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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템즈강변의 태양 Dec 11. 2022

왜 창업 하셨어요?

창업가의 민낯은 아름답다

가끔 정중한 질문을 받는다. 


" 창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


주로 회사소개, IR 피칭, 오피스아워 등으로 뵙게 되는 투자자, 단체에서 물으신다. 


여러 번 질문을 받고, 여러 번 답변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이야기는 

포장할 것도 없고, 잘 보이려고 할 것도 없고, 거창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요즘엔 


" 왜 창업했어요? "


라는 단도직입 질문이 편하다. 


처음에는 너무 날 것의 질문이고, 잘 못 들으면 무례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 익숙해졌다. 


이 질문의 의미가 무엇이고

나는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지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창업 동기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고질적인 산업/업계의 문제를 새로운/혁신 방식으로 해결해 보고자 할 때 

사회에 공헌을 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고 싶을 때 

돈을 크게 벌고 싶을 때 (High Risk High Return)

   *돈을 벌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결코 속물적이거나 불순한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마음 없이 창업을 했다면, ‘기업의 존재 이유와 생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등등 



위 동기들은 '대외적으로', '오피셜리' 이야기 할 수 있는 창업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업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힘들여 쌓아온 커리어와 자금을 담보로, 산업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그 리스크를 감당하며, 공공의 이익 실현을 위해 나 자신 자체를 던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 더 이상 나를 대변할 그럴듯한 명함이 없으며 

- 하루 세끼를 편의점 김밥으로 때우는 일상이 계속되고 

- 종종 많이 받게 되는 ‘구멍가게’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들

- 주말과 휴일 따위, 주 52시간제 따위는 없는, 끝나지 않는, 끝을 알 수 없는, 끝없는 일들 

-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느끼는 압박감과

- 때때로 눈 뜨고 싶지 않은 아침… 


이런 시간을 견디며 버티게 해주는 이유는 절대 거창한 포부도, 그럴듯하게 포장된 아름다움도 아니다. 



상사의 거들먹거림과 가스라이팅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을 때 

내가 땀 흘려 만들어낸 결과를 상사와 선배가 가로채 갈 때

그리고 조직은 이들을 묵인하면서 겉으로는 '공정, 형평, 구성원 사랑'을 외칠 때 

내 전공, 성별 등에 따라 나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주로 윗사람) 나를 조종할 때

이직이 답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래서 나를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졌을 때


이런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유가 창업의 과정, 그 시간을 버텨내고 견디고 이겨내게, 그리고 즐기게 한다. 

그리고 난 이 개인적인 동기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한 VC(Venture Capital)에서 진행하는 창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그곳 대표님과의 인터뷰에서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 그 대표님은 여러 번 창업하신 경험을 가진 분이셨다. 

 


" 소개 잘 들었습니다. 근데 그때 창업을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


이제 제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풀고 싶은 업계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



갸우뚱 하시며, 


" 그것 보다 다른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왜 창업이라는 리스크를 지려고 하셨는지.. "


" 제가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것,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의 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



그리고 대표님은 살짝 미소짓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대답이 되었습니다





창업가의 민낯.


그것을 물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리얼 스토리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신감이다.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과정.

그것이 바로 창업의 여정이다. 


크고 작은 결정 앞에서 내가 내리는 판단과, 절벽 끝에 매달려서 하는 생각들, 그 생각을 실천하는 흐름...

그 순간 그 찰나에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밑바닥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 직장인으로 살며 기업명, 직급직책, 직무로 쌓아 올렸던 자아와 자존감을 완전히 깨뜨릴 수 있을 때

- 아침에 일어나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도 매일같이 사무실로 향할 때 

- 스스로 업을 만들어 일분, 한시간, 하루를 채워 나가야 할 때  

- 적은 리소스로 만들어진 결과물의 그 조악함을 받아들여야 할 때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홀로 한발짝씩 내딛으며  

-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나는 나의 넥스트로 갈 수 있다는 것. 


그 경험을 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포장할 이유도, 필요도, 의미도 없게 된다. 



그것이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은 그것이 보고 싶은 것이다. 


숨겨야 하는 창피한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까. 

무엇을 깨고 싶었는지 듣고 싶으니까.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왜? 나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의 스토리가 궁금하고 그것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 민낯을 드러낼 준비가 안되었다는 건 

아직 충분히 겪지 않았다는 것임을.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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