니다. 저야 감사하죠. "
그리고 다음날 피부에 잘 맞으신다고, 자주 사용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여성들의 피부를 살피는 일을 하시는 분이니, 그 분께서 괜찮다고 하셨다는 건 호반응이 아닐까.
다행이었다.
그 뒤로 한달쯤 후,
일본에 제품을 수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일본 유통상(Distributor)과 거래를 하고 있는 분을 알고 있는데, 이 분과 연결해 줄 테니 미팅으로 만나서 자세한 내용을 논의하라고 말이다.
당시에 나는 국내에서 자사몰을 오픈하고, 판매하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던 시점이다.
언젠가는 해외로 진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출을 위해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아직 정리된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갑작스러웠다.
고민이 되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 잘 할 수 있을까…? 무역 지식도 없고, 혼자서 해야 되는데… "
그렇다고 해도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수출, 꼭 하고 싶었던 일이다.
뭐가 되었든 시도를 한다면 경험이라도 남는 게 있을 것이다.
답신을 보냈다.
“ 네, 그럼요. 좋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 ”
저질렀다.
그리고 조금 후, 미팅 전에 받아 보기를 원한다는 자료 리스트가 문자로 왔다.
1) 제안서
제조사 대표상품 또는 추천상품
일본 상품 대비 경쟁력 (가격, 소재 등 특장점)
2) 회사소개서
3) 상품설명서
4) 견적서
FOB
Carton Box Size 와 입수량
20FT 콘테이너 적재수량
제안서, 회사소개서, 상품설명서는 알 것 같았다. 각 자료에서 서로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을 텐데, 이건 잘 편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견적을 FOB 로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막막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출 가격은 처음 책정을 해보는 것이고, FOB 라는 용어도 생소했다.
Carton Box?
20FT 컨테이너?
모두 무역 용어인 것 같은데, 이들이 수출 가격을 결정하는데 어떤 기준이 된다는 걸까?
FOB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려면 무슨 요소들을 필수로 넣어야 할까?
부산항에서 화물선을 통해 보내면 되는 걸까?
일본이면 가까우니 비행기로 보내도 되나?
수출은 통관 등 행정 절차가 있을 텐데 이건 어떻게 처리하는 거지?
한국에서 판매하던 제품을 그대로 수출해도 되는 걸까?
시간은 얼마나 걸린다고 해야 하나?
그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내가 모르는 지식들과 요건들로 인해 중간 중간 구멍이 뻥뻥 뚫렸다. 수출가격, 운송, 통관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마진은 얼마나 해야 하는 거지?
또 최소 수량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거지?
수량에 따라 가격도 달라질 텐데, 내가 회사 상황에 맞게 기준을 정하면 되는 건지, 혹은 화장품 업계에 형성되어 있는 통상적인 최소 수량과 수출가가 있는건지 말이다.
게다가 우리 기업은 아직 무역을 위한 서류 양식이 하나도 없었다.
수출 견적서니까 영문으로 준비 해야 할 텐데 영문이든 국문이든 무역 양식은 만들어 놓은 게 없었고, 제대로 된 서류를 본 적도 없었다. 무역 실무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양식을 만들더라도 감수를 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할 텐데.
내가 뭔가를 실수해서 무역 사기라도 당하면 어쩔 것인가.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수출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