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은 키에 유독 빠른 발걸음을 가진 엄마와 크면서 우리는 걸었다. 유치원 시절 엄마가 하도 빨리 걸으셔서 좀 천천히 걷자고 불평 어린 말투로 투정을 부렸었다. 그때 투정을 부렸던 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말죽거리인근인 것을 보면 신기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빨리 걷는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고 돌아나니시기를 좋아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랐기에, 여행을 좋아했고, 좀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외국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여행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산으로 들로 바다로 또 외국으로 여행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십여 년 동안 여행해 온 DNA가 삶과 기억 깊숙이 박혀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여행을 하면서 지내야 한다.
하지만 지구를 생각한다면 근거리에서 탄소발생을 최소화하는 여행을 해야 한다. 얼마 전 테일러 스위프트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혼자 탑승하는 전세기를 띄웠고, 그런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미세먼지가 싫고, 북극곰이 걱정되고,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싶다면서 일 년에 몇 차례 식 많은 양의 탄소를 발생하는 해외여행을 할 수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 곳곳을 여행해야 한다.
지구를 생각하고, 통장 사정을 생각해서 해외여행을 일 년에 한, 두 번 갈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상 켜켜이 에 충분히 여행이 스며들어야 한다.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단 한두 번의 여행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행은 해도 또 하고 싶고, 가도 가도 가고 싶은 곳은 끝이 없으며, 먹고 싶은 음식도 사계절 때에 따라 다르다.
박하경 여행기도 그렇다. 그녀는 빡빡한 일상을 여행을 생각하며 버틴다. 하지만, 내가 박하경이나 이나영이 아닌 것처럼 나의 여행은 그녀들과 다르다. 미국 포틀랜드에 간다면 미국 최대의 독립서점 파웰스 북스에서 책을 읽고 싶고, 스텀프타운 커피를 마시고, 메이드인 포틀랜드 편집숍에 들러 그 지역에서 기념품을 사고 싶은 것처럼, 지역이 충분히 녹아내려져 있는 지역다움이 살아있는 동네를 여행하고 싶다.
그래서 첫 여행지로 선정한 곳은 행궁동이다. 화성행궁, 수원화성이 있는 정조대왕이 수도로 만들려고 했던 조선시대의 신도시 화성이다. 개인적으로 화성과는 조애가 깊은데, 조상님이 대대손손 살아오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화성행궁 박물관의 전시를 보던 중 놀라운 사실도 발견했다. 화성행궁의 건축 당시 조상님의 현장소장으로 참여하셨던 기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다. 차로 간다면 고속도로를 통해서 빠른 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고, 운전하지 않아도 지하철이나 광역버스로 갈 수 있어 뚜벅이 여행객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수원에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많다. 우선 정조임금이 수도를 천도하기 위해서 지었던 화성행궁이 있는데, 유실되었던 화성행궁은 복원과정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문인 장안문, 화서문처럼 성벽이 남아있어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수원 행궁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품은 곳으로 수원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화성 성벽 내 저층주거지역이 유지되어 단독주택, 낮은 건물들이 골목길과 어우러져 있다. 그런 건축자원의 중요성을 알아본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일찌감치 수원 행궁동 곳곳에 자리 잡고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앵커스토어로 자리 잡았다. 수원 출신임을 당당히 어필하는 '정지영 커피로스터스', 수원의 플레이어들을 한 곳에 모으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공존공간', 직접 만든 은세공품과 소품을 판매하는 '기프트 셀렉샵 탭'처럼 수원출신임을 내세우는 로컬 브랜들이 많다.
사실 수원 나들이 하루로도 부족할 수 있다. 애초에 계획해 놓은 곳보다도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골목길 끄트머리에 보석같이 숨은 곳을 발견할 수 있고,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골목길을 계속해서 걷다 보면 또 매력적인 공간이 발길을 이끌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는 일요일 주말 수원 행궁동에서 직접 체험한 로컬 브랜드와 핫플들을 소개해보겠다.